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에 들어와 내우외환에 시달리던 조선은 붕괴의 길을 가고 있었다.
이들 중 특히 김홍집은 과거 부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이었지만, 물밀듯이 밀려오는 외세의 압력 속에서 난세를 이끌어가고자 분투했던 인물이라 재평가 되고 있다.
김홍집은 청일전쟁과 갑오경장, 동학 봉기와 아관파천 등 역사의 격변기 속에서 네 번이나 총리대신직을 맡아 국정을 총괄했던 정상급의 개혁 관료였지만, 1896년 2월 11일 아관파천 직후 고종의 밀명에 따라 정식 재판 없이 경무청 순사에 의해 격살된 뒤 군중들로부터 시신이 짓이겨지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그는 왜 국민의 분노와 지탄의 대상이 되어 대역부도를 저지른 인물로 당대의 평가를 받게 되었을까?
온기동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1699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