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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철의 법률톡톡] 연인 간 강간죄 사건이 늘어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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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철의 법률톡톡] 연인 간 강간죄 사건이 늘어난 이유

민경철 법무법인 동광 대표변호사
민경철 법무법인 동광 대표변호사
성범죄 양상도 시대적 흐름에 따라서 변한다. 최근에는 디지털 성범죄가 전통적인 성범죄를 압도하고 있지만, 강간죄도 기존과 다른 형태로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과거에는 인적이 드문 곳에서 모르는 사람을 대상으로 범해졌다면, 지금은 대부분 아는 사람 사이에서 발생한다. 예전 강간죄가 범인의 성욕이나 반사회성, 폭력성의 발현이었다면, 지금의 강간죄는 두 사람 사이의 가치관이나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형법에 규정된 강간죄는 폭행이나 협박으로 사람의 반항을 억압하여 간음하는 것으로 3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처벌하며, 상대방의 반항을 억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폭행이나 협박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한 특징이다.

이는 상대방 의사에 반해 성행위를 할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강제력을 행사한다는 의미이다. 통설과 판례에서 폭행 협박의 의미는 본래 ‘최협의’로 가장 강도 높은 폭력을 뜻했으나, 그 의미가 점차 완화되면서 강간죄 성립범위도 확대됐다.

지금은 판례에 의해 기습강간도 인정되므로 폭행 협박이 간음에 선행되지 않고 동시에 행사될 수 있다고 본다. 기습강간이란 피할 틈 없이 갑자기 간음(=삽입)하면 간음행위 자체를 폭행으로 보고 강간죄 성립을 인정하는 것으로, 폭행의 강도가 훨씬 완화되고 범죄 성립 범위는 확대된다.

한 사건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피해자와 동거하던 피고인이 성관계를 요구하자 피해자는 생리 중이라 거절하였다. 이에 피고인이 끌어안고 자위행위만 하겠다고 애원하여 피해자가 허락했으나, 피고인이 성기를 피해자의 둔부에 스치듯이 자위행위를 하다가 갑자기 삽입하였다. 그리고 거부하는 피해자를 강하게 끌어안고 5분간 간음하다 사정하여 강간죄로 기소되었다. 대법원은 비록 간음을 시작할 때는 폭행·협박이 없었지만, 간음과 동시에 폭행하면서 간음한 것으로 이는 강간죄를 구성한다며 기습강간을 인정하였다.(2016도16948)

이 사건에서 피해자는 피고인의 자위행위를 도와주며 성적으로 흥분하게 만들었으나 원치 않은 간음을 당했다. 비록 폭행·협박의 정도가 낮지만, 기습강간을 인정해 이 정도의 유형력 행사로도 강간죄가 인정된 것이다.

사귀다 헤어졌거나, 사귀고 있거나, 동거하는 상대방으로부터 강간죄로 고소당하는 일이 흔히 발생하고 있다. 고소당한 피의자는 원래부터 성관계하던 사이인데 굳이 폭행·협박을 동원하여 강제적으로 하거나 그럴 필요도 없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연인 간, 지인 간 벌어지는 상당수 사건에서 유죄가 선고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의 강간죄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폭행·협박의 범위가 점차 확대돼 상대방이 성관계에 동의하지 않았는데 약간의 강압성이 있었다면 유죄가 선고된다.

둘째, 과거에는 합의나 동의로 평가되던 행위가 지금은 달리 평가되며, 오해나 가치관의 차이에서 사건이 발생한다. 과거에는 남녀가 모텔에 함께 투숙하면 성관계의 묵시적 합의라고 여겼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같은 객실에 투숙하고 한 침대에 누웠다고 성관계에 대한 동의라고 생각하다가는 낭패를 본다.

셋째, 두 사람 사이가 원만할 때는 문제 없다가, 헤어지거나 관계가 틀어지면서 강간죄로 고소당하는 일이 잦다. 달리 말하면 헤어지지 않았거나 끝까지 좋은 관계가 유지됐다면 문제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강간죄로 고소당하면 고소인에게 다른 동기나 의도가 결부된 경우가 많다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피의자가 종종 있다. 그러나 고소인의 동기나 의도를 입증해줄 목격자나 영상이 존재하지 않아서 피의자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피의자가 무혐의를 주장하려면 행위 당시에 유형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고 고소인이 사건 이후 피해 주장과 모순되는 행위, 즉 강간당했다고 보기에는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을 했다는 점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고소인의 다른 동기나 의도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허위 주장을 할 이유나 동기의 존재는 고소인 진술의 신빙성을 탄핵할 중요한 요소가 된다.

연인 간 강간 사건으로 수사 단계에서 불송치 결정이 나거나 불기소 처분이 나오면 다행이지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재판절차를 통해 유무죄를 다투어야 한다. 최근의 성범죄 처벌 경향을 고려하면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거나 술에 만취했다면 신체 접촉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민경철 법무법인 동광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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