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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일가 유아독존 갑질…많은 사람들에게 큰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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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일가 유아독존 갑질…많은 사람들에게 큰 상처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138회)] 심리적 대물림의 두려움과 막중함

요즘 우리 사회에서 제일 유명세를 타고 있는 가족은 아마 한 재벌 그룹 회장의 가족일 것이다. 그것도 좋은 일로 유명세를 타기보다는 온 가족이 돌아가면서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을 ‘행패’를 부리면서 유명해졌다는 것은 이들을 지켜보아야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심리적으로 큰 상처를 주고 있다. 그동안 그 회사의 직원들이 오죽 그 가족의 ‘갑질’에 힘들었으면 지난 4일 저녁에는 그 회사에 몸을 담고 있는 직원 등 500여명이 모여서 ‘회장 일가 및 경영진 퇴진 갑질 스톱(STOP) 촛불집회’까지 열었을까?회장의 부인과 두 딸 그리고 아들까지 최근 몇 년 사이에 돌아가며 소위 ‘갑질’ 행태를 벌이며 사회적 분노를 일으켰다. 이들이 벌인 추태는 이미 언론에 많이 보도되었기 때문에 새삼 다시 언급한 필요도 없을 지경이다. 하지만 관심을 가져야 할 점은 “어떻게 온 가족이 돌아가면서 같은 행태를 보일 수 있을까?”하는 점이다.

이들이 보인 공통적 증상은 화가 나면 참지를 못하고 상대가 누구든 가리지 않고 고성으로 욕을 하고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폭행을 한다는 것이다. 소위 ‘분노조절장애(憤怒調節障碍)’를 앓고 있다는 것이다. 분노조절장애는 임상심리학이나 정신의학분야에서 정식적으로 사용되는 진단명은 아니지만, 그 증상을 쉽게 전달하기 때문에 전문용어보다 일상적으로 많이 회자된다.

직원 등 500여 명 갑질 스톱 촛불집회


두 딸‧아들까지 돌아가며 '갑질'에 분노


추태는 언론에 보도 언급할 필요 없어


공통적 증상은 '분노조절장애' 앓아


이들은 대수롭지 않은 사소한 사안에도 화를 참지 못하고 충동적이고 공격적인 말과 행동을 보인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이들은 사태 해결을 위한 효과적인 방식으로 습관적으로 화를 낸다. 또한 억울하다는 느낌 또는 부당함을 느끼며 복수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이들 중 일부는 분노를 표현한 이후에는 뒤늦게 찾아오는 후회나 공허함 등으로 인하여 힘들어하기도 한다.

분노조절장애의 기저에는 ‘행동화(行動化)’라는 방어기제가 놓여 있다. 방어기제는 지나친 불안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아(自我)가 사용하는 무의식적인 책략이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불안을 경험한다. 불안은 다양한 원인으로부터 올 수 있다. 크게 대별해 보면, 현실적 과제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고 느낄 때 오는 ‘현실적’ 불안이 있다. 또 대인관계를 잘 맺지 못해서 오는 ‘대인관계’ 불안이 있다. 그리고 지나치게 강한 본능적 욕구에 압도당할지도 모른다는 ‘신경증적’ 불안도 있고, 마지막으로 양심대로 살지 못할 것이라는 ‘도덕적’ 불안도 있다.

대한항공 직원들과 시민들이 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옆 계단에서 '조양호일가 및 경영진 퇴진 갑질 STOP 촛불집회'에 저항을 상징하는 벤데타 가면과 선글라스를 끼고 참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대한항공 직원들과 시민들이 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옆 계단에서 '조양호일가 및 경영진 퇴진 갑질 STOP 촛불집회'에 저항을 상징하는 벤데타 가면과 선글라스를 끼고 참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어떤 종류의 불안이든 그 강도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정도라면, 불안은 오히려 적응력과 효율을 높이는 긍정적 자극이 될 수도 있다. 서로 실력의 차이가 너무 나는 두 사람이 바둑을 둔다고 가정해보자. 실력이 좋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백발백중(百發百中)’ 이기기 때문에 패배에 대한 불안이 전혀 없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계속 승리의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 게임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당히 불안을 경험하기 위해 ‘몇 점’을 깔아주고 게임을 한다. 그래야 게임하는 동안에도 적당한 실패의 두려움을 맛보며 긴장하게 되고 승부욕을 느끼게 된다. 또한 승리한 후에도 기쁨이 배가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효과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선 과도한 불안을 경험하면 우리는 대중적 심리학에서 소위 ‘3F’라고 부르는 행동 중 하나를 하게 된다. ‘도망가거나(flee)’ ‘얼어불거나(freeze)’ 한다. 이 둘 다 효과적으로 과제를 해결하는 데는 방해가 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불안에 직면하고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싸워야(fight)’한다. 효과적으로 싸우기 위해서는 직면하고 있는 사안이 해결할 수 있다고 느껴야 한다. 살아가면서 항상 도망가거나 얼어붙을 수는 없기 때문에, 자아는 불안을 야기하는 사안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거나 왜곡하는 다양한 책략을 사용하여 불안의 강도를 조절한다. 이런 목적을 위해 자아가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다양한 책략을 방어기제라고 한다.

