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무엇이든 오랜 세월 반복되면 견고한 습관이 되고, 이내 삶의 루틴으로 굳어집니다. 낡은 석고상을 노려보며 대학 입시를 위해 수년 동안 데생에 매달렸던 시간들은 그들에게 모사(模寫)라는 지독한 습관을 캔버스 위에 남깁니다. 물론 그들이 모두 사실주의 작가로 주저앉는 것은 아닙니다. 대학이라는 울타리를 넘고 사회의 거친 비바람을 맞으며, 그 충격으로 전혀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이들도 분명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날 뼛속까지 각인된 구상적 체험은 작가의 화풍을 규정하는 보이지 않는 족쇄가 되곤 합니다. 오직 입시를 통과하기 위해 기능적인 구상 실력만 갈고닦았던 이들이, 정작 현대미술이라는 넓고 아득한 바다에서 끝까지 살아남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반대로 그 구상적 체험의 한계를 가뿐히 뛰어넘어 현대미술의 파격에 빠르게 적응한 이들은, 어떤 면에서 20세기 실험미술이 낳은 영악한 수혜자들입니다. 그들은 시류를 빠르게 읽어내고 그럴듯한 작업을 생산하며 전시장 한구석을 꿰찹니다.
요즈음 화단에 내려진 얄팍한 명제는 참으로 씁쓸합니다. 구상적 재능을 적당히 비틀어 사용하거나, 현대미술의 난해한 취향을 교묘히 흉내 내며, 꾸준한 소셜 미디어 활동으로 맹목적인 팬덤을 형성해야만 화가로 살아남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영국의 젊은 예술가(YBA) 돌풍을 일으키며 수혜를 독식했던 데미안 허스트의 그 충격적이었던 사체 작품들도, 이제는 한낱 평범하고 지루한 장식품으로 전락해 버린 시대입니다. 알량한 시각적 충격으로 승부하던 얄팍한 실험미술의 시대는 완전히 끝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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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양자 도약(Quantum Jump)의 거대한 파도가 덮쳐올 새로운 시대. 인공지능이 방대한 데이터를 순식간에 버무려 기괴한 이미지를 뽑아내는 이 서늘한 신세계에서, 화가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역설적이게도 바깥 세상이 아닌 자신의 가장 깊고 어두운 내면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뿐입니다. 거창한 미술사의 낡은 잣대를 들이대는 대신, 작가 자신의 핏물 고인 인생사를 캔버스 위에 고해성사하듯 쏟아내는 젊은 작가들을 발견할 때면 참으로 시린 반가움을 느낍니다.
인간은 누구나 육신이 고단해지면 불편함을 호소합니다. 어디가 아프다, 숨이 막힌다며 바깥으로 통증을 뱉어냅니다. 그러면 차가운 의학은 그 파편화된 증상들을 수집하고 편집하여 '질병'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획일화된 치료법을 강요합니다.
내 육신에는 '비염'이라는 오랜 신호가 있었습니다. 피곤이 몰려올 때면 어김없이 코가 막혀 숨통을 옥죄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 막막함의 진짜 원인이 내 피폐해진 내면에 있음을 바로 보지 못한 채, 그저 외부의 알량한 약물에만 의지해 증상을 틀어막기에 급급했습니다. 그 오만하고 미련했던 대가는 참혹했습니다. 결국 두경부(頭頸部) 전체에 지독한 염증이 차올랐고, 맹렬한 암이라는 사형 선고를 받아들어야만 했습니다. 물론 뼈를 깎는 시간 끝에 지금은 다시 숨을 쉬고 있지만, 나는 이제 내 몸 가장 깊은 곳에서 보내오는 은밀한 시그널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며 나를 보듬고 살아갑니다.
미술도 이와 한 치도 다르지 않습니다. 캔버스 위에 나타나는 모든 흔적과 붓질은, 작가 내면의 가장 은밀하고도 절박한 살려달라는 시그널이자, 밖으로 터져 나오는 외적 표현이어야 합니다. 오직 그것만이 가장 순수하게 화가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는 길이며, 그 진실한 고백만으로 작품은 이미 완전한 결실을 맺습니다. 내 육신의 고통에 굳이 어려운 병명과 진단서를 들이밀 필요가 없듯, 내 영혼의 붓질에 낡은 미술사의 족보나 거창한 화파의 이름 따위를 갖다 붙일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직 우리 화단은 무슨 화파니, 무슨 미술이니 하며 패거리를 짓고 낡은 미술사를 들먹입니다. 그들의 그림은 수십 년 동안 똑같은 무늬를 복제하는 상업 디자인의 지루한 패턴에 갇혀 있으면서도,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박수를 칠 것이라는 앤디 워홀의 시니컬한 명제에 숨어 기득권 언론과 얄팍한 수집가들의 맹목적인 비호를 받으며 미술계를 쥐락펴락하고 있습니다.
미술사와 미학의 두꺼운 책장을 아무리 넘긴다 한들 타인의 가슴을 치는 위대한 작품이 탄생할 리 없으며, 차가운 의학 지식을 산처럼 꿰뚫고 있다 하여 궁극의 생명과 건강을 얻을 수 없고, 성경 구절을 달달 외운다 하여 영혼을 구원할 참된 신앙이 생겨나는 것은 아닙니다.
화가란 모름지기 자신 내면의 펄떡이는 심장 소리를 따르는 자입니다. 나를 외면한 채 남이 만들어 놓은 얄팍한 이정표를 맹목적으로 뒤쫓는 것은, 한 번뿐인 귀하고 서늘한 인생을 통째로 시궁창에 버리는 짓임을 뼈저리게 알아야 합니다.
우연히 얄팍한 개념 하나를 선점하여 수십 년간 똑같은 패턴을 사골처럼 우려먹으며 안락을 누리는 이 땅의 영악한 화가들을 결코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내면에 귀 기울이며 묵묵히 붓을 벼리고 있다면, 몰락하는 낡은 세계의 뒤편에서 또 다른 거대하고 눈부신 행운이 새로운 시대의 이름으로 우리를 향해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지 확대보기글쓴이/ 한명호(1957년생)/ 홍익대 서양화과 및 대학원 서양화과 졸업, 개인전(박영덕화랑. 박여숙화랑. 현대아트갤러리. 갤러리Q, 부산화랑 등 다수), 단체전 및 국제전(화랑미술제-현대화랑, 북경아트페어-아트사이드갤러리 등), 최우수예술가상 미술부문 수상(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저서 ‘보이지 않는 곳을 보는 화가’ 등 다수
한명호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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