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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맛]독학으로 조리명인 된 김성근 조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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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맛]독학으로 조리명인 된 김성근 조리장

[한국의 맛]-조리명인 김성근 해솔마루 조리이사

정체성 고민 뒤 양식에서 한식으로 전향

학원 한번 간 적 없이 獨學으로 조리명인 올라

"우리 입맛도 못 맞추는데 어떻게 외국인 만족시켜요?"

한식에 양식 접목시켜 '맛나이 양념소스' 계발


▲ 김성근 해솔마루 조리장
[글로벌이코노믹=노정용기자] 조리명인 김성근(57) 해솔마루 조리이사. 그는 참 독특한 인물이다. 조리사의 길을 걷는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은 요리학원이나 대학의 요리학과에 다니기 마련이다. 그러나 김 명인의 약력을 살펴보면 단 한 번도 요리학원을 다녔거나 요식업계에서 유명한 누구 밑에서 배운 흔적이 없다. 오로지 독학으로 최고의 요리사라고 칭송받는 조리명인에 올랐다.

그렇다고 그가 처음부터 요식업계에 발을 내디디려고 한 것도 아니다. 그는 평창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5년 용평스키장 주화관광호텔의 스키 렌털부에 입사를 지원했다. 그런데 약속 시간에 몇 분 늦는 바람에 그가 원했던 부서는 마감이 되었고, 억울하게(?) 주방으로 발령이 났다.

용평스키장 주화관광호텔의 김정인 주방장(지금은 80대의 노신사)이 부지런하고 똘방똘방한 그를 눈여겨보고 설거지며 각종 주방 허드렛일을 맡겼다. 맡은 일을 곧잘 해내던 그는 주방에서 어깨 너머로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정상적인 방법은 아니었지만 눈치가 빠른 그는 요리에 필요한 기술들을 하나씩 터득해나갔다. 비록 스승은 없어도 호기심에 충만한 탐구정신으로 ‘모방은 하되 더 멋있고, 맛있게’를 만들어나간 것이다. “손맛 하나는 죽여준다”고 아줌마들이 엄지를 치켜세우는 김성근 명인을 만났다. <편집자 주>


-해솔마루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신정동에 위치한 해솔마루는 손님으로 오는 주부들의 까다로운 입맛에 맞춘 한정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특히 주부들은 살찌는 걸 싫어하고 건강한 음식을 선호하기 때문에 웰빙 한정식을 준비하고 있어요.”
-벌써 조리인생 40년을 맞았습니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신다면….

“처음에는 얼떨결에 조리를 시작하게 됐어요. 용평스키장 스키 렌털부에 취업이 되었는데 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자리가 다 차고 유일하게 그릇 닦는 일만 남아 있었어요. 주방에서 일하다보니 적성에 잘 맞는 것 같고, 요리를 하나하나 배우다 보니 양식만 18년을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양식을 하면서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생겼어요. ‘한국사람 입에도 음식을 못 맞추는데, 내가 어찌 양식을 해 외국 사람의 입맛을 맞추겠는가?’하는 고민이었어요. 1991년 경주호텔학교에 며칠간 교육을 받으러 갔는데, 궁중음식으로 유명한 한복려 선생이 한식 강의를 하는 걸 보고 ‘아, 이거다’며 한식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해서 양식에서 18년, 한식에서 22년을 보냈지요.”


-한식과 양식에서 잔뼈가 굵으셨는데, 그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양식은 기본 레시피가 잘 정리되어 있어 그에 따라 요리하면 80~90%의 맛을 낼 수 있어요. 그러나 한식은 똑같은 재료를 써도 백이면 백 맛이 다 다릅니다. 정성의 차이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한식은 손으로 주무르는 게 많기 때문에 손의 온도나 주무르는 시간 정도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한식에 어울리는 다양한 소스를 개발하셨다고 들었는데….

“양식을 해 본 경험이 한식 소스 개발에 많은 도움이 됐어요. 한식 소스는 간장, 된장, 고추장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어요. 그러나 양식을 한식에 접목시키면 다양한 소스를 만들어낼 수 있지요. 똑같은 음식이라도 어떤 소스를 넣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 때문에 한식 소스 개발을 위해 많은 고민을 합니다. 20여 년 동안 고추장 맛나이 소스, 간장 맛나이 소스, 된장 맛나이 소스를 개발했어요. 된장을 3~4일간 숙성시켜 만든 된장 맛나이 소스는 생선을 구울 때 발라 구우면 비린내가 나지 않고 담백한 맛이 납니다. 또 고추장 맛나이 소스는 보통 비빔밥을 만들 때 초장이나 고추장을 사용하는데, 그 대용으로 쓸 수 있고, 간장을 졸여서 만든 간장 맛나이 소스는 냄새가 안 나면서도 음식을 하면 굉장히 진한 맛이 납니다.”

