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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기 잡은 푸틴, 트럼프 '조기 종전안' 거부…5시간 담판 '빈손'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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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기 잡은 푸틴, 트럼프 '조기 종전안' 거부…5시간 담판 '빈손' 종료

"전쟁 이기고 있는데 왜?"… 러, 동부 요충지 함락 앞세워 '현실 인정' 압박
美 '영토·경제' 4대 제안에도 이견…젤렌스키는 '측근 비리'로 입지 흔들
유럽 "우리만 쏙 빠졌다" 소외론 확산…EU, 2027년까지 러 가스 전면 차단 '맞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야심 차게 밀어붙인 '우크라이나 조기 종전' 구상이 첫 단추부터 러시아의 완강한 벽에 부딪혔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지난 3(현지시각) 보도했다.

이 매체는 러시아군이 동부 전선 요충지를 잇달아 장악하며 기세를 올리는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현재의 '군사 우위'를 근거로 미국의 타협안을 단칼에 거절했으며, 평화 협상이 시작부터 난항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타협은 없다"… 자신만만한 푸틴, '현실론' 고수


미국 대표단과 러시아 측의 고위급 회담은 지난 2일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5시간 동안 이어졌으나 구체적인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끝났다.

러시아 크렘린궁은 회담 직후 "타협안은 나오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회담에 배석했던 유리 우샤코프 러시아 대통령 외교 담당 보좌관은 러시아 언론과 만나 "일부 미국 제안은 어느 정도 수용할 만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특정 제안에 비판적이거나 부정적인 시각을 감추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번 회담 결렬의 배경에는 최근 러시아군의 전과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우샤코프 보좌관은 "최근 몇 주간 전선에서 거둔 성공이 회담의 흐름과 성격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미국과 서방이 우크라이나 상황을 더 적절하게 평가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는 "협상은 현장의 현실에 기초해야 한다"는 푸틴의 기존 태도를 재확인한 것이다.

알렉산더 바우노프 카네기 러시아 유라시아 센터 연구원은 텔레그램을 통해 "푸틴은 전쟁 진행 상황에 만족하고 있다""그는 한 달에 세 번씩 군복으로 갈아입고 지도 위에서 장군들을 직접 지휘하며 승전보를 즐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동부 요충지 '포크롭스크' 위기… 벼랑 끝 우크라이나


협상장 밖의 상황은 우크라이나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트럼프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와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 특사가 모스크바에 도착한 지난 2, 러시아는 도네츠크주()의 핵심 병참 기지인 포크롭스크를 점령했다고 발표했다.

포크롭스크는 우크라이나군의 보급로이자 방어 거점이다. 이곳이 넘어가면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통제 아래 남은 도네츠크 내 주요 도시 두 곳을 공략할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익명을 요구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고위 관계자는 "러시아군이 현재 도시의 95% 이상을 통제하고 있다"면서도 "우크라이나 방어선의 전면적 붕괴가 임박한 것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러시아가 도네츠크의 나머지 지역을 점령하는 것은 적어도 앞으로 1~2년 안에는 현실적인 가능성이 없다"고 덧붙였다.

러시아는 현재 휴전 조건으로 우크라이나가 통제 중인 도네츠크의 나머지 20% 영역까지 포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그들이 지금 싸우고 있는 것은 30~50km의 공간과 도네츠크 지역의 남은 20% 때문"이라며 "우리는 우크라이나가 침공 위협 없이 살 수 있는 안전 보장 방안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 4개 문건으로 설득 시도… 젤렌스키는 '내우외환'


미국 대표단은 이번 회담에서 4건의 문서를 푸틴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전문가들은 이 문서가 애초 논의된 '28개항 평화안'을 영토 문제, 양국 경제 재통합, 안보 보장 등으로 세분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우샤코프 보좌관은 "영토 문제는 전쟁 해결에 필수적이며, 미국과 러시아의 경제 협력 가능성도 논의했다"고 전했다. 이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휴전 논의를 미-러 양자 관계 회복으로 확장하려는 의도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우크라이나의 협상력은 약화하는 모양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드리 예르막 비서실장이 대형 부패 스캔들에 휘말리며 낙마했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파스투호프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명예교수는 "푸틴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평화를 원하는 처지가 아니다"라며 "현재로서는 자신에게 맞는 조건으로만 전쟁을 끝낼 준비가 돼 있다"고 진단했다.

안드리 시비하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위트코프 특사가 푸틴과의 회담 후 우리 측과 접촉했다""미국 대표단은 모스크바 회담이 평화 프로세스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고 전했다.

소외된 유럽의 불안… 에너지 독립으로 '각자도생' 모색


미국과 러시아가 직접 머리를 맞대자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는 '패싱' 우려가 커지고 있다. 3일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 외무장관 회의에 마르코 루비오 장관이 불참하고 크리스토퍼 랜도 부장관이 대신 참석한 것은 이러한 불안감을 부채질했다.

유럽 외교관들은 "영토 문제와 안보 보장이라는 핵심 쟁점이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한 나토 외교관은 "전체 합의의 본질은 영토와 안보 보장, 두 가지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유럽연합(EU)은 협상 주도권을 잃지 않고 러시아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기 위해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는 강수를 뒀다. EU는 내년부터 러시아산 가스 수입 금지를 시작해 2027년까지 전면 차단하기로 합의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산 가스 수입이 급감했지만, 여전히 전체 수입량의 약 19%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결정이다.

타티아나 스타노바야 카네기 센터 연구원은 소셜미디어 엑스(X)를 통해 "모스크바의 주요 셈법은 워싱턴이 키이우를 압박해 러시아의 조건을 평화로 가는 유일한 길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