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원색의 거리 암스테르담 낭만과 자유가 넘실넘실

공유
0

원색의 거리 암스테르담 낭만과 자유가 넘실넘실

[안도현의 글로벌 경제투어(15)] 유럽 횡단(네덜란드, 덴마크, 스칸디나비아)

매춘까지 자유로운 네덜란드인의 실용적 사고


외국 관광지에서까지 외모로 평가하는 한국인


미녀들의 고향, 에스토니아에서 유럽문화 만끽


▲네덜란드암스테르담의새벽풍경
▲네덜란드암스테르담의새벽풍경
[글로벌이코노믹 안도현 데카트롱 동남아 개발총괄 이사] 고흐의 유화물감 냄새가 나는 듯한 암스테르담의 바다향과 다양한 인종의 네덜란드는 거인들이 사는 도시 같았다. 세계에서 가장 평균 키가 큰 네덜란드인은 바이킹의 후예들이고 거칠고 강한 골격과 늘씬하게 뻗은 다리, 그리고 빠르고 영악한 계산과 협상을 무기로 세계의 상권을 장악하는 세계적 상인으로 유명했다.

원색적인 거리와 포르노, 마리화나, 술, 사창가 등이 허가된 자유로운 암스테르담의 도시에는 세계의 배낭여행객들이 넘쳐나고 있었고, 렘브란트의 그림들이 연상되는 아기자기한 도시에 비치는 사선의 태양광선은 황금빛 도시와 유화들을 만들어 내고 있어 전문 사진가들이 촬영한 것처럼 멋진 사진들을 만들 수 있었다.

창문을 치며 호객 행위를 하는 프로 접대부들은 전문직업인 자격으로 세금을 내며 시민으로서 전 세계를 떠돌던 뱃사람들에게 서비스를 한다. 암스테르담을 성산업과 마약 등의 메카로 성장시키는 데 영향을 가져온 것에 대해 이념과 사고를 뛰어넘는 네덜란드인의 실용적 사고를 엿볼 수 있었다.

미국 뉴욕 역시 작은 국가 네덜란드인의 영향을 받았고, 남아프리카공화국,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역시 한때 네덜란드의 영향력이 미치게 되었으니 국가의 크기와 이념보다 실용적 사고가 현실적 강국의 요건이 되는지 경험하게 되었다.

경비절약을 위해 밤새 헤매기로 하였으나 장시간의 무거운 배낭을 메고 여행하며 얻은 허리 고통과 밀려오는 추위와 피곤을 이기지 못해 결국 암스테르담 역에서 노숙을 하게 되었다. 길에서는 잘 수 없다던 동생 역시 결국 박스를 깔고 잠든 나를 지키고 번갈아 서로를 지키며 노숙을 하며 날을 새웠다. 추위에 신문지를 덮으니 영락없는 노숙자와 다를 바가 없었지만, 다행히 수많은 길거리 배낭 여행객들이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덴마크의인어공주상
▲덴마크의인어공주상
유레일 패스를 통해 일정기간 동안 유레일을 탈 수 있어 함부르크에 도착했다. 기계와 콘크리트의 산업화 도시를 경험하며 함부르크 호수에서 키스를 하는 연인들을 볼 수 있었다. 유럽인의 거리낌 없는 애정 표현들을 자주 보며, 그들의 창의적인 사고와 행동들을 통해 새로운 디자인과 아이디어를 가져오고 그로 인한 국가의 부를 가져온다는 것이 부러웠다. 노동집약적인 제조업의 공정 절차에서 결국 창의적 아이디어와 신선한 디자인의 부가가치를 통해 수익을 높이는 유럽인들처럼 한국 역시 아이디어를 키우기 위해 자유로운 국민정서를 심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덴마크에서부터 노르웨이, 스웨덴은 비슷한 도시의 느낌이 계속되었다. 왕궁은 견고하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덴마크인들은 매우 소박해보였다. 유명한 ‘인어공주상’ 역시 생각보다 화려하거나 웅장하지 않았고, 비싼 물가의 코펜하겐은 가난한 여행객에게 오랜 기간의 체류를 허락하지 않았다.

유명한 맥주 공장과 간단한 관광 목적지를 빠르게 방문하고 스웨덴으로 넘어갔다. 세련되고 도도한 외모의 한국인들이 가난해 보이는 우리를 무시하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해외 여행 중에 만난 한국인들이 같은 한국인들을 차별하고 무시하는 행동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들에게는 세련되지 못한 옷을 입은 것이 문제였다.

