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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식 보호무역 정책 본격화…경제·외교 판도 대격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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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식 보호무역 정책 본격화…경제·외교 판도 대격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NAFTA 재협상·TPP 탈퇴 등 보호주의 무역정책을 본격화하고 있다 / 자료=글로벌이코노믹DB이미지 확대보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NAFTA 재협상·TPP 탈퇴 등 보호주의 무역정책을 본격화하고 있다 / 자료=글로벌이코노믹DB
[글로벌이코노믹 이동화 기자]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슬로건을 내걸며 출범한 트럼프 정권이 국정 모토인 ‘미국 우선주의’ 실현을 위한 본격적인 정상 외교에 돌입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정상회담 상대로 미국 주요 언론들이 꼽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아닌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를 선택했다. 메이 총리는 ‘서방국가 가운데 맨 마지막이 될 것’으로 예상됐던 만큼 주요 언론들은 “트럼프식 무역질서가 새로 정립되고 있는 분위기”라고 진단했다.
특히 22일(이하 현지시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방침을 밝힌 지 하루 만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선언하면서 국제 통상질서의 지각변동이 불가피하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취임식에 앞서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달러가 너무 강하다”는 노골적인 발언을 하면서 미국의 통화정책 전환기가 올 수 있다는 의견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통상정책과 외교정책까지 줄줄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미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제 정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나오고 있다.

미국의 국익을 위해 ‘이념보다 거래’를 중시하는 트럼프 정권에 대해 주요 외신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제일주의’가 유지된다면 미국은 물론 글로벌 경제가 어떻게 변할지 가늠하기도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 트럼프, 독단적 외교 행보
2009년 오바마 정권 출범 당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백악관 입성 첫 날인 21일 중동 4개국 정상들과 전화회담을 갖고 중동 평화를 논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당일 오바마케어를 무력화하는 첫 행정명령을 발동한 데 이어 멕시코 장벽 건설을 위한 행정명령 발동을 준비 중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취임 전 첫 정상회담 국가로 멕시코를, 첫 해외 방문지로 캐나다를 선택했다면 트럼프는 취임 전 일본과 만남을 갖고 취임 이튿날 미 중앙정보국(CIA)을 방문해 언론과 날을 세웠다.

관심이 집중됐던 푸틴 대통령과의 만남은 아직 잡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스푸트니크통신 등 러시아 현지 언론은 푸틴 대통령이 며칠 내로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회담을 하고 취임 축하 인사를 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만남 시기에 대해서는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날 준비가 돼 있지만 트럼프가 자국 내 과제를 우선시하기 때문에 수개월 후에나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는 반응을 보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는 오는 7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때 만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지만 트럼프 진영에서는 올 연말이나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 첫 정상회담 영국…뒷전 밀린 일본 전전긍긍
오는 27일 메이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정상 외교를 시작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31일에는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과 만날 예정이며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도 회담에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22일에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및 이란 핵위협에 대한 양국 협력을 논의하는 전화 회담을 가졌다. 양국은 내달 중 워싱턴에서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다.

메이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것은 백인우월주의 ‘대안우파’로 알려진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인 것으로 전해졌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영국이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하면 무역협상 시 맨 뒷줄에 세울 것”이라고 위협한 것을 단번에 뒤집은 셈이다.

WSJ 등 주요 외신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협상에 5~10년이 걸릴 것이라는 입장이었지만 트럼프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를 적극 지지한다는 뜻을 밝혀왔다”며 “동맹국 중에서도 ‘특별한 관계’로 여겨지는 영국과의 관계를 재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메이 총리 역시 22일 BBC방송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테러 대책 등 국제정세 협력과 향후 무역관계 등에 대해 폭넓게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영국 언론들은 메이 총리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중요성도 강조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아시아 주요 3국 중에서는 일본이 가장 먼저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성사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27일 미일 정상회담을 꿈꿨던 일본은 정상회담 1순위에서 밀려나며 “미국에 무시당하고 있는 게 아니냐”며 충격에 빠진 분위기다. 취임 1주일 후 첫 정상회담을 추진함으로써 미국과 일본의 돈독함을 알리려한 일본 정부의 전략이 수포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요미우리신문은 “아베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과 신뢰관계를 구축했다고 말해온 만큼 정상회담이 후순위로 밀린 것은 (미국이) 일본을 경시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첫 행정명령 ‘TPP 탈퇴’…‘대중국’ 통상정책 전 세계로 확대
백악관은 지난 20일 트럼프 취임식에 맞춰 ①미국 우선 에너지 계획 ②미국 우선 외교정책 ③일자리 창출과 성장 ④강한 군사력 재건 ⑤ 공권력 회복 ⑥미국인을 위한 무역협정 등 6대 국정기조를 공개했다.

