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中의 ‘가격 약속’ 전략, 무역 전쟁의 새로운 ‘소프트 랜딩’ 카드로 부상

글로벌이코노믹

中의 ‘가격 약속’ 전략, 무역 전쟁의 새로운 ‘소프트 랜딩’ 카드로 부상

전기차 이어 철강까지… 한국·EU와 반덤핑 관세 대신 ‘자발적 가격 인상’ 합의
징벌적 관세 피하고 수익성 사수하는 실리 전략… 韓 산업계, 시장 안정과 경쟁 공존 과제
중국철강공사 공장 내 철강 롤 앞을 트럭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중국철강공사 공장 내 철강 롤 앞을 트럭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로이터
글로벌 무역 장벽이 가팔라지는 가운데, 중국이 ‘징벌적 관세’라는 강공책 대신 ‘가격 약속(Price Undertaking)’이라는 유연한 대응 카드를 꺼내 들며 무역 긴장 완화에 나서고 있다.

최근 한국과의 열간압연강판(HRC) 분쟁을 가격 협정으로 해결한 것은 유럽연합(EU)과의 전기차(EV) 대립에서 사용된 모델을 그대로 이식한 것으로, 중국 수출업체들이 시장 접근권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가격 하한선을 설정하는 전략적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관세 대신 ‘가격 약속’… “세금으로 뺏기느니 이익으로 남기겠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각)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업계에 따르면, 중국 철강협회는 한국 정부가 제기한 반덤핑 조사와 관련해 수출 가격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기로 한 ‘가격 약속 협정’을 적극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는 고율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받는 대신, 중국 기업들이 스스로 수출 가격을 올리는 방식이다.

베이징 국제경영경제대학교의 존 공 교수는 “징벌적 관세는 수입국 정부의 세수로 흡수되지만, 가격 약속을 통한 프리미엄은 수출 기업의 이익으로 남게 된다”며 “글로벌 공급 과잉 비난을 받는 중국 입장에서는 이익률을 유지하면서 시장 퇴출을 막는 최선의 ‘소프트 랜딩(연착륙)’ 모델”이라고 분석했다.

EU 전기차 협정 모델의 확산… “유연성 버리고 생존 택했다”


이러한 흐름은 지난 1월 중국과 EU가 전기차 분쟁을 가격 약속으로 해결하기로 합의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당시 EU 집행위원회는 최소 수입 가격 준수, 판매 채널 투명성 확보, EU 내 현지 투자 약속 등을 조건으로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고율 관세를 유예한 바 있다.

법률 전문가들은 가격 약속이 시장 확장 속도를 다소 늦출 수는 있지만, 관세 폭탄으로 인한 판매 급감을 막고 브랜드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입을 모은다.

안후이성 올브라이트 법률사무소의 루환환 변호사는 “관세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면 판매 감소가 확실시되지만, 가격 하한선을 약속함으로써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시장 점유율을 공고히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산업계의 시사점: 철강·배터리 공급망의 ‘예측 가능성’ 확보


중국의 이러한 가격 결정 협정은 한국의 철강 및 신재생 에너지 산업계에 복합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산 저가 철강의 무분별한 유입에 제동이 걸리면서, 국내 철강업계는 급격한 가격 하락 압력에서 벗어나 수익성을 회복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벌게 되었다. 양국 정부의 합의는 무역 분쟁의 장기화에 따른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공급망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EU 모델이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을 경우, 한국 배터리 및 완성차 업체들은 중국산과의 가격 경쟁보다는 기술력과 서비스 품질 위주의 진검승부를 펼쳐야 한다.

특히 중국산 전기차의 가격 하한선이 설정되면, 국산 전기차와의 가격 격차가 좁혀져 유럽 등 주요 시장에서 한국산 제품의 상대적 매력이 높아질 수 있다.

중국 상무부가 이번 합의를 'WTO 규정에 부합하는 실용적 해결책'이라고 강조한 만큼, 한국 정부도 향후 유사한 무역 분쟁 발생 시 관세 일변도의 대응보다는 산업별 이해관계를 정밀하게 반영한 '가격 및 물량 약속' 등 세밀한 통상 외교술을 발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신민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