-요리에서 맛을 내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요리에 대한 열정으로 정성을 다하는 것이고, 둘째는 신선한 재료를 가지고 요리하는 것입니다. 특히 제 가족이 먹는 음식을 만든다면 절대 비위생적으로 만들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요. 이 같은 자세로 요리를 한다면 맛이 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맛을 지키기 위해 손님이 가고 난 후 남은 음식이 있는지를 관찰하고, 남겼다면 왜 남겼을까를 고민하여 변형을 가하거나 다른 메뉴를 개발합니다. 이게 지금까지 맛을 지켜온 비결입니다.”

-목동지역의 특성에 맞는 음식을 선보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음식입니까?


“참나물 불고기 냉채입니다. 요즘 주부들은 건강에 좋은 음식을 찾고 있는데, 참나물 불고기 냉채를 드신 후 집에 갈 때 소스를 달라거나 비법을 가르쳐달라고 해요. 그런데 일주일 후 다시 와서는 제가 준 레시피 대로 하니까 맛이 안 난다며 거짓말을 했다는 거예요. 사실 레시피를 정확하게 주었지만 저와 똑같이 맛을 내는 건 어렵고, 적어도 1주일 정도는 배워야 비슷한 맛을 낼 수 있지 않을까요. 일단 참나물은 싱싱해야 하고, 소스는 1주일만 숙성시켜야 해요. 소스의 주재료가 사과, 배, 양파, 씨겨자, 겨자 등 과일이기 때문에 오래 가면 향을 잃어버립니다. 날짜별로 소스를 만들어 두었다가 1주일 지나면 과감히 버립니다.”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시는데, 타고난 천재인가요? 아니면 노력하는 천재인가요?


“제게 스승이 없다고 하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저는 독학으로 공부했어요. 한 번 보거나 시식한 요리를 저 혼자서 나름대로 연구했습니다. 그러나 남이 만든 걸 보고 모방은 하되, 좀 더 맛있고 멋있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모시는 스승이 없어 서러움도 많이 받았죠. 호텔에서는 분업화가 이루어져 맡은 분야만 하기 때문에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배울 수가 없었어요.”

독학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김 명인은 한 달에 두 번 꼭 다른 음식점의 음식을 먹으러 다녔다. 양식에서 한식으로 전환한 후 서울시내에 있는 한정식집 300곳을 일일이 다 섭렵했다. 모임이 있을 땐 친구들과 다니고, 그렇지 않을 땐 집사람과 함께 맛집 순례를 했다.

“강남으로 가면 가격이 비싼데 비해 먹을 게 없고 외곽지역으로 가면 거리는 멀어도 먹을 게 많아요. 지역별로 음식이 약간의 특징이 있어요. 경기는 음식이 심심하면서도 단맛이 나고, 호남은 젓갈을 많이 쓰는 까닭에 맛이 굉장히 강하고, 경남은 음식이 매워 지방 특유의 맛을 느끼기가 어렵고, 강원도는 바다와 산을 끼고 있어 해산물과 산나물 요리가 발달해 있어요. 마지막으로 서울은 전국의 맛을 다 낼 수 있는데, 개성음식에 가까워요.”

-전통 한식과 전통에 새로움을 덧입힌 퓨전 한식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전통 한식은 궁중음식이라고 할 수 있어요. 궁중음식은 손이 많이 가지만 상을 차려놓고 보면 막상 먹을 게 없어요. 옛날 음식으로 전통을 계승해야 하지만 현대인에게 맞고 쉽게 먹을 수 있도록 개발한 게 퓨전 한식이지요. 옛날은 숟가락으로 모두가 함께 먹는 문화라면 요즘은 1인당 한 점씩 먹는 문화입니다. 해솔마루에서 선보이는 칠절판도 궁중음식의 구절판을 그릇을 변형시킨 겁니다.”

외국인은 구절판과 신선로를 최고의 음식으로 꼽지만 신선로를 먹을 수 있는 음식점은 시내에 많지 않다. 손이 많이 가는데 비해 사실 먹어보면 크게 맛이 나지 않는다. 단지 옛날 궁중에서 왕이 먹던 음식으로 테이블에 차려놓으면 모양새가 좋을 뿐이다.

-인생에는 전반전이 있고, 후반전이 있습니다. 후반전에 들어선 남다른 계획이나 자세가 궁금합니다.


“일 배울 때는 가난한 세대로 춥고 배고팠어요. 요즘은 요리사들이 대접을 받고 있지만, 처음에는 냉대도 받고 서러움도 많이 받았어요.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이름 석자 남겨보자며 열심히 노력한 결과 오늘날의 자리에 올랐어요. 이제 그동안 제가 만들어 놓은 레시피를 정리해 후배들에게 남겨주어야지요. 제가 가지고 갈 수는 없잖아요. 모아놓은 레시피는 사과박스로 10개 정도 됩니다.”