대인관계에서 오는 불안을 감소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방어기제들을 통칭 ‘미성숙한’ 방어기제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이런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일반적으로 미성숙하다고 칭하기 때문이다. 성숙과 미성숙을 가르는 손쉬운 판단기준은 얼마나 대인관계를 잘 맺느냐의 여부이다. 우리가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을 미성숙하다고 부르는 이유는 그들이 대인관계를 잘 맺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성숙한 사람은 비록 신체적 나이는 성인이지만 심리적으로는 아직 ‘아이’에 머물고 있다. 그들은 ‘성인 아이’인 것이다.

미성숙한 대인관계를 맺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 중의 하나가 ‘행동화’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행동화는 무의식적 충동이나 소망을 억제할 때 느끼는 불편한 감정을 참을 수 없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행동으로 표현함으로써 그와 연관된 불편한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대개 성숙한 사람은 마음의 충동이나 소망을 억제한다. 그리고 적당한 시간과 장소에서 적절한 방식으로 불편한 감정을 표현한다. 하지만 미성숙한 사람은 즉각적으로 화를 내거나 공격적인 행동을 한다. 그리고 자신도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적절한 설명을 하지 못한다.

미성숙 대인관계 맺는 사람들 특징


적당한 장소 등서 불편한 감정 표현


미성숙한 사람들은 불편한 감정을 억제할 수 있을 만큼 자아가 강하지 못하다. 자아가 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부모로부터 존중을 받아야 한다. 존중을 받는다는 것은 모든 행동을 다 용서해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성공과 실패를 할 수 있는 주체적인 한 인간으로서 대우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시행착오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자주 가져야 한다. 재벌의 자녀로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응석받이’로 성장한다면 제대로 자아를 키울 수 없다. 이들은 또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양심(良心)’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다. 양심은 ‘한 사회의 도덕이나 행동규범이 내재화’ 된 것이다. 어느 사회나 대인관계에서 행하여야 하는 바람직한 행동에 대한 도덕이나 행동규범이 있다. 어린이들은 아직 이런 내용이 ‘내재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보호자가 대신 양심의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도덕적이거나 사회적 규범에 어긋나는 행동을 반복적으로 하게 된다.

양심도 배워야하고 경험해야하고 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이 값’도 못한다고 지탄을 받으며 ‘철이 덜 들었다’고 조롱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 교육은 당연히 가정에서 부모로부터 받기 시작해야 한다. 교육 중에서도 가정교육이 제일 근본적이고 중요한 이유이다. 그러기위해서는 부모 자신이 교사라는 사실을 깨닫고 교사다운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 “문제아동 뒤에는 반드시 문제부모가 있다”는 격언은 새삼스런 것도 아니다.

몸이 아파서 병원을 찾으면 먼저 해당 질병에 대한 ‘가족력’의 유무를 조사한다. 유전에 영향을 받는 질병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체적 질병만 ‘유전’되는 것이 아니다. 비록 그 기제가 생물학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부모의 행동 경향은 자녀에게 대물림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하면, 부모의 행동 경향은 ‘심리적’으로 자녀에게 유전된다.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자아와 양심이 길러지며, 부모의 행동을 보고 익히며 성장하기 때문이다. “자녀의 됨됨이를 알고 싶으면 그 부모를 보아라”는 격언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진실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다시 한 번 가정의 소중함과 부모됨의 막중함을 깨닫는 5월이 되어야 한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
한성열 고려대 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