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 명분 삼아 '숨고르기'…일본·중국 협상전략 면밀 분석
조선·기술 등 핵심 산업 경쟁력 자신감…섣부른 타결보다 국익 우선 신중론
조선·기술 등 핵심 산업 경쟁력 자신감…섣부른 타결보다 국익 우선 신중론

로이터통신이 인용한 여당 내 여러 소식통에 따르면 새 정부는 주변 강대국인 일본과 중국의 협상 사례를 면밀히 살피며 협상력을 키우는 한편, 미국의 압박에는 신중하게 대처할 방침이다. 이 대통령은 통상적인 두 달의 인수 기간 없이 6월 3일 조기 대선에서 승리한 직후 대통령직에 취임했으며, 선거 전날 "가장 시급한 현안은 미국과의 무역 협상"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새 정부의 이러한 전략은 한국 경제의 미래가 이번 미국과의 무역 협상 결과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반도체, 자동차, 조선 등 한국의 핵심 산업 대부분이 세계 무역 환경에 깊숙이 발을 담그고 있다. 더욱이 새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올해 경제 성장률이 0.8%라는 낮은 전망치(2020년 이후 최저)와 함께, 윤석열 전 대통령의 실패한 계엄 시도로 말미암아 극심하게 갈라진 국내 여론을 추슬러야 하는 어려운 숙제도 안고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각국에 수요일까지 가장 좋은 조건의 무역 협상안을 내라고 요구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한국 역시 추가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나온다. 로이터 통신이 입수한 서한 초안에 이런 내용이 담겼으나,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해당 서한을 받았는지 확인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약 6개월간 지도력 공백 끝에 출범하는 새 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협상 속도 조절의 명분으로 삼아, 미국과 다른 나라 사이 관세 협상을 지켜보며 대처할 것으로 보인다.
◇ 새 정부 '틀 재검토'로 시간 확보…주변국 협상 주시
이 대통령의 통상 전략 수립에 참여한 한 전문가는 "새 정부는 협상의 틀 전체를 새로 살펴봐야 하며, 이는 미국 쪽도 거부하기 어려운 시간 벌기용 완충 장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또 새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바로 시한 연장을 요청하기는 어려울 수 있으며, 이 대통령의 외교안보 최고 보좌관 역시 협상 경과를 지켜본 후 연장 요청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고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국회의원은 "미국 내부 사정과 다른 나라들의 협상 국면이 계속 바뀌고 있으므로 관망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옳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들의 협상이 길어지는 것이 한국에 시간을 벌어줄 수 있다는 셈법이다.
선거 기간 중 이 대통령이 무역 협상 주요 내용에 관해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은 것은 "전략적 침묵"이었다고 당 관계자는 풀이했다.
한편 한국무역협회는 이 대통령 당선 후 "빠르게 변하는 세계 무역 질서에 신속히 대처하고 실리를 따지는 협상 전략을 펴야 한다"고 주문했다.
◇ 일본·중국 사례는 '타산지석'…공동 대응 가능성도
현재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매긴 25% 관세를 포함해, 교역 상대국들에 대한 전면적 관세는 소송이 진행 중인데도 여전히 효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터에 또 다른 통상 전문가는 "여러 이유로 중국과 일본이 우리에게 참고가 될 것이다. 중국은 미국 정책 변화 가능성 면에서, 일본은 비슷한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에서 배울 점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24%의 관세를 물게 된 일본은 핵심 산업인 자동차에 대한 25% 특정 품목 관세 면제가 없다면 서둘러 합의하기는 어렵다는 태도다. 중국은 미국과 관세를 크게 낮추기로 합의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중국이 합의를 어겼다고 주장하며 더 강한 조치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두 소식통은 에너지 구매와 자동차 관세에 대한 공동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미국의 관세에 함께 대처하는 일은 중국보다 일본과 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전했다.
당 관계자에 따르면, 이 대통령 쪽은 새 행정부가 전략을 짜는 동안 기존 관리들이 협상을 이어가는 일종의 '두 갈래' 과도기가 있을 것으로 여기고 있다.
◇ 조선·기술 경쟁력은 '든든한 지렛대'…섣부른 양보 경계
일부 전문가들은 한국이 조선, 기술 등 핵심 산업 경쟁력을 바탕으로 유리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본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자문회사 TD 인터내셔널의 제이 트루스데일 최고경영자(CEO)(전직 미 외교관)는 "정치에 민감한 산업에서 한국의 중요성을 생각할 때, 대통령의 국내 현안을 뒷받침하는 제안이 상대적으로 쉬울 것"이라고 평가했다.
모건 스탠리의 캐슬린 오 한국·대만 담당 수석 경제 분석가도 "한국이 (대만 등) 다른 수출 경쟁국과 견줘 협상 타결의 통로나 범위가 넓다"고 분석하며, 미국산 제품 수입 확대를 통한 미국과의 무역흑자 줄이기, 농산물 관세 낮추기 등을 협상 카드로 내놨다. 그러나 다른 통상 전문가는 "협정에 서명한 뒤 관세가 바뀌면 쓸데없는 양보가 될 수 있다"며 "우리에게 협상 수단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