-늘 새로운 음식문화를 고민한다고 들었는데, 어떤 문화를 말하는지요?


“한국음식의 세계화를 말합니다. 외국인이 손쉽게 한식을 접할 수 있도록 다양한 소스를 개발해야 합니다. 소스가 있으면 외국인이 비비거나 졸이기만 하면 되니까요. 외국에 나가 한식 시연을 해보면 대단히 좋아해요. 한식이 즉석에서 만들 수 있고 신선도가 뛰어나고 건강음식이기 때문에 그렇지요.”

-요즘 화두가 한식의 세계화입니다.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해주세요.


“대학 교수와 공무원들이 한식 세계화를 주도하면서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어요. 40년 동안 외식 현장에서 일하면서 외국에 나가보면 북한에서 진출한 전문식당이 굉장히 많아요. 우리 정부도 외국 주재 한국대사관 근처에 한식당을 차려서 정부에서 선발한 한식요리사를 파견했으면 합니다. 정부가 장인정신을 가진 사람을 선발해 파견해간다면 한식의 세계화는 빨라질 것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Food&Art라는 조리연구회를 9년 째 이끌고 있는데, 후배들에게 제가 가진 모든 노하우를 전수해줄 생각이에요. 매달 레시피 5장씩 주면서 한식을 연구하고 조리를 해보게 하고 있어요.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조리사 40명이 각종 대회에 나가 좋은 성적을 내도록 제가 가진 노하우를 전달해주고 있어요. 처음에는 제가 사는 분당 지역 조리사로 회원을 모집해 ‘분당조리연구회’로 출발했는데, 최근 ‘Food&Art’로 바꾸고 한식에 관심있는 조리사를 회원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조리사들이 요리만 해서는 우물안의 개구리가 될 수도 있으므로 보다 넓은 시야를 갖도록 우리 음식문화에 대해 고민도 나누고 토론도 하곤 합니다.”


※집에서 따라해 보는 김성근 조리장의 비법 2제(題)


♠ 적어 튀김과 맛나이 양념소스



■ 김성근 조리장의 적어 튀김 레시피


적어 600g, 물 400㏄, 정종 200㏄, 통후추 5g, 월계수잎 2g, 레몬 4/1, 소금 20g

■ 맛나이 양념소스 레시피


고추장 100g, 고춧가루 100g, 간장 50㏄, 설탕 50g, 다진 양파 20g, 다진 대파 20g, 다진 사과 20g, 다진 배 20g

■ 볶음야채 레시피


양파 20g, 청피망 20g, 양배추채 20g, 실파 20g, 식용유 100㏄

■ 적어 튀김과 맛나이 양념소스 만드는 방법


① 적어의 아가미 외·내장과 비늘을 제거한 뒤 양념이 잘 스며들도록 어슷하게 칼집을 넣어 물과 레몬과 소금에 넣어 2시간 동안 재워둔다.
② 양념한 적어를 전분가루에 묻혀 170도의 기름에 3분간 튀긴다.
③ 식용유에 양파, 청피망, 양배추채, 실파를 넣어 볶고 맛나이양념을 넣은 후 거기에 튀긴 적어를 넣고 양념이 잘 섞이도록 하여 접시에 담는다. 참깨로 마무리하면 좋다.

♠ 참나물 불고기 냉채(4인분)



■ 김성근 조리장의 참나물 불고기 냉채 레시피


참나물 200g, 불고기 60g, 사과 20g, 배 20g, 다진 양파 20g, 다진 사과 20g, 다진 배 20g, 씨겨자 20g, 겨자 20g, 꿀 20g, 2배식초 2작은술

■ 불고기 양념 레시피


마늘 1작은술, 생강즙 1작은술, 참기름 1작은술, 설탕 1작은술, 간장 2작은술, 정종 1작은술
*위 재료를 혼합하여 1시간 정도 숙성한 뒤 프라이팬에 물기가 없이 볶은 후 차게 식힌다.

■ 참나물 불고기 냉채 만드는 법


① 참나물은 잎만 다듬어 찬물에 깨끗이 씻은 후 물기를 제거한다.
② 겨자는 뜨거운 물에 게어서 5분간 중탕을 한 뒤 식힌다.
③ 불고기, 사과, 배, 다진 양파, 다진 사과, 다진 배, 씨겨자, 겨자, 꿀, 2배식초를 잘 혼합하여 24시간을 숙성시킨다.
④ 참나물과 볶은 불고기에 냉채소스를 넣어 잘 버무리고 접시에 담은 후 기호에 맞게 배채를 넣는 등 장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