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설정한 관세 정책 시한인 지난 1일(이하 현지시각)을 앞두고 미국의 보세창고와 외국무역구역에서 기업들이 재고를 대거 출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율 관세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물품을 창고에 더 이상 보관하지 않고 시장에 서둘러 풀려는 수요가 급증한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의 자의적 관세 시한이 다가오자, 창고를 관리하는 업체들에 고객사의 긴급 요청이 잇따랐다”고 3일 전했다.
보세창고 운영업체 EP로지스틱스의 오타비오 사아베드라 대표는 “이번 주 거의 모든 재고가 출고되고 있다”며 “사실상 패닉 출고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 회사는 미국 엘패소와 멕시코 후아레스에 걸쳐 창고를 운영하고 있으며, 보관 중인 수입품 규모는 2000만~5000만 달러(약 264억~660억 원)에 이른다.
◇ ‘유예 전략’ 무너진 보세창고…“더 늦으면 손해”
보세창고는 외국산 제품을 미국으로 반입한 뒤 관세 납부를 미루고 보관할 수 있는 제도로 기업들은 통상 향후 관세가 낮아질 가능성을 기대하며 창고 내 보관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반대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는 더 이상 낮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를 내면서 많은 기업이 서둘러 제품을 시장에 풀기로 결정했다.
안젤라 산토스 아렌트폭스시프 변호사는 “우리 고객 대부분이 관세가 더 이상 낮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지난주 제품 출고 계획을 세웠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아무도 ‘0% 관세’를 기대하지 않게 됐고 가장 좋은 조건이 10%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현재 대부분 수입품에 대해 최소 10%, 많게는 50%의 고율 관세를 적용하고 있다.
◇ 외국무역구역은 관세율 고정…보세창고는 ‘루렛게임’
외국무역구역은 보세창고와 유사하게 관세 유예 기능을 하지만 물품 반입 시점의 관세율을 고정할 수 있어 보다 예측 가능성이 높다. 지난 2023년 기준으로 미국에는 약 400개의 외국무역구역이 운영 중이며 총 9490억 달러(약 1251조 원)의 물품이 반입되고 1490억 달러(약 197조 원)어치가 수출됐다. 외국무역구역에서 일하는 인력은 약 55만명에 달한다.
반면, 보세창고는 출고 시점의 관세율이 적용되기 때문에 향후 관세가 급등할 경우 오히려 ‘위험 자산’이 될 수 있다. 실제로 기업들은 연간 수만~수십만 달러에 이르는 창고 내 보관 유지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관세 회피 전략으로 활용해왔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잭슨 우드 데스카르트 산업전략 이사는 “지금은 창고 보관 비용보다 관세 인상으로 인한 손해가 훨씬 크다는 계산이 우세하다”고 말했다.
◇ “창고 못 구해 변호사까지 동원”…시장 전반 불안감 고조
보세창고 수요가 급증하면서 공간 부족 현상도 벌어졌다. 산토스 변호사는 “한 고객은 직접 창고를 찾지 못해 결국 우리 법률사무소 네트워크를 활용해 보세창고를 확보했다”며 “보통 변호사가 창고를 구해주는 경우는 드물지만, 그만큼 시장 상황이 극단적이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보세창고가 더 이상 전략 자산이 아니라 리스크가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임스 말리 스왑커머스 최고경영자(CEO)는 “보세창고는 이제 현금흐름을 유연하게 관리하는 수단이 아니라, 언제든 터질 수 있는 관세 폭탄”이라며 “기업들이 관세정책의 변덕을 맞히는 게임을 벌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아베드라 대표는 “이는 2019년 트럼프 1기 당시 중국산 제품에 관세가 부과됐을 때 벌어진 사태의 반복”이라며 “당시에도 보세창고 수요가 급증했다가 바이든 행정부 들어 줄어든 바 있다”고 설명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