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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반도체 열전 (40) 세레브라스(Cerebras )...펠드먼의 반란 "웨이퍼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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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반도체 열전 (40) 세레브라스(Cerebras )...펠드먼의 반란 "웨이퍼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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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김대호 진단] 반도체 열전 (40) 세레브라스… 엔비디아 독점 붕괴의 서막인가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 전 고려대 교수

엔비디아의 반도체 독점을 깨겠다는 업체가 나타났다. 그 이름은 세레브라스 시스템즈(Cerebras Systems)이다.

세계 반도체 시장은 엔비디아(NVIDIA)가 사살싱 지배하고 있다. 젠슨 황이 이끄는 엔비디아는 그래픽 처리 장치(GPU)와 독점 소프트웨어 플랫폼 ‘쿠다(CUDA)’를 양날의 검으로 삼아 AI 가속기 시장의 80% 이상을 독식해 왔다. 엔비디아의 칩을 구하기 위해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줄을 서고, 칩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현상은 마치 과거 반도체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던 절대 권력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했다.
세라버스는 바로 이 제국의 독점에 도전하고 있다. 세레브라스 시스템즈는 피자 한 판 크기에 달하는 거대한 ‘단일 반도체’를 들고 나왔다. 세레브라스는 단순한 패권 도전자를 넘어, 기존 AI 하드웨어 아키텍처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세레브라스 시스템즈의 기술적 정체성을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웨이퍼 스케일 엔진(WSE, Wafer Scale Engine)’이다. 기존의 반도체 제조 방식은 실리콘 웨이퍼 한 장에 수백 개의 작은 칩(GPU 또는 CPU)을 인쇄한 뒤, 이를 손톱만 한 크기로 잘라내어 사용하는 것이 상식이자 표준이었다. 세레브라스는 이 고정관념을 완전히 파괴했다. "웨이퍼 전체를 잘라내지 않고 통째로 하나의 칩으로 만든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광기 어린 물음에서 세레브라스의 혁신은 시작되었다.

세레브라스의 최신 3세대 가속기인 WSE-3는 일반 GPU 대비 50배 이상 거대한 면적을 자랑한다. 4조 개가 넘는 트랜지스터와 90만 개 이상의 AI 전용 코어가 단 하나의 실리콘판 위에 집적되어 있다.이 아키텍처가 가져오는 파급력은 위력적이다. : 엔비디아의 방식은 수천 개의 GPU를 고대역폭메모리(HBM)와 복잡한 네트워킹 케이블로 연결한다. 이 과정에서 칩과 칩 사이를 데이터가 이동할 때 심각한 지연 시간(Latency)과 막대한 전력 소모가 발생한다. 반면 세레브라스는 모든 데이터 이동이 단일 칩 내부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통신 속도가 빛의 속도에 가깝게 유지된다.

대규모 언어 모델(LLM)을 구동할 때 세레브라스의 시스템은 기존 GPU 클러스터 대비 최대 20배 이상 빠른 추론 속도를 기록한다. 실시간 대화형 AI나 초저지연을 요구하는 금융·군사·의료 AI 분야에서 독보적인 성능을 발휘하는 이유다.지금 현재 데이터센터들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전력 부족'과 '공간 제약'이다. 엔비디아 GPU 수만 개로 구성된 대규모 클러스터는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며, 네트워킹 장비의 과부하로 인해 물리적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 세레브라스는 동일한 연산 성능을 내는 데 필요한 랙(Rack) 공간과 전력 소모를 획기적으로 줄여준다.

빅테크 기업들이 엔비디아의 단일 공급선에 얽매이지 않고 대안을 찾으려는 '멀티 벤더' 전략과 맞물려, 세레브라스는 하이퍼스케일러들의 가장 강력한 카드로 부상했다. 엔비디아의 독점이 하룻밤 사이에 무너지기는 어렵다.지난 20년간 구축된 엔비디아의 CUDA 생태계는 전 세계 수백만 명의 AI 개발자들을 묶어두는 거대한 도랑(Moat)이다. 세레브라스가 자체 소프트웨어 컴파일러를 제공하며 진입 장벽을 낮추고 있으나, 기존 코드를 재작성해야 하는 개발자들의 이탈 비용은 여전히 존재한다.

