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의 출구, 종전을 재촉하는 미중 패권 경쟁, 그리고 한국의 3 가지 교훈과 3 가지 대응 전략
이미지 확대보기전쟁의 끝을 말하는 회담, 질서의 재편을 말하는 신호
최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특사 스티브 위트코프와 재러드 쿠슈너를 만나 “매우 좋은 회담”을 했다고 평가한 순간, 이는 단순한 외교 이벤트를 넘어 하나의 구조적 신호로 읽을 필요가 있다. 전쟁의 당사자인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중재 외교를 ‘건설적’이라고 평가했다는 사실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전장의 논리에서 협상의 논리로 서서히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움직임을 평화의 도래로 성급히 해석하는 것은 위험하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것은 전쟁의 종결이 아니라, 전쟁을 둘러싼 세계질서의 재배치다. 트럼프가 추진하는 종전 외교는 인도주의적 평화 구상이 아니라,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더 큰 구조 속에서 미국의 자원을 재배치하려는 전략적 선택이다.
트럼프식 종전 외교의 본질은 ‘전쟁 관리’다
트럼프의 종전 외교는 전통적 의미의 평화 중재와 다르다. 그것은 정의로운 해결이나 규범적 합의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핵심은 미국의 부담을 줄이면서 전략적 자유도를 회복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젤렌스키와의 회담은 평화의 출발점이 아니라 전쟁을 관리 가능한 상태로 전환하려는 협상 국면의 개시로 봐야 한다. 미국은 전쟁을 끝내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더 이상 ‘미국의 문제’로 두고 싶지 않은 것이다.
러시아와의 접촉은 타협이 아니라 재조정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미국과의 접촉 보고를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는 러시아가 갑자기 평화를 원해서가 아니라, 미국이 제시하는 새로운 질서 구도를 탐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이미 전쟁을 통해 상당한 대가를 치렀다. 경제적 제재, 군사적 소모, 장기 고립의 위험은 러시아에게도 부담이다. 그러나 푸틴에게 중요한 것은 전쟁의 승패보다, 전후 질서에서 러시아가 어떤 지위를 차지하느냐다.
트럼프의 중재 외교는 러시아에게 하나의 선택지를 제시한다. 서방과의 전면적 대결을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제한적 합의를 통해 새로운 세력 균형 속에서 자리를 확보할 것인가. 지금의 접촉은 바로 그 가능성을 탐색하는 과정이다.
미중 패권 경쟁이 종전을 재촉하는 이유
우크라이나 전쟁의 출구 논의는 유럽이나 러시아 때문이 아니라, 중국 때문에 가속화되고 있다. 미국의 전략적 초점은 이미 명확히 이동했다. 21세기 패권 경쟁의 중심은 유럽 대륙이 아니라 인도태평양이다.
중국과의 경쟁은 단기간에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기술, 산업, 공급망, 금융, 군사, 규범을 아우르는 전면적 경쟁이다. 이 싸움에서 미국은 유럽 전장에 발이 묶여 있을 여유가 없다. 따라서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정리’해야 한다.
트럼프의 종전 외교는 이 점에서 바이든식 동맹 관리 외교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동맹의 결속보다 전략적 집중을 우선한다. 이것이 트럼프 외교의 냉혹함이자, 동시에 현실주의적 본질이다.
러시아가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했던 자유주의 패권 전략에 기반한 나토의 동유럽 확장 전략에 따라 러시아와 인접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추진되면서 미군이 러시아와의 국경에 주둔할 수 있다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문제를 의제에서 완전히 내리는 등 러시아의 우려를 해소시켜주는 노력을 종전 노력과 함께 병행해야 한다.
유럽이 느끼는 불안은 우연이 아니다
문제는 유럽이 트럼프의 종전 외교에 불안을 느낀다는 것인데 이는 트럼프 이전의 미국의 자유주의 패권 대전략에 기반해 유럽 동맹들에게 제공된 안보가 더 이상 제공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 안보 질서의 핵심 시험대였고, 그 전쟁이 미국의 계산에 따라 ‘종결’된다면, 유럽은 더 이상 미국의 무조건적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면하게 된다.
