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스위스산 수입품에 대해 39%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기로 하면서 스위스 정부가 긴급히 대응에 나섰다.
미국과의 무역 협상이 오는 7일까지 타결되지 않을 경우 스위스산 명품 시계와 정밀 기계, 초콜릿, 커피캡슐 등이 대규모 관세 대상에 포함될 전망이다.
3일(이하 현지시각)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스위스 제품에 39%의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수정안을 발표했다. 이는 당초 예고했던 31%보다도 높은 수치로, 전 세계 주요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유럽연합(EU)과 영국은 각각 15%, 10%의 관세로 조정됐으나 스위스만 상향 조정돼 충격이 더 컸다.
◇ “형제 공화국이라더니”…스위스 정부 당혹
카린 켈러-주터 스위스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했으나 “어떤 합의도 이루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다음날 스위스 건국 기념일 행사에서 “우리는 국경세가 공휴일을 망치게 놔둘 수 없다”며 “해법을 찾기 위해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가이 파르멜랭 스위스 경제장관은 “스위스는 특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며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해 협상 여지를 찾겠다”고 했다.
스위스 외교당국은 이날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축하 성명을 발표했음에도 관세 문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아 “이중적인 태도”라는 비판을 받았다. 루비오 장관은 “스위스 국민의 뜻깊은 기념일을 축하하며 미래의 협력도 기대한다”고 했지만 수 시간 전 발표된 39% 관세에는 침묵했다.
◇ 금 제외한 스위스산 제품 가격 급등 불가피
트럼프 대통령은 스위스와의 무역수지 적자를 이번 고율 관세의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스위스 중앙은행에 따르면 미국으로 수출되는 스위스산 금괴·금괴정련품이 전체 수출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며 금은 통상 무역수지 계산에서 제외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실제로 금 수출은 이번 관세 대상에서도 빠졌다.
이번 조치가 시행되면 EU, 영국과 비교해 스위스산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급격히 낮아지게 된다. 얀 아테슬란더 스위스 경제단체 ‘이코노미스위스’ 대표는 “대규모 관세는 수출 가격을 올리고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켜 투자 환경에도 악영향을 준다”고 경고했다. 스위스 기계공업협회는 이번 조치를 “경제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미국과의 장기 협력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 제약업계도 긴장…“약값 인하 압박까지”
스위스 제약산업도 비상이 걸렸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달 31일 세계 주요 제약회사에 약값 인하를 요구하는 서한을 발송했으며 이와 별도로 특정 국가의 제약 제품에 대한 추가 관세도 검토 중이다. 스위스에 공장을 둔 글로벌 제약사 로슈, 노바티스 등은 미국 시장에 의약품을 공급하고 있어 타격이 불가피하다.
일부 스위스 기업은 관세 인상 전 수출을 서두르기도 했다. 바클레이즈에 따르면 스위스 시계산업의 3~5월 대미 수출은 140% 넘게 급증했다. 그러나 ‘와치스 오브 스위스’의 주가는 1일 7% 넘게 하락해 수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바클레이즈는 “39% 관세는 기업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제조업체에 정밀 부품을 공급하는 스위스 공작기계 기업들도 우려를 표했다. 스위스 기계공업협회에 따르면 이 산업의 기업 1400개 중 약 4분의 1만이 31%의 관세를 미국 고객에게 전가할 수 있다고 답했으며 39%는 전례 없는 수준이라 분석조차 되지 않았다고 한다.
무역 정책 전문가 슈테판 레게 세인트갈렌대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와 어떤 고위급 인사를 접촉하더라도 정작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며 “그는 계속 중심에 있고 싶어하며 모두를 긴장시켜 협상 주도권을 유지하는 것을 즐긴다”고 지적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