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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미국·중국, 부산 정상회담 '무역 휴전'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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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미국·중국, 부산 정상회담 '무역 휴전' 선언

'145% 관세' 일부 철회·틱톡 매각 승인…中, 희토류 통제 유예로 화답
엔비디아 칩 논의 '최대 변수'…전문가 "장기 아닌 단기 봉합"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

세계 경제를 혼돈에 빠뜨린 미중(美中) 무역 분쟁이 마침내 '관리된 휴전' 국면으로 접어든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30일 오전 11시(한국시간) 부산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일촉즉발의 관세 전쟁을 잠정 중단하는 '데탕트(긴장 완화)'를 공식 선언한다.

이번 합의에는 지난 9개월간 격화된 고율 관세의 일부 철회와 틱톡(TikTok)의 미국 내 사업부 매각 승인 등 양국의 민감한 현안이 대거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지난 1월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처음으로 대면하는 이번 회담은, 그간의 격동적인 갈등을 봉합하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때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145%까지 끌어올렸고, 베이징은 전투기와 스마트폰 등에 사용되는 희토류 자석 공급을 차단하며 '강 대 강'으로 맞서왔다.

이처럼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던 양국이 극적인 봉합 조짐을 보이자 시장은 즉각 환호했다. 뉴욕 증시의 S&P 500 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으며, 중국의 주요 증시 벤치마크도 동반 상승세를 탔다. 반도체, 해운, 희토류, 농업 등 핵심 공급망 분야의 불확실성이 완화된 덕분이다.

美 '145% 관세' 거두고 中 '희토류 빗장' 푼다


이번 합의의 핵심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부과한 1차 관세의 상당 부분을 완화하는 조치가 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각), 중국의 펜타닐 전구체 화학물질 수출과 연계해 부과했던 20%의 고율 관세를 인하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한 11월 1일 시행하겠다고 위협했던 100%의 '관세 폭탄' 조치를 보류하고, 다음 달 만료 예정이던 기존 고율 관세 휴전도 연장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광범위한 핵심 소프트웨어 및 항공기 부품에 대한 수출 통제 계획도 중단한다. 중국 선박에 부과되던 운항 수수료 및 항만 사용료 등 관세와 수수료 역시 철회할 전망이며,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임기 시절 체결했던 무역 합의 이행 여부 조사도 포기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을 앞두고 중대한 변수를 던졌다. 엔비디아의 주력 AI 프로세서 '블랙웰(Blackwell)'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논의할 의향이 있다고 시사했다. "중국에 '네 번째로 좋은' 칩만 허용할 것"이라던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의 기존 태도를 뒤집는 이 발언은, 워싱턴의 안보 매파들을 자극할 수 있는 중대 양보안이자, 기술·상징적인 대중(對中) 재개방 신호라는 평가가 나온다.

中, 희토류 통제 유예·미국산 대두 구매 재개로 화답


중국 측은 희토류 통제 카드를 잠시 내려놓는 것으로 화답했다. 중국은 확대된 희토류 라이선스 제도를 최소 1년간 연기하고, 그 기간 동안 해당 프로그램을 재평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간 중국은 희토류를 무역 협상의 '곤봉'으로 사용하며 미국과 동맹국들을 압박해왔다. 이번 유예 조치로 미국 및 동맹국 제조업체들은 단기간 핵심 광물 접근성을 확보했다.

또한 중국은 미국산 대두 구매를 재개한다. 최소 2개 화물 분량의 선적을 예약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번 시즌 첫 구매다. 이 조치는 농산물 과잉 공급으로 어려움을 겪던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 기반(팜 벨트)을 달래줄 정치적인 승리로 해석된다.

미국 관리들은 시 주석이 바이트댄스의 틱톡 미국 사업부를 트럼프 행정부가 구성한 컨소시엄에 매각하는 안을 최종 승인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복귀에 도움이 됐다고 평가한 틱톡을 통해 청년층 유권자와의 연결을 강화하려는 정치적인 목적도 포함된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중국은 '블랙리스트'에 오른 기업이 50% 이상 지분을 소유한 자회사에도 모회사와 동일한 규제를 적용하는 규정을 폐기하라고 미국을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근본 해결 아닌 '시간벌기'"…대만·러시아 '뇌관' 그대로


이처럼 극적인 봉합에도, 전문가들은 이번 합의가 양국의 근본적인 갈등 해결이 아닌 '일시적 봉합'에 불과하다고 평가한다. 금융시장 역시 이번 합의를 "구조적인 해결이 아닌 시간벌기용 타협"으로 보고 있다.

미국기업연구소(AEI)의 잭 쿠퍼 아시아 전문 선임연구원은 "이는 장기적인 해결책이라기보다는 단기적인 휴전"이라며 "양측이 미래 합의의 기본 틀에는 동의하겠지만, 이것이 무역 쟁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헨리에타 레빈 선임연구원 역시 "미국과 중국 모두 안정화를 추구하지만, '누구의 조건에 맞춘' 안정화인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라며 "베이징은 자신들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매우 자신한다"고 지적했다.

푸단대학 미국연구센터의 우신보 주임(중국 정부 자문역)은 "베이징은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보다 무역 전쟁에 훨씬 더 잘 대비되어 있다"며 "희토류 제한 조치는 매우 중요한 지렛대"라고 강조했다. 그는 "수출 회복력, 딥시크(DeepSeek)의 AI 기술 혁신, 최근의 칩 생산 발전 등이 결합해 자신감을 실질 향상시켰다"며 "이는 지도부뿐 아니라 대중 전반에 만연한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반면 공화당 내 강경파(China Hawks)는 이번 합의를 "국가안보를 거래 대상으로 삼는 위험한 타협"이라고 비판하고 있어,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적인 부담도 안았다.

대만·러시아 문제 등 '뇌관'은 여전


이번 합의가 양국의 '관리된 디커플링(탈동조화)' 궤도 자체를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당장 대만 문제가 남아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대만이 "눈동자(apple of his eye)"와 같은 존재라고 언급하면서도, 정작 "대만은 물어볼 것이 별로 없다"며 의제에서 제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잠재적인 뇌관이다. 미국은 시 주석에게 러시아에 대한 지원 축소를 압박할 계획이며, 우크라이나 평화 합의 구상 논의와 함께 이중용도(dual-use) 품목의 군사적인 전용 방지 장치 강화를 요청할 예정이다. 하지만 중국의 실질적인 개입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2024년 중·러 양국 교역액은 2,450억 달러로 2021년 대비 68%나 급증했으며, 양국을 수십 년간 묶어줄 대규모 에너지 파이프라인 협정 역시 진전을 보이고 있다.

수많은 변수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성과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이재명 한국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미중) 정상회담은 전 세계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명백하다"며 "여러분도 매우 유심히 지켜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이번 합의를 통해 핵심 지지 기반인 농업계와 제조업계에 경제적인 승리를 안겨주며 정치적인 실리를 챙기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