이미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방위비 증액, 군사력 통합, 독자적 안보 구조 논의는 모두 같은 질문에서 출발한다. 미국이 언제까지 유럽을 지켜줄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트럼프의 종전 외교는 유럽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다. 전쟁조차 미국의 우선순위에 따라 정리되는 시대에, 유럽 국가들은 더 이상 자신들의 안보를 외주화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동아시아는 이 장면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 논의는 동아시아에 대한 예고편이다. 미국은 이미 동일한 논리를 인도태평양에서도 적용하고 있다. 미국이 묻는 질문은 단순하다. 누가 미국의 전략에 기여하는가, 누가 비용을 분담하는가, 누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일본은 재무장으로 답하고 있고, 대만은 전략적 요충지라는 지위로 답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답은 아직 불분명하다. 여전히 확장억제와 동맹 신뢰라는 언어에 머물러 있다.
유럽의 경험은 분명한 교훈을 준다. 동맹은 영구적 약속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재협상되는 계약이라는 점이다. 전쟁의 종전 방식조차 미국의 전략적 필요에 따라 결정되는 시대에, 동맹국의 선택지는 생각보다 좁다.
한국의 세 가지 교훈과 세 가지 대응 전략
한국이 여기서 배워야 할 교훈은 모두 세 가지다.
첫 번째 교훈은 종전은 곧 재배치라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 논의는 평화의 시작이 아니라, 힘의 재배치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위협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긴장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다. 한국이 이 점을 오판한다면, 한반도는 다음 시험장이 될 수 있다. 미중 경쟁이 본격화될수록, 미국은 한국에게도 더 명확한 역할을 요구할 것이다. 그 역할은 선언이 아니라 기여의 문제다.
두 번째 교훈은 핵심 억제력은 외주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비극은 단순히 침략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억제력 부재의 결과다. 핵을 포기한 국가가 어떻게 전쟁의 대상이 되는지를 전 세계가 목격했다. 유럽이 재무장과 함께 핵 공유, 핵 억제 논의를 다시 꺼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의 확장억제는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 역시 같은 구조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북핵은 이미 현실이며, 중국과 러시아의 핵 전력은 동북아 질서를 압도한다. 그럼에도 한국은 여전히 ‘신뢰’라는 추상적 개념에 안보를 의존하고 있다.
세 번째 교훈는 전략적 선택지는 열어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종전 외교가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이것이다. 선택지를 가진 국가만이 협상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크라이나는 선택지가 제한된 상태에서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있다. 한국은 같은 길을 가서는 안 된다. 당장의 선택을 강요받지 않더라도, 장기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전략적 선택지를 유지해야 한다. 이는 조건부 자율 억제, 기술 기반 전략 자율성, 동맹 내 협상력 강화라는 형태로 구체화될 수 있다.
한국의 대응 전략도 세 가지로 명확하다.
첫째, 한미동맹을 유지하되, 그 성격을 재정의해야 한다. 보호받는 동맹에서 함께 전략을 설계하는 동맹으로 전환해야 한다. 둘째, 한국은 방위산업과 기술 역량을 외교 자산으로 조직해야 한다. 군사력은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협상력을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셋째, 한국은 핵심 억제력에 대한 공론을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감정적 구호가 아니라, 생존 전략의 문제다.
종전 외교는 경고다
젤렌스키와 미국 특사의 회담은 평화의 약속이 아니다. 그것은 국제질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여주는 냉혹한 사례다. 전쟁의 시작과 끝은 당사자의 의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패권국의 계산 속에서 정리된다.
한국이 이 장면을 단순한 외교 뉴스로 소비한다면, 같은 상황이 한반도에서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구조적 경고로 읽는다면, 아직 선택의 시간은 남아 있다. 국제질서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스스로 준비한 국가만이 협상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