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빅스텝이냐 베이비스텝이냐" 한은, 주름살 깊어진다

공유
0

"빅스텝이냐 베이비스텝이냐" 한은, 주름살 깊어진다

24일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결정 회의에서 확정
"한미간 금리차 좁혀야"···빅스텝 가능성 무게
"저성장· 가계부채 고려" ··· 속도 조절론도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12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정기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12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정기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달 하순 열리는 올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앞두고 한국은행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기준금리를 인상하되, 어느 스텝을 밟아야 할지 선택의 기로에 놓였기 때문이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은은 올해 한 차례 남은 금통위를 오는 24일 개최할 예정이다. 시장에선 이번 금통위에서도 기준금리를 올리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 다만, 금리 인상폭 즉, '빅스텝(한 번에 0.50%포인트 기준금리 인상)이냐', '베이비스텝(일반적인 인상폭인 0.25%포인트 기준금리 인상)이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한은이 빅스텝을 단행할 경우 올해에만 지난 7월과 10월에 이은 세 번째 빅스텝이 된다. 전례를 찾아 볼 수 없는 급격한 금리 인상이다. 그럼에도 빅스텝 가능성에 더 무게가 실리는 데는 미국과의 금리 차이 때문이다.

앞서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올리면서 미국(3.75∼4.00%)과 한국(3.00%)의 기준금리가 상단 기준 1%포인트까지 벌어졌다.

미국 금리가 한국보다 높아지면 투자자들은 수익성이 높은 달러 자산을 선호하게 된다. 이에 따라 외국인 투자자금이 유출되고 환율이 오르게 된다.

한국경제연구원의 '한미 기준금리차 변화가 환율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과의 금리차가 1%포인트로 벌어질 경우, 원·달러 환율은 8.4%포인트 추가 상승해 더욱 가팔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환율이 오르면 국내 수입 물가도 올라 가뜩이나 치솟는 물가를 더욱 자극하게 된다.

최근 물가가 다시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10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5.7% 오르면서 3개월 만에 다시 상승폭이 커졌다.

문제는 올해 마지막 금통위를 앞둔 한은과 달리 연준은 12월 한 차례 더 기준금리 결정 회의를 남겨둔 데 있다. 연준의 금리 인상 폭에 따라 연말 한미 간 금리 격차는 최대 1.75%포인트까지 벌어질 수 있다.
지금까지 미국의 기준금리가 한국보다 높았던 금리 역전기에서 1.50%포인트(2000년 5∼10월)가 최대 격차였다. 때문에 미국의 움직임에 따라서 한은이 임시 금통위를 열 수도 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하지만 한은 내부에서는 아직까지 임시 금통위에 대해선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고 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미 금리 역전 현상이 장기화되거나 금리차가 벌어질수록 자본유출의 트리거가 될 수 있다"면서 "한은이 미국의 금리 인상 보폭에 최대한 발맞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레고랜드 사태로 자금시장 경색이 풀리지 않고 경기 침체 우려마저 커지자 베이비스텝에 대한 요구도 커지고 있다.

올 3분기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은 전 분기 대비 0.3% 성장했다. 하지만 4분기에는 글로벌 경기둔화 등 대외 여건 악화로 수출 둔화세가 더욱 뚜렷해질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10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우리나라 수출액은 전년 동월보다 5.7% 감소한 524억8000만달러에 그쳤다.

특히, 누증된 가계부채를 고려한다면 한미 금리차를 축소하기 위한 급격한 금리 인상은 더 큰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형석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올해 가계의 변동 금리 비중이 81.6%로 최근 20년간 평균치를 상회하는 상황"이라며 "가계 금융 불균형이 심화된 현 상황에서 과도한 기준금리 인상은 경기 침체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지난 1일 공개된 10월 한은 금통위 의사록에도 이 같은 한은의 복잡한 심경이 담겨있다. 지난달 12일 금통위 당시 한은은 빅스텝을 단행했지만 주상영·신성환 금통위원은 베이비스텝이 적절하다는 소수의견을 냈다. 앞서 지난 7월에는 금통위원들의 만장일치로 빅스텝을 단행했지만 이번에는 일부 금통위원들이 빅스텝에 반대 의견을 내면서 의견 차이를 보인 것이다.

베이비스텝을 주장한 한 금통위원은 "내년 세계 경제가 침체 국면에 진입하면서 소규모 개방 경제인 한국도 그 영향을 크게 받을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업황 전망 역시 상당히 불투명하다"며 "과도한 금리 인상이 단기적으로 물가 안정에 주는 효과가 제한적이다. 중기적으로 대외 리스크 요인과 맞물려 성장 경로의 추가적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우려도 크다"고 강조했다.

빅스텝을 주장한 금통위원들 중에도 금리 인상 속도 조절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또 다른 금통위원은 "기준금리는 중립 금리를 다소 상회하는 수준까지 인상될 필요가 있다"면서도 "향후 인상 폭과 속도는 해외 주요국의 경기 및 금리 경로, 국내 성장과 물가 흐름, 금융 안정 상황과 금융시스템 전반의 감내력 등을 고려해 결정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성화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h122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