▲노르웨이피오르드
▲노르웨이피오르드
유대인들은 서로 돕고, 중국 상인들까지 끈끈한 유대를 통해 견고한 네트워크를 전 세계에 만들어 놓는 반면, 최고의 두뇌와 높은 교육수준을 자랑하는 한국인들은 남북으로 비난하고, 교민들과 관광객, 심지어 같은 관광객끼리 한국사람들을 피하는 모습을 보며 분리시켜 통치(Divide and Rule)하는 영국의 식민지배 정책을 따라 조선을 통치하던 일본의 식민지배 정책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게 되었다.

수많은 약탈과 침공으로 유럽 전체에 금발과 푸른 눈의 유전 형질을 심어준 북유럽의 바이킹들은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포함하여 끊임없이 노르망디 및 갈리시아 지방을 개척했다. 그런 북유럽 거인의 후손들 속에서 우리는 계속 가난하고 초라한 한국인이 되어갔다.

노르웨이 피오르드의 거대한 협곡과 웅장한 산맥, 그리고 베르겐의 아기자기한 도시 풍경은 우리를 다시 가슴 설레는 여행의 재미를 느끼게 했고, 스웨덴의 해가 지지 않는 밤의 풍경은 밤새도록 피로를 모르고 떠들게 했다.

유독 동양인처럼 생긴 현지인들이 있어 말을 걸어보니, 역시 한국계 입양인이라고 했으며 한국에 가본 적은 없지만 꽤 많은 입양인들이 스웨덴에 산다고 했다. 같은 민족이지만 환경이 다르니 얼굴 표정과 커다란 키와 두꺼운 피부가 달라지게 되는 것이 신기했다.

스웨덴과 핀란드를 연결하는 페리 안에서 우리는 이케아에 근무하는 요한센이란 사람을 만나 친구가 되었고, 훗날 공무원이 되어 한국에 이케아를 유치하는 데 이 친구가 큰 도움을 주게 되었다. 세계적인 휴대폰 회사 노키아의 핀란드에 도착하여 순록고기를 맛보고, 핀란드식 사우나와 박물관들을 방문했다.

▲스웨덴의호수와건물
▲스웨덴의호수와건물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사람들이 영어에 익숙하고 금발의 푸른 눈을 가진 전형적인 북유럽인의 외양인 반면, 핀란드인들은 왠지 모르게 러시아 사람들과 비슷한 느낌이 나며 문화 역시 약간 달라보였다.

러시아의 미녀 테니스 선수 마리아 샤라포바와 닮은 미녀들이 온통 거리에 가득했다.
에스토니아에서 금발과 푸른 눈의 아름다운 미녀들이 엽서를 팔고 있었으며, 청소를 하거나 주방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과거 소련의 연방국에서 독립한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서 머물게 된 우리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와 슈렉에서 본 듯한 중세 유럽의 복장을 입은 현지인들 속에서 유럽의 문화체험을 실컷 할 수 있었다. 좁은 성곽사이의 도시에서 중세 유럽의 음식을 팔고 궁중 서커스 대원들이 묘기를 부리고 있었으며 바비큐와 감자를 굽는 노점상들은 시장경제의 발빠른 안내원이 되어 있었다.

독립국가연합(CIS)에 참여하지 않고 수만명의 소련군의 무력시위 앞에서도 묵묵히 독립운동을 지속하며 소련을 해체시키는 데 기반을 이룬 에스토니아인들은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과거에서 살고 있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에스토니아인이 추천해준 생선을 먹게 되었고, 그 음식 요리에 거의 모든 숙박객들이 강하게 항의를 하며 심한 악취의 에스토니아 음식을 멀리하게 됐다. 최악의 악취의 생선 비린내의 음식에 한 한국인 여행객이 고추장을 버무렸고 신기하게 먹을 만한 음식이 되어 한국인과 에스토니아인들이 모여 즐거운 꽁치 요리 저녁을 먹게 되었다.

과거 소련의 영향으로 KGB와 마피아가 많다고 했다. 떼거지로 몰려다니며 소리지르는 에스토니아 청년 중에 한 명이 나를 따로 불렀고, 이곳은 위험하니 나중에 길로 나오라며 나에게 자신의 문신을 보여 주었다.

▲핀란드의해양박물관
▲핀란드의해양박물관
갈고리 십자가의 나치 문양과 나치 친위대의 문신을 보여주며 자신은 신나치주의자이며 과거 러시아와 맞서던 독일을 지지하며 독립운동을 이끌던 사람들의 후손이며 외국인들을 혐오하지만, 동양인들을 좋아한다며 자신의 친구들이 길에 다니는 우리들을 공격할 수 있다며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아직 끝나지 않은 2차대전의 망령이 21세기에도 일부 젊은이들의 문신에서 살아나서 아름다운 경치에 취한 여행객의 마음에 강한 자극을 주었다. 우리는 유럽의 강대국이자 2차대전과 라인강의 기적의 국가, 독일로 향했다.

/글로벌이코노믹 안도현 데카트롱 동남아 개발총괄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