세레브라스가 거대한 웨이퍼 한 장에서 결함(Defect)이 발생했을 때 이를 회피하여 정상 구동시키는 '결함 허용 회로(Redundancy)' 기술을 완성했다고는 하나, 극단적으로 큰 칩이 갖는 냉각 문제와 전력 공급 장치 설계는 여전히 고도의 기술적 부담을 안고 있다. 세레브라스가 엔비디아를 완전히 시장에서 몰아내는 그림은 현실성이 낮다. 그러나 엔비디아가 누려온 '100%에 가까운 독점적 가격 결정권'을 파괴하는 데는 충분한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AI 시장이 '학습(Training)' 위주에서 '추론(Inference)' 위주로 재편됨에 따라, 초고속 추론에 특화된 세레브라스가 특정 고성능 영역을 빠르게 침식할 것이다. 엔비디아의 단일 독점 시대는 막을 내리고, 세레브라스를 위시한 특화형 가속기들이 시장을 분점하는 ‘다극화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펠드먼은 세레브라스를 설립하기 전, 마이크로서버 혁신을 이끌었던 시마이크로(SeaMicro)의 창업자였다. 당시 인텔이 주도하던 서버 시장에 고효율 저전력 서버 아키텍처를 도입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고, 2012년 AMD에 3억 3,400만 달러라는 거액을 받고 성공적으로 매각했다. 이후 그는 엔비디아가 점령해 가던 AI 하드웨어 시장의 본질적 병목을 직시하고 2015년 핵심 엔지니어들과 함께 세레브라스를 창업했다.

펠드먼은 기존 반도체 업계의 '미세 공정 경쟁'이나 '단순 칩 연결 방식'을 집단적 타성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왜 데이터가 칩 밖으로 나가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 던지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며, 업계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일축했던 웨이퍼 스케일 엔진을 엔지니어링의 정면 승부로 돌파해 냈다. 장기적 집념과 스텔스 과감성: 세레브라스는 초기 수년간 제품을 외부로 공개하지 않는 '스텔스 모드(Stealth Mode)'를 유지하며 오직 R&D에만 몰두했다. 당장의 분기 실적이나 시장의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웨이퍼 전체의 수율 제어, 냉각, 패키징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자원을 집중시켰다. 이는 펠드먼 특유의 배짱과 장기적 비전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투자였다.

펠드먼은 엔비디아와 젠슨 황의 독점적 행태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해온 인물이다. 그는 인터뷰마다 "엔비디아의 GPU 클러스터는 복잡하고 비효율적인 누더기 시스템"이라고 비판하며, 기술적 우위성을 바탕으로 고객사들을 설득하는 과감한 정면 돌파형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반도체의 역사는 ‘집적과 분산’, 그리고 ‘독점과 이탈’의 반복이었다. 과거 인텔이 PC 시대를 독점했을 때 모바일의 대두와 함께 ARM과 TSMC 생태계가 성장했듯, AI 시대 엔비디아의 절대 권력 역시 새로운 기술적 패러다임의 도전을 피할 수 없다.

세레브라스 시스템즈와 앤드류 펠드먼이 보여준 ‘웨이퍼 스케일 엔진’은 단순한 개별 기업의 성공을 넘어, AI 하드웨어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물리적 이정표를 제시했다. 엔비디아가 쌓아 올린 CUDA라는 소프트웨어 장벽이 여전히 높다 할지라도, 연산 효율과 전력 문제라는 AI 산업의 근본적 병목을 해결하는 자가 결국 다음 시대의 주도권을 잡게 될 것이다. 엔비디아의 일극 체제는 무너지고 있다. 그리고 그 균열의 최전선에는 '미친 아이디어'를 현실로 바꾼 세레브라스의 거대한 실리콘 웨이퍼가 놓여 있다. 우리는 지금 반도체 역사상 가장 흥미진진한 지각 변동의 순간을 목도하고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