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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경제' 휩싸인 유럽… 폴란드, GDP 4.7% 쏟아부으며 ‘실리콘밸리 무기’ 쇼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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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경제' 휩싸인 유럽… 폴란드, GDP 4.7% 쏟아부으며 ‘실리콘밸리 무기’ 쇼핑

러-우 전쟁이 기폭제, 탱크 넘어 AI·소프트웨어로…폴란드, 美 팔란티어·안두릴과 밀착
독일 ‘애로우 3’·폴란드 ‘무인기’…유럽 방공망, 재래식서 첨단으로 진화
폴란드 장갑차가 2019년 8월 15일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열린 폴란드 국군의 날 퍼레이드에 참가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폴란드 장갑차가 2019년 8월 15일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열린 폴란드 국군의 날 퍼레이드에 참가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유럽의 안보 지형이 급변하고 있다. 폴란드를 필두로 한 동유럽 국가들은 국내총생산(GDP)5%에 육박하는 국방 예산을 편성하며 전시 경제체제로 전환했고, 전 세계 방산기업들의 매출은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특히 폴란드는 전통적인 방산 기업을 넘어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 기술을 보유한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과 손을 잡으며 국방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디펜스뉴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 등 주요 외신이 지난 1일 보도한 내용을 종합하면, 글로벌 안보 불안이 방위산업의 호황과 기술적 진화를 동시에 이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폴란드, 탱크 넘어 ‘AI·소프트웨어로… 실리콘밸리 향한 러브콜


폴란드가 유럽의 새로운 군사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폴란드 국방부는 내년도 국방 예산을 사상 최대 규모인 1866억 즈워티(75조 원)로 책정했다. 이는 폴란드 GDP4.7%에 이르는 수치로, 나토(NATO) 권고 기준인 2%를 두 배 이상 웃돈다.

주목할 점은 예산의 쓰임새다. 폴란드는 록히드마틴 같은 전통적인 방산 거대기업뿐만 아니라, 팔란티어(Palantir)와 안두릴(Anduril) 같은 미국 테크 기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체자리 톰칙 폴란드 국방부 차관은 지난달 20일 하원 국방위원회에서 향후 3년간 무인 시스템과 대드론 솔루션에 최소 150억 즈워티(6조 원)를 투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폴란드 국영 방산그룹 PGZ는 지난 10월 안두릴과 바라쿠다-M(Barracuda-M)’ 순항미사일의 현지 공동생산을 위한 협약을 맺었다. 안두릴의 브라이언 모란 유럽 부사장은 성명을 통해 바라쿠다 생산 현지화는 동맹국에 신속하고 저렴한 억제력을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데이터 분석 기업 팔란티어와의 협력도 강화한다. 폴란드 국방부는 방대한 전장 데이터를 분석하기 위해 팔란티어의 AI 플랫폼을 전면에 도입하기로 했다. 폴란드 국방부 대변인은 디펜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현대 전장은 센서가 생성하는 데이터가 엄청나다자동화 없이는 인간의 인지 능력만으로 효과적인 분석을 할 수 없다고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전 세계 무기 매출 사상 최고… 러시아는 전시경제로 제재 뚫어


글로벌 방산 시장은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SIPRI가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2024년 세계 100대 무기 생산 기업의 매출은 전년 대비 5.9% 증가한 6790억 달러(999조 원)를 기록했다. 이는 지정학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지역별로는 유럽의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유럽 100대 기업의 무기 매출은 13% 급증한 1510억 달러(222조 원)에 달했다. 특히 폴란드의 PGZ는 매출이 34%나 뛰며 글로벌 순위가 60위에서 51위로 9계단 상승했다.
러시아 방산기업들의 회복세도 눈에 띈다. 서방의 강력한 경제 제재 속에서도 로스텍(Rostec) 등 러시아 주요 기업의 매출은 23% 증가했다. 난 톈 SIPRI 연구원은 독일 도이체벨레(DW)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생산 체계를 완전히 전시경제로 전환했다경제적 어려움에 대해 상당한 회복력을 증명한 셈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SIPRI는 서방 방산업계가 공급망 병목 현상과 노동력 부족, 핵심 광물 의존도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경고했다. 급증하는 수요를 생산 능력이 따라가지 못할 경우, 장기적인 안보 전략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애로우 3’ 배치 시작… 유럽 하늘, 촘촘해지는 미사일 방어망


한편 독일은 유럽 영공 방어의 핵심축을 강화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40억 유로(68200억 원)를 들여 이스라엘과 미국이 공동 개발한 애로우 3(Arrow 3)’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도입, 내년 초부터 나토 통합 운용에 들어간다.

애로우 3는 고도 100km 이상의 우주 공간에서 탄도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무기 체계다. 독일은 이를 통해 기존 패트리어트(종말 단계 요격)IRIS-T(중단거리 요격)에 더해 다층 방어망을 완성한다는 구상이다.

이는 2022년 출범한 유럽 스카이 쉴드 이니셔티브(ESSI)’의 일환으로, 러시아의 장거리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유럽의 공동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독일 연방군을 유럽 최대의 재래식 군대로 탈바꿈시키겠다고 공언하며 재무장 의지를 분명히 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흐름이 단순한 무기 구매를 넘어선 방산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입을 모은다. 과거에는 화력과 기동성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AI 기반의 데이터 분석과 무인 타격 체계, 그리고 다층 미사일 방어망이 국방력의 척도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이 최근 유럽 안보행동(SAFE) 제도를 통해 폴란드에 437억 유로 규모의 저리 대출을 배정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