집권 1기 국정기조에 취임 후 첫 실행공약으로 내걸었던 ‘중국 환율조작국 지정’은 빠졌지만 ‘미국 우선 외교정책’과 ‘일자리 창출’ ‘미국인을 위한 무역협정’은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국이 ‘중국 환율조작국 지정’에 대해서는 한 발 빼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미국과 중국 간에는 소리 없는 전쟁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새 행정부의 경제 수장들이 ‘반(反) 중국’ 노선을 공표하고 있는 만큼 미국 정부가 시기를 지켜보며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취임 직후 백악관 홈페이지를 통해 ‘4% 경제성장’과 ‘TPP·NAFTA 탈퇴 가능성’을 시사한 트럼프 대통령은 22일 NAFTA 재협상을 위해 멕시코·캐나다와 정상회담을 잡고 이튿날에는 TPP 탈퇴를 선언하면서 대선 후보 시절부터 내걸었던 ‘보호무역’을 이행한다는 사실을 국제 사회에 보여주고 있다.

취임 3일 만에 대선 유세기간부터 공약으로 내건 ‘취임 후 첫 100일 간의 실행 계획’ 중 의회 동의 없이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시행 가능한 5가지 중 하나를 실행한 셈이다.

주요 실행 계획은 ▲NAFTA 재협상 및 TPP 탈퇴 ▲대 중국 환율조작 조사 ▲에너지 생산제한 해제 ▲중단된 인프라 프로젝트 개시 ▲오바마케어 폐지 선언이다. 오바마케어의 경우 폐지 절차에 돌입한 상태여서 조만간 폐지수순을 밟을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를 위한 ‘신(新)고립주의’와 ‘보호무역주의’ 기조를 밝히면서 전 세계 각국은 “트럼프 시대 개막으로 인해 전후 70년 세계 질서가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중국에 글로벌 무역 주도권 내줄 수도
기존 질서의 대변혁을 예고한 트럼프 정권은 나토 동맹 무용론을 제기하고 EU 체제를 흔들고 있다. 또 적대국이었던 러시아를 끌어들여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한 중국을 견제하고 UN조차 무시하고 있다.

특히 ‘일자리 창출’이라는 공약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중국과 대립하면서 글로벌 보호무역의 파고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흔들며 중국과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트럼프 정권은 달러가치 강세 원인 중 하나가 중국 당국의 위안화가치 부당 관리라고 지적하며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만약 미국이 중국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무역보복에 나설 경우 G2 갈등이 더욱 심각해질 우려가 높지만 중국 입장에서는 글로벌 무역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최대의 호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NAFTA·TPP 등 다자간 무역협정을 재협상하거나 폐지하면서 고립주의 노선을 걷고 있는 반면 시진핑 주석은 지난 17일부터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연차총회에 참석해 G2국가로 급성장한 중국의 힘을 여실히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시 주석은 “중국은 자유무역을 종식시키려는 포퓰리스트 세력에 대항해 세계화를 지켜낼 것”이라며 자유무역의 수호자 역할을 자처했다.

CNN머니는 트럼프의 TPP 탈퇴 선언 후 “트럼프가 거대 자유무역 구상에서 탈퇴를 결정한 것은 스스로 중국에 막대한 영향력을 부여한 것”이라며 “중국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준 것과 다름없다”고 분석했다.

한편 23일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이번 주 내에 무역과 관련된 추가 행정명령이 발동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틀 후 백악관에서 열릴 트럼프 대통령과 메이 총리 간의 미·영 정상회담에서도 무역 관련 협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전 세계의 관심이 트럼프의 발언에 집중되고 있다.


이동화 기자 dh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