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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살인 게임이 살인 부른다?...20년간 발전 없는 게임 혐오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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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살인 게임이 살인 부른다?...20년간 발전 없는 게임 혐오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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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원용 기자
대학교 미디어학부생으로서 공부한 내용 중 '배양(Cultivation) 이론'이라는 내용이 있었다. 미국의 커뮤니케이션학 교수 조지 거브너의 주장을 토대로 한 이 이론은 "미디어가 폭력적인 사건을 자주 보도하면, 뉴스 시청자들이 세상을 폭력적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경향성이 자라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디어의 일익을 담당하는 기자로서 게임 속 폭력이 이용자들의 폭력에 대한 무감각을 배양할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국내 모 주요 일간지에 8일 게재된 '내가 썰었어…칼로 베는 살인 게임에 빠진 청소년들'이란 기사의 논조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사회면의 복지·의료면에 실린 해당 기사는 PC방에서 '발로란트'나 '서든어택' 등 1인칭 슈팅(FPS) 게임을 플레이하는 20대 이하 게이머들과의 인터뷰, 폭력적 게임가 폭력성의 상관관계에 대해 여러 논문, 학자들이 남긴 코멘트 등을 실었다.

이를 토대로 "게임업계의 인기 상위 10개 게임 중 4개가 총·칼 게임이며 사실적으로 칼을 휘두르는 모습을 담고 있다"며 "칼을 이용한 살인 게임과 최근 흉기를 이용한 묻지 마 살인, 협박 등 범죄 사이 연관성이 주목된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해당 기사에서 인용한 논문 2건은 2001년 대한가정학회가 발표한 '남자청소년의 컴퓨터 게임이용과 게임 중독성 및 공격성', 2013년 중앙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교실이 발표한 '게임의 공격성' 논문 등 시대적으로도 20년, 10년 이전의 것이었다.

또 그 내용을 상세히 살펴보면 우선 2001년 논문의 경우 연구진은 "게임에 중독된 이들이 현실 왜곡, 자제력 상실 등 공격성에 유의미한 영향력을 미친다"면서도 "다만 게임 활동 변수가 공격성에 미치는 영향은 유의미하게 발견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즉 '중독'이 문제인 것이지 '게임' 자체가 문제라고 짚진 않았다.

2013년 논문 역시 마찬가지다. '게임이 공격성을 증가시킨다'는 소제목의 단락을 통해 이러한 주장을 다루긴 했으나 반대로 '공격성을 증가시킨다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단락도 있다. 또 각 단락에 대한 반론도 함께 다루고 있다.

이를 토대로 중앙대 연구진은 "기존의 연구는 대부분 단면적 연구로서 한계가 있어 장기적 추적 연구로 뒷받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특히 "지나치게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관점만을 부각시켜 단기간에 해결하려는 시도가 아닌, 게임 산업에 대한 통합적 시각의 접근가 대처가 필요하다"며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지 말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해당 기사에선 이러한 내용은 배제하고 "온라인 게임 폭력물은 게이머가 직접 키보드, 마우스로 체험하는 형태여서 텔레비전의 수동적 폭력물 시청에 비해서 훨씬 더 효과가 크다"는 내용만을 인용했다. 연구진이 하지 말 것을 당부한 '부정적 관점만을 부각시키는' 보도로 비춰질 수 있는 대목이다.

또 해당 논문의 말미에는 '게임문화재단이 게임 과몰입(중독) 환자를 치료하는 데 지원한 것에 감사드린다'고 명시됐다. 게임문화재단은 문화체육관광부가 3N(넥슨·엔씨소프트·넷마블) 등 주요 게임사들이 함께 후원하는 재단이다. '폭력에 무감각해질 수 있는' 게임 중독의 폐해를 막기 위한 게임업계와 정부의 협력 활동 또한 기사에선 배제됐다.

이러한 논문 내용을 걷어내고 나면 기사에 남는 것은 결국 '폭력적 게임이 폭력을 낳을 수 있다'는 막연한 명제 뿐이다. 2000년도 초반부터 이어져 온 "게임 중독 학생이 살인 체험을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는 둥 자극적인 제목의 사회면 기사들, 모 방송사에서 2011년 "PC방 전원을 갑자기 내리자 게이머들이 폭력 게임의 주인공처럼 난폭하게 변했다"고 주장한 것 등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해당 일간지의 기사 옆에 명시된 '많이 본 뉴스' 톱 10을 살펴보니 '아들·시누이 막장 폭로전', '무릎에 타구 맞아', '역주행 택시 총알처럼 돌진해 쾅', '학교서 담임 잇따라 극단 선택' 등 폭력적으로 비춰질 수 있는 제목의 뉴스가 4개나 명시됐다.

독자 여러분에게 묻고 싶다. "인기 상위 게임 10개 중 4개가 폭력적이기 때문에 게이머들이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다면, 인기 상위 기사 10개 중 4개가 폭력적인 뉴스를 보는 독자들도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을까?"


이원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wony92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