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년 어린이날부터 오월 말까지 안동·예천 접경지 경북도청 복합문화공간 동락관 1층, 도청 정원, 원당지에서 열린 회화, 조각, 설치에 걸친 양순열(梁順烈, Yang Soon-yeal)의 제20회 개인전 「대모신(大母神) 오똑이」展(Mother Earth, Ottogi)은 동양적 감성의 서양적 터치를 견지하고 엄청난 갤러리를 모으면서 의미적 전시를 마감했다. 대형 오똑이는 원당지, 청사 마당에 설치되어 도청 전체를 전시장 화(化)하였다. 야트막한 검무산이 내려다보며 마당 오똑이와 소통을 한다. 대모신 오똑이가 아우르는 도청은 그 어느 때보다도 안정되고 평화스러운 공간으로 비쳤다. 봄빛 완연한 너른 도청(7만4천여 평)은 양순열의 50여 점의 예작을 영접했다.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주최 제40회 ‘올해의 최우수예술가상’ 수상작가 양순열은 동양화로 출발하여 다양한 소재로 표현영역을 확장하고 인접 장르를 변주하는 멀티 아티스트이다. 작가의 일관된 주제는 시적 공감을 부르는 존재의 의미와 자애와 존엄의 표상인 어머니와 호모 사피엔스에 걸쳐있다. 그녀는 운율을 퇴적층으로 삼고 서사를 써내면서, 원초적 고향인 어머니와 확장된 모성 회복 기원의 모상(母像)과 인간에 대한 심오한 고찰로 ‘보통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시대적 위기 극복을 위한 영적 교감을 모색하면서 사색의 공간을 제공해 왔다.
대모신의 분신들은 모성의 회복과 인류의 구원을 염원하는 투사물이다. 작가는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근본적 분리를 해소하고, 상생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양순열의 오똑이는 매끈하고 현대적이며, 단순할 정도로 간결하다. 부드러운 유선형의 오똑이는 자연을 복사해가며 생명의 본질을 탐구해간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만물동근(萬物同根)이며, 평등을 기반으로 서로를 밝게 비추는 대칭축이다. 크기를 달리하거나 단색으로 자태를 뽐내는 오똑이와 더불어, 경북도청 정원의 무지갯빛 오똑이는 동상이몽의 존재를 아우르는 어머니를 표현한다. 금전만능 시대의 경쟁적 인간을 감싸는 것은 대모신 ‘오똑이’이며 평화롭고 풍요로운 미래를 상징한다.
인물이 되건 양식이 되건 탐구심이 왕성한 양순열이 찾아 나선 ‘호모 사피엔스’ 호(號)의 종착지는 어머니로 귀결된다. 그녀는 초기 회화 작품 ‘꿈과 사랑 어머니-꽃 나들이’를 포함한 일곱 작품으로 작품을 위한 어머니가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그리움과 동경의 어린 시절을 여린 서정으로 엮어낸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의 마지막 장은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이다. 십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 종(種)만이 살아남았던 사실을 직시하면 모성을 상실한 지구는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작가는 ‘모성의 회복’을 대안의 핵심으로 제시한다.
양순열의 경북도청 전시회는 전쟁과 다름없는 작업이었다. 동락관 전시를 위해 창문으로 나 있는 한쪽 벽면에다 나무판을 붙이고 다듬으면서 조도를 고려한 조명 작업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공력을 들였다. 서울에서 안동까지 모상(母像)과 ‘호모 사피엔스’像을 이동하는 작업도 만만한 작업은 아니었으며, 원당지에 개스를 주입하며 대모신을 세우는 일도 무척 힘든 작업이었다. 어머니像은 스테인리스 작업에 이어 다양한 색채로 칠을 입히고 높이에 따르는 작업은 상상을 초월하여 전문가만이 헤아릴 수 있는 고통을 수반했다. 이 모든 것을 진두지휘하는 일은 전쟁과 다름없었다.
작가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입자를 다양하게 치밀하게 숱하게 차별화시키면서 희로애락을 연결하여 부대끼며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은유한다. 그런 모습들은 사대성인 작업 아크릴로 번지고 이슬람교, 불교, 기독교를 종교로 갖는 호모 사피엔스를 대상으로 삼는다. 예수 석가모니 마호메트 공자라는 4대 성인을 캔버스에 담는다. ‘브레인버스트’ 유형의 오브제 작품은 밀가루 반죽처럼 만지거나 발로 짓이긴 것 같은 모습으로 강렬한 에너지를 분출시키며 전시 주제의 모성을 뒷받침하는 원색으로 인간의 원초적 신비를 탐색한 작품이었다. 흙은 인성(人性)을 상징한다. 흙과 신, 인간 사이의 관계를 읽게 해 주는 ‘신이 흙으로 인간을 굽다’는 버려진 식기 건조기 속에 대표적 토우(土偶)가 십여 점 들어 있었다.
‘태평무’에서 왕비가 평화와 풍요를 기원하며 춤을 추듯 양순열의 ‘대모신 오똑이’는 기원의 심도감을 간직한 모상을 보여주고 있고 영육(靈肉) 간의 씨메트리 감(感)이 돋보인다. ‘호모 사피엔스’와 ‘어머니 오똑이’가 교차하여 전시된 동락관에서 억척 어멈의 ‘오똑이’는 크기를 달리하며 무지개, 블루, 블랙, 핑크, 실버 등의 색깔로 관람객이 상상하고 싶은 어머니의 모습을 선택하게 만든다. 도청 정원의 ‘대모신 오똑이’는 다름의 가치를 수용하고 보듬어 주는 어머니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작가는 이 작품에 기(氣)를 불어 넣었다.
양순열의 개인전 「대모신(大母神) 오똑이」展은 규모와 내용, 기간과 작품의 크기, 장르와 소재 등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독창적 전시회였다. 작가는 소박한 듯 보이면서도 내재된 열정적 역동성을 표출시키며 현생인류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 엄숙한 경건성을 보여주었다. 작가는 단순하면서도 단순함이 아닌 내공이 촘촘히 박힌 작품들로써 우울을 정제하고 화평을 지향한다. 널찍한 공간에서 만다라 의식 같은 의미있는 전시회는 봄날의 추억을 남기고 사라졌다. 아직, 그곳 도청 뜰에는 평안을 기원하는 ‘대모신 오똑이’가 무지개를 피워올리고 있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