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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민간 원전업체에 ‘핵무기급 플루토늄’ 개방…러 우라늄 의존 탈피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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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민간 원전업체에 ‘핵무기급 플루토늄’ 개방…러 우라늄 의존 탈피 시도

지난 2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소재 에너지부 청사 창문에 한 시민의 모습이 비치고 있다. 벽면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식 초상화가 걸려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2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소재 에너지부 청사 창문에 한 시민의 모습이 비치고 있다. 벽면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식 초상화가 걸려 있다. 사진=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냉전 시기 핵탄두에서 추출한 핵무기급 플루토늄을 민간 원전 기업에 제공해 발전용 연료로 재활용하도록 허용하기로 했다.

이는 러시아에 집중된 우라늄 공급망에서 벗어나 자국 내 핵연료 자립을 강화하려는 조치로 풀이된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22일(현지시각) 보도했다.

◇ 美 에너지부, 냉전기 핵탄두 19톤 개방


FT에 따르면 미국 에너지부는 전날 원전 개발업체들이 최대 19t의 플루토늄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를 공개했다. 해당 물질은 냉전 시기 핵무기에서 회수된 방사성 폐기물로 ‘고급형 원자로’의 핵연료로 전환될 수 있다.
에너지부는 공개된 문서에서 “선정된 기업은 미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인허가 절차에서 보다 빠른 심사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NRC 인허가는 민간 원전 운영에 필수 요건이다.

FT에 따르면 세계적인 생성형 인공지능(AI) 전문기업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가 투자한 오클로와 프랑스의 신생 원자력 기업 뉴클레오가 신청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 조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행정부가 전력 수요 급증에 대응하기 위해 추진 중인 원전 산업 육성책의 일환이다. 에너지 분석기관 블룸버그NEF는 AI 모델 훈련용 데이터센터 확대로 인해 전력 수요가 2035년까지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 원전 재가동·소형모듈원자로 확대…“연료 확보가 최대 난제”


미국은 미시간주와 펜실베이니아주의 대형 원전 두 곳을 향후 2년 내 재가동할 예정이며 수십억 달러를 투입해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다. SMR은 발전용량 300MW급 소형 원전으로 고농축 저농도 우라늄 연료를 필요로 하지만 이 연료의 생산은 현재 러시아가 독점하고 있다.

조 바이든 전 행정부는 2024년 러시아산 우라늄 제품의 수입을 전면 금지했으나 미국 내 연간 우라늄 생산량은 1t 미만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원전 산업 활성화 관련 행정명령 4건을 발동했으며 이 가운데 2건은 “잉여 핵연료를 민간 원전 개발업체에 제공하라”고 에너지부에 지시했다.

◇ 전문가들 “보호 조치 미흡 시 도난 위험 커질 것”


그러나 전문가들은 플루토늄의 상업적 활용이 핵안보 리스크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비영리 연구단체 ‘우려하는 과학자 연합(UCS)’의 물리학자 에드윈 라이먼은 FT와 인터뷰에서 “핵무기 수준으로 보호 조치를 적용하지 않으면 도난 위험이 커질 수 있다”며 “정부가 완벽한 관리체계를 갖추지 못한다면 현실적으로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미 에너지부는 신청 기업에 대해 플루토늄 재활용 계획, 연료 제조 절차, 안전관리 체계, 방사능 보호 조치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도록 요구했다.

◇ 프랑스 뉴클레오, 20억 달러 투자…“美 100년 에너지 자립 가능”


프랑스의 뉴클레오는 지난주 오클로와 협약을 맺고 미국 내에 최대 20억 달러(약 2조8400억 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이 자금은 첨단 핵연료 제조 및 원전 인프라 개발에 사용될 예정이다.

스테파노 부오노 뉴클레오 창업자 겸 CEO는 FT와 인터뷰에서 “미국에는 이미 9만2000t의 사용후 핵연료가 축적돼 있다”며 “이를 에너지로 전환하면 향후 100년간 에너지 독립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과거 플루토늄을 상업용 연료로 전환하려던 시도는 이미 실패한 전례가 있다. 미국은 전환 비용 폭등으로 2018년 해당 프로젝트를 취소한 바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의 사전 승인 없이 핵무기급 물질을 배포할 법적 권한이 있는지 여부도 논란이 되고 있다. 미국 의회는 헌법상 핵폐기물 관리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