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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전력 빅딜] 빅테크가 무릎 꿇었다… 중소 전력사가 아마존·MS에 '갑'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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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전력 빅딜] 빅테크가 무릎 꿇었다… 중소 전력사가 아마존·MS에 '갑' 됐다

데이터센터 전력 전쟁 최후 승자는 인디애나·루이지애나 전력사
전력난에 HD현대일렉트릭·효성중공업 한국 기업도 초호황
AI 데이터센터 한 곳이 소비하는 전력량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50~100개 분량이다. 이 괴물 같은 수요가 역설적으로 전력사를 시장의 지배자로 끌어올렸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AI 데이터센터 한 곳이 소비하는 전력량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50~100개 분량이다. 이 괴물 같은 수요가 역설적으로 전력사를 시장의 지배자로 끌어올렸다. 이미지=제미나이3
미국 전력 시장에 한 번도 없던 역전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다. 시가총액 수천 조 원대의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알파벳이 인디애나주 한 전력회사의 문을 두드리며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우리가 짓겠다. 이웃의 전기요금도 우리가 내리겠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가 불러온 전력 대란이 시장 구도를 통째로 뒤집어 놓고 있다.

'전기 먹는 하마'가 키운 역설… 전력사가 ''에서 ''으로


AI 데이터센터 한 곳이 소비하는 전력량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50~100개 분량이다. 이 괴물 같은 수요가 역설적으로 전력사를 시장의 지배자로 끌어올렸다.

배런스는 지난달 25(현지시각) "AI 데이터센터가 전력사의 현금 흐름을 향후 10년 이상 보장하는 수익원이 됐다""일부 유틸리티 기업들이 시장의 진정한 승자로 부상했다"고 분석했다. 현재 미 전역 13개 전력망 중 8개가 이미 예비 전력 임계치 이하로 떨어진 상태다. 희소성이 권력을 만든 것이다.

특히 주목할 변화는 빅테크의 이례적인 양보에 있다. 과거 데이터센터는 일반 기업과 동일한 표준 요금 체계로 전력망을 이용했다. 그러나 수십 조 원을 쏟아 부은 빅테크들도 전력 인프라 확충 비용을 일반 가정의 전기요금으로 전가하는 순간 정치적 역풍을 맞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4일 국정연설에서 "빅테크는 스스로 전력 수요를 책임져야 한다""지역 사회 전기요금이 오르지 않도록, 오히려 대폭 낮추겠다"고 못 박았다.

브래드 스미스 MS 부회장은 이른바 '커뮤니티 우선 AI 인프라' 계획을 발표하며 "우리 데이터센터 때문에 이웃의 전기요금이 오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공개 약속했다. 아마존 역시 전력망 사용료 외에 추가 분담금을 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업계에서는 일찍이 유례를 찾기 어려운 조건이라고 평가한다.

인디애나의 반란, 니소스 도약


변화의 최전선은 그간 데이터센터 불모지였던 중서부와 남부의 이른바 '프런티어 시장'이다. 인디애나주를 기반으로 한 전력사 니소스(NiSource)의 자회사 닙스코(Nipsco)가 최근 아마존과 맺은 계약이 그 상징적 사례다.

계약 내용은 파격적이다. 천연가스 발전소 2.6기가와트(GW)400메가와트(MW)급 배터리 저장 장치를 신규 구축하는 사업으로, 이는 닙스코의 기존 전체 설비 용량(2.4GW)을 웃도는 규모다. 계약 기간은 15년 고정이며, 총 사업 규모는 약 70억 달러(10조 원)에 이른다. 아마존의 비용 전액 부담 덕분에 지역 주민들은 오히려 월 7~9달러(1만 원)의 요금 할인 혜택을 누리게 된다.

