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2024년 6월, 대만 타이베이의 한 바. 트레이드마크인 검은 가죽 재킷을 입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옆에 한 중국인 여성이 앉아 있었다. 사진 한 장으로 남은 이 장면이 미·중 기술패권 경쟁의 한복판으로 불려 나왔다. 뉴욕타임스(NYT)는 미 정보당국이 이 여성, 앨리스 황(중국명 황러)을 중국 정부를 위해 정보를 수집해온 인물로 의심하고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약 1년 전 이를 보고받고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앨리스 황 그 여자는 누구인가
앨리스 황은 싱가포르 데이터센터 기업 메가스피드의 임원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NYT 보도에 따르면 메가스피드는 2023년 중국 게임·클라우드 기업 세븐로드(7Road)의 해외 사업을 싱가포르로 옮겨 이름을 바꾼 회사이다. 세븐로드의 주주 가운데에는 중국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포함돼 있다. 앨리스 황은 창업 초기 8개월간 대표이사로 등재됐고 스스로를 CEO로 소개했다. 이전 경력도 예사롭지 않다. 중국 관영 매체의 방송기자와 프라이빗 뱅커를 거쳐, 국영 자본과 연결된 상하이 소재 펀드의 이사를 지냈다. 이후 회사를 떠난 것으로 전해졌지만 언제, 왜 떠났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동선은 더욱 흥미롭다. 2024년 타이베이의 그 바에서 앨리스 황은 동석한 기술기업 임원들에게 젠슨 황을 그 자리에 부를 수 있다고 장담했다. 실제로 젠슨 황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증언이 있다. 2025년 5월에도 두 사람은 타이베이에서 업무 만찬을 마친 뒤 함께 식당을 나서는 모습이 포착됐다. 앨리스 황은 젠슨 황과 찍은 사진을 앞세워 투자금을 모으기도 했다고 한다. 세계 최대 시가총액 기업 수장과의 친분은 그 자체로 최고의 영업 자산이었던 셈이다.
48억 달러와 뜯지 않은 상자
의혹의 출발점은 돈의 규모다. 메가스피드의 말레이시아 관계사는 2024년 6월부터 올해 2월까지 엔비디아 칩을 포함한 AI 장비를 최소 48억 달러어치 사들였다. 싱가포르 사무실에 평일에도 직원이 두 명뿐이었다는 회사의 구매액으로는 상식을 벗어난다. 미국 상무부 현장 조사에서는 장비 일부가 데이터센터에 설치되지 않은 채 포장 상태로 보관된 사실이 확인됐다. 싱가포르 경찰도 별도로 이 회사를 수사하고 있다. 수출 통제 대상인 첨단 칩이 우회 경로로 중국에 흘러들어 갔을 가능성, 이것이 미 당국이 2024년부터 조사를 이어온 이유다.
스파이 의혹은 이 밀반입 조사의 연장선에서 불거졌다. 앨리스 황을 전자 감시하던 과정에서 젠슨 황과의 접촉이 확인됐고, 당국은 엔비디아의 기술 정보뿐 아니라 젠슨 황을 통해 미·중 관계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까지 새어 나갔을 가능성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젠슨 황은 중국 스파이에게 당했는가
그렇다면 젠슨 황은 중국 스파이에게 당한 것인가. 현재로서는 단정할 근거가 없다. NYT조차 앨리스 황이 구체적으로 어떤 정보를 넘겼는지, 어느 기관이 감시를 맡았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미 당국자들도 젠슨 황은 그의 활동을 몰랐을 것으로 판단했다. 엔비디아는 매년 수천 명의 고객사 임원을 만나는 CEO의 통상적 업무 관계라고 설명했고, 앞서 자체 실사에서 전매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주미 중국대사관은 근거 없는 모함이라고 반박했다. 의혹은 어디까지나 의혹으로 다뤄야 한다.
그러나 몰랐다는 사실이 면죄부가 되기는 어렵다. 엔비디아는 이제 단순한 반도체 회사가 아니라 국가 안보 자산이다. 그 수장이 누구와 술잔을 기울이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는 사생활이 아니라 정보전의 영역이다. 정보기관이 노리는 것은 비밀문서가 아니라 사람이며, 가장 손쉬운 통로는 언제나 경계심이 느슨해진 사교의 자리다. 대형 고객과의 친분이 곧 매출이 되는 영업의 논리와, 상대의 배경을 끝까지 의심해야 하는 안보의 논리가 젠슨 황이라는 한 사람 안에서 정면으로 충돌한 것이다.
더 무거운 질문은 백악관을 향한다. 대통령이 보고를 받고도 1년 가까이 움직이지 않은 배경에는 엔비디아의 반도체 판매와 미·중 무역 관계에 미칠 파장을 의식한 계산이 있었다는 것이 NYT의 분석이다. 안보를 명분으로 동맹국에까지 수출 통제 동참을 압박해온 미국이 정작 자국 대표 기업의 문제에는 눈을 감았다면, 그 원칙의 신뢰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한국도 남의 일이 아니다
이 사건은 한국 기업에도 거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공급망의 핵심이고, 그 경영진은 날마다 해외 고객사와 투자자를 만난다. 상대가 누구의 자본으로 움직이는지, 함께 찍은 사진이 어디에 쓰일지 따지는 일은 이제 법무팀이 아니라 최고경영자 자신의 몫이다. 기술패권 시대의 정보전은 연구소가 아니라 타이베이의 바와 서울의 만찬장에서 벌어진다.
젠슨 황이 실제로 당했는지는 수사가 가려낼 일이다. 다만 분명한 것이 하나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칩을 만드는 회사의 가장 취약한 고리는 칩이 아니라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