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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민의 프롭테크'썰'] 사망원인 확인 전인데 ‘중대재해’ 공시부터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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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민의 프롭테크'썰'] 사망원인 확인 전인데 ‘중대재해’ 공시부터 해야 할까

정상민 대한중대재해예방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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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민 대한중대재해예방협회장
중대재해예방 처리 업무를 오래 하다 보면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려운 순간을 마주한다.

사업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했다. 사고가 발생했다면 신속하게 보고하고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도 시작해야 한다. 여기까지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모든 사망 사고의 원인이 사고 직후 명확하게 밝혀지는 건 아니다.

추락이나 끼임처럼 사고 경위가 비교적 분명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작업 중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된 뒤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심혈관계 질환 때문인지, 기존 질환의 영향인지, 업무나 작업환경과 관련이 있는지 사고 직후에는 판단하기 어렵다. 경찰 조사와 부검 결과 등을 기다려야 정확한 사망 원인을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사망 원인을 밝히는 시간과 기업에 요구되는 보고와 정보 공개의 시간은 서로 다르게 흐른다. 기업은 사고가 발생하면 관계기관에 필요한 보고 절차를 밟는다. 상장기업이라면 시장에 어떤 정보를 어느 시점에 알려야 하는지도 판단한다.
현장에서는 이 사이에 생각보다 넓은 회색지대가 존재한다.
사망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업무 관련성도 확인되지 않았다. 그런데 시장에는 이미 ‘중대재해’라는 단어가 먼저 전달될 수 있다.

기업은 딜레마에 빠진다.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기다리자니 늑장 보고나 사고 은폐라는 의심을 받는다. 그렇다고 불확실한 상태에서 서둘러 판단하면 이후 조사 결과가 최초 판단과 달라질 수 있다.

이럴 때 종종 듣는 이야기가 있다.
“우선 공시하고 나중에 사실관계가 달라지면 변경 공시하면 되지 않습니까.”
절차상 가능한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중대재해 현장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이 대목에는 의문이 남는다.
첫 번째 공시가 만든 인상을 두 번째 공시가 과연 같은 크기로 되돌릴 수 있을까. ‘사업장에서 근로자 사망’, ‘중대재해 발생’이라는 첫 소식은 빠르게 퍼진다. 언론 보도를 거쳐 포털과 증권정보 서비스, 투자자 커뮤니티로 확산된다. 시간이 지나면 구체적인 사실관계보다 강한 제목과 첫인상만 남기도 한다.

반면에 며칠 뒤 부검이나 관계기관의 조사 결과가 나오고 최초에 알려진 내용과 다른 사실이 확인됐을 때는 어떨까. 변경 공시나 후속 설명이 첫 번째 소식만큼 주목받는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이것이 행정기관에 대한 보고와 시장에 전달되는 정보가 다른 지점이다.

공시는 투자자가 기업을 판단하는 중요한 정보다. 기업의 평판과 ESG 평가, 거래 관계와 투자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주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신속하게 알리는 것만으로 공시의 역할이 끝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얼마나 정확한 상태의 정보를 전달했는가도 중요하다.

그렇다고 정보를 늦게 공개하거나 감추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확인된 사실과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더 정확하게 구분해 알리자는 것이다.

특히 사망 원인과 업무 관련성을 즉시 판단하기 어려운 사건이라면 정보의 ‘확정 정도’를 시장이 알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최초 단계에서 ‘중대재해 발생이 확인된 경우’와 ‘중대재해 해당 여부를 조사 중인 경우’를 구분하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다.

사업장에서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확인됐지만 그 원인이 불분명하다면 ‘사업장 내 사망 발생·원인 조사 중’이라는 사실부터 알리는 것이다. 이후 부검이나 관계기관 조사를 거쳐 사망 원인과 업무 관련성이 확인되면 그 결과를 후속으로 알릴 수 있다.

이는 기업에 시간을 벌어주거나 책임을 피할 길을 만들어 주자는 뜻이 아니다. 확인된 것은 확인됐다고 말하고, 아직 확인되지 않은 것은 조사 중이라고 밝히자는 것이다. 그것이 더 정확하고 투명한 정보 공개다.

또 하나 고려할 사람들이 있다.

기업의 안전담당자와 공시담당자 그리고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영진이다.

사고가 발생하면 안전담당자는 현장 수습부터 관계기관 보고, 사고 원인 파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까지 여러 업무를 동시에 처리한다. 그런데 사망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또 하나의 어려운 판단을 요구받는다.

곧바로 보고하고 관련 절차를 진행하면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판단한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결과를 기다리면 “왜 즉시 보고하지 않았냐”는 책임이 돌아온다.

그사이 주가까지 움직인다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그 순간 안전담당자의 판단은 산업안전의 영역을 넘어 기업 경영과 자본시장의 영역까지 들어간다. 과연 현장의 담당자 개인에게 이 정도의 판단과 책임까지 맡겨두는 것이 합리적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중대재해 관련 정보를 시장에 투명하게 알리는 취지는 분명하다. 중요한 정보를 신속하게 제공하고 기업의 안전경영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에도 공감한다.

다만 신속성만큼 정확성도 중요하다.

중대재해 관련 제도는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공시제도는 투자자에게 판단에 필요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렇다면 두 제도가 만나는 지점에서도 원칙은 크게 다르지 않아야 한다.

사망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는데 공시는 이미 나갔다.
그 짧은 시간 사이에서 누군가는 자신의 판단 하나가 회사와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몰라 밤을 새운다. 이제 그 부담을 안전담당자나 공시담당자 개인의 경험과 판단에만 맡겨두지 않았으면 한다.

중대재해 관련 공시제도가 자리 잡아 가는 지금 ‘얼마나 빨리 알릴 것인가’와 함께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져야 한다.

무엇이 확인됐고, 무엇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는지를 시장에 어떻게 정확하게 알릴 것인가. 좋은 제도는 빠르기만 한 제도가 아니다. 신속성과 정확성을 함께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