닙스코의 빈스 파리시 사장은 현재 1~3GW 규모의 추가 계약을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증권가에서는 니소스의 조정 이익성장률이 기존 연평균 6~8%대에서 8~9%대로 높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루이지애나주의 엔터지(Entergy)도 같은 흐름 위에 있다. 앤드루 마쉬 엔터지 CEO는 메타·아마존 데이터센터 전용 발전 설비 구축 계약과 관련해 "주거용 고객들에게 약 50억 달러(72100억 원) 규모의 요금 절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이다호 파워를 보유한 아이대코프(Idacorp) 역시 메타와 손잡고 자산 기반을 확장 중이다.

'K-전력기기 슈퍼사이클', HD현대일렉트릭·효성중공업 사상 최대 실적


미국 전력사들의 호황은 한국 기업에게 예상을 뛰어넘는 수혜로 이어지고 있다.

HD현대일렉트릭은 2025년 연결 기준 매출 4795억 원, 영업이익 9953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각각 22.8%, 48.8% 증가한 수치로,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사상 최대치다. 영업이익률은 24%대로 업계 최고 수준을 유지했다. 회사는 2026년 수주 목표를 422200만 달러(6조 원), 매출 목표를 43500억 원으로 제시했다. 각각 전년 목표 대비 10.5%, 11.8% 높은 수준이다. 북미 초고압 변압기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달리는 HD현대일렉트릭은 현재 미국 앨라배마 공장 증설(1850억 원)과 울산 초고압 변압기 공장 증설(2118억 원)을 동시에 추진 중이다.

효성중공업은 더 극적이다. 2025년 매출 59685억 원(+21.9%), 영업이익 7469억 원으로 전년 대비 두 배 이상(+106.1%) 늘었다. 3분기 말 수주잔고는 111000억 원으로 업계 최대 규모다. AI 데이터센터 확산과 전력망 고도화 수요가 맞물리며 미국, 영국, 스웨덴, 스페인 등 선진시장 수주가 쏟아진 덕분이다.

LS일렉트릭은 2025년 글로벌 데이터센터 관련 수주가 처음으로 1조 원을 돌파했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연간 기준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으며, 북미 공략을 위해 텍사스주 베스트럽에 2030년까지 24000만 달러(3460억 원)를 투자하는 복합캠퍼스 건설을 확정했다. LS전선 역시 20253분기 누적 매출 57200억 원을 달성했으며, 수주잔고가 66015억 원까지 불어났다.

미국 중소형 변압기 수입시장에서 한국산 제품의 점유율은 20209.2%에서 202415.5%로 빠르게 확대됐다. 삼일PwC 보고서는 "데이터센터 특화 제품을 보유하거나 미국 UL·CSA 인증을 완료한 한국 기업들이 기술 기업에 준하는 밸류에이션 프리미엄을 받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업계에서는 이 호황이 최소 2026, 길게는 2027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주요 기업의 수주 잔고가 이미 1~3년치 물량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15년 후의 청구서, 누가 받을 것인가


장기적 위험 요인도 지워서는 안 된다. 전력 인프라의 물리적 수명은 통상 40~50년이지만, 빅테크와의 계약 기간은 12~15년에 불과하다. 하버드 로스쿨 전력법 이니셔티브의 아리 페스코 이사는 "전력사들이 전송망 확충 비용의 구체적인 부담 주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투명성 문제를 제기했다. 15년 후 AI 열풍이 가라앉아 빅테크가 계약 연장을 거부한다면, 방대한 설비의 유지 비용은 일반 시민의 전기요금으로 돌아올 수 있다.

무디스의 존 메디나 분석가는 "전력 비용은 데이터센터 구축 비용의 10% 미만이지만, 운영 단계에서는 전체 비용의 3분의 2를 차지한다""장기적으로 빅테크의 수익성에 무시할 수 없는 변수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올해 아마존, 메타 등 5대 빅테크의 설비 투자액 합계는 7100억 달러(1024조 원)에 달할 전망이다.

미국 전력사들이 전력 대란을 새로운 수익 모델로 전환한 전략은 영민하다. 한국 전력기기 기업들 역시 이 흐름 위에서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두고 있다. 그러나 '데이터센터 배당' 모델이 15년 후에도 건재할 수 있을지, 그 답은 AI 기술의 미래가 쥐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