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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한 칸만 삽니다"... 유럽, 집값 폭등이 낳은 '부동산 조각 소유'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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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한 칸만 삽니다"... 유럽, 집값 폭등이 낳은 '부동산 조각 소유' 열풍

내 집 마련 꿈 포기한 청년층, '공동 구매·무담보 대출' 등 변칙 수단 동원
EU 주택 가격 상승률 소득보다 10%p 높아… 한국도 '코리빙' 등 유사 흐름
스페인과 영국 등 주요국에서 전통적인 주택 소유 개념이 붕괴하고, 기업들이 이를 겨냥한 파격적인 주거 상품을 내놓고 있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스페인과 영국 등 주요국에서 전통적인 주택 소유 개념이 붕괴하고, 기업들이 이를 겨냥한 파격적인 주거 상품을 내놓고 있다. 이미지=제미나이3

유럽 전역을 휩쓴 기록적인 주택 가격 상승으로 내 집 마련이 불가능해진 젊은 세대가 '아파트 방 한 칸'을 사거나 친구들과 집을 공동 구매하는 등 전례 없는 방식으로 생존 전략을 짜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각) 로이터 통신(Reuters)이 보도한 유럽 주거 위기 실태 보고를 통해 드러났다.

로이터는 스페인과 영국 등 주요국에서 전통적인 주택 소유 개념이 붕괴하고, 기업들이 이를 겨냥한 파격적인 주거 상품을 내놓는 현상을 집중 조명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유럽 주택 가격은 가구 소득보다 10% 더 빠르게 올랐으며, 이에 따라 청년 세대가 주거 시장에서 가장 큰 압박을 받고 있다.

"아파트 한 채는 너무 비싸"… 스페인에 등장한 '방 매매' 스타트업


스페인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주택 부족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단기 임대 주택이 급증하면서 현지 거주민들이 밀려나는 처지다.

이런 틈새를 노린 스페인 신생 기업 '아비타시온(Habitacion.com)'은 아파트 전체가 아닌 '방 한 칸'을 개인에게 매매하는 사업을 시작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 업체는 지난해에만 방 200개를 판매했으며, 현재 대기자 명단에만 3만2000명이 이름을 올릴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방 한 칸의 매매 가격은 약 8만 유로(약 1억3600만 원) 수준으로, 이는 대도시권의 일반적인 방 하나짜리 아파트 가격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운영 방식 또한 독특하다. 입주 희망자들은 설거지 여부나 연인 동반 가능 여부 등 구체적인 생활 습관을 묻는 적합성 검사를 거쳐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마음이 맞는 공동 소유자나 세입자와 짝을 이루게 된다.
다만 아파트 전체가 아닌 '실(室)' 단위 거래인 탓에 일반적인 주택 담보 대출을 이용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매수자들은 시중 주택 담보 대출보다 금리가 두 배가량 높은 개인 신용 대출을 활용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으며, 향후 방을 되팔 때도 반드시 해당 업체를 거쳐야 한다는 제약이 따른다.

오리올 발스 아비타시온 대표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10년 동안 스페인의 평균 월급은 26% 올랐지만 부동산 가격은 81% 폭등했다"며 "결혼을 늦게 하거나 아이를 낳지 않는 등 달라진 생활 방식에 따라 더 작고 저렴한 주거 공간을 찾는 수요가 폭증했다"고 분석했다.

영국선 '친구와 공동 구매', 무보증금 대출도 17년 만에 귀환


영국 런던에서도 청년들의 고육책은 이어지고 있다. 건설업체 페어뷰(Fairview)는 마음이 맞는 친구들끼리 집을 살 수 있도록 연결해 주는 '버디 업(Buddy Up)'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친구들과 함께 집을 사겠다고 결정하면 전문 중개인과 변호사를 연결해 주고 법정 수수료 일부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금융권의 움직임도 달라졌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자취를 감췄던 '무보증금 대출(Zero-deposit mortgage)'이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지에서 다시 등장했다.

서부 요크셔에 거주하는 나탈리 워커 부부는 월세 생활 중 퇴거 통보를 받은 뒤, 지난해 무보증금 대출을 활용해 생애 첫 집을 마련했다. 이러한 대출은 당장 목돈이 없는 청년들에게 기회가 되지만, 이자 비용이 높고 고소득 증빙이 필요하다는 한계가 명확하다.

실거주 대신 '조각 투자'에 나서는 현상도 관찰된다. 마드리드의 엔지니어 카를로스 셈페레(36) 씨는 거주지 인근 집값이 100만 유로(약 17억830만 원)를 넘어서자 부동산 투자 플랫폼 '프로프히어로(PropHero)'를 통해 스페인 남부 임대용 부동산 지분을 구매했다.

파트리시오 팔로마 AIRE 파트너스 부동산 컨설턴트는 로이터에 "이런 모든 변칙적인 주거 방식은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가난해지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한국판 '방 한 칸 매매' 코리빙 하우스, 소유 대신 '거주 서비스' 집중


유럽의 이러한 변칙적 주거 형태는 한국 부동산 시장에서도 '코리빙(Co-living·공동 주거)'과 '조각 투자'라는 이름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다만 '방 한 칸의 소유권'을 직접 매매하는 유럽과 달리, 한국은 기업이 건물 전체를 운영하며 청년들에게 고가의 주거 서비스를 제공하는 월세 기반 모델이 주를 이룬다.

실제로 서울의 기업형 코리빙 하우스 공급량은 지난 2021년 이후 연평균 20% 이상 성장하며 주거 시장의 새로운 축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전세 사기 위험과 급등한 보증금 부담을 피해 안정적인 거주권을 선택하려는 한국 청년 세대의 고육책이 투영된 결과다.

업계에서는 유럽의 '공동 구매'나 한국의 '조각 투자' 열풍이 결국 자산 형성 기회를 박탈당한 세대의 자구책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부동산 투자 플랫폼 안팎에서는 실거주 목적의 주택 마련이 어려워지자 상업용 빌딩의 지분을 쪼개 사는 토큰 증권(ST) 등에 소액 자금이 몰리는 현상을 '주거와 투자의 분리'로 해석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유럽의 제로 보증금 대출이나 한국의 기업형 임대 주택 확대는 모두 전통적인 내 집 마련 사다리가 끊어졌음을 방증한다"며 "주거 안정을 위한 제도적 보완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청년층의 자산 격차는 더욱 심화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유럽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주택 공급 확대와 저렴한 주택 보급을 위한 대책을 발표했으나, 시장에 실질적인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주거 안정성이 삶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인 만큼, 청년층을 위한 보다 근본적인 금융 지원과 공급 대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서진욱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