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자율주행의 역설' 도심 마비 경고... 로보택시, 교통 체증 6% 늘린다

글로벌이코노믹

'자율주행의 역설' 도심 마비 경고... 로보택시, 교통 체증 6% 늘린다

웨이모·죽스 등 무인 차량 확산에 '빈 차 주행' 비중 50% 육박
편리함이 부른 수요 폭증에 도심 생산성 저하 우려... "한국형 혼잡세 논의 시작해야"
미국 교통 전문가 "도로 용량 증설은 임시방편, 주행 거리 비례 과세 체계 도입 시급“
미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서 운행 중인 구글 웨이모 차량.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미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서 운행 중인 구글 웨이모 차량. 사진=연합뉴스


자율주행 기술이 완성될수록 도심 교통 환경은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맥경화' 수준의 정체를 겪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운전의 수고를 덜어주는 '로보택시'의 편리함이 대중교통 이용객을 도로로 끌어내고, 승객 없이 도로를 배회하는 '유령 차량'을 양산하면서 도시 경제의 효율성을 갉아먹는 역설적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미국 경제 전문 매체 블룸버그(Bloomberg)의 지난 18일(현지시각) 보도와 교통 공학 학술 자료를 종합 분석한 결과, 구글 알파벳의 웨이모(Waymo)와 아마존의 죽스(Zoox) 등 자율주행 서비스 확대가 도시의 삶의 질을 위협하는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특히 국내에서도 서울 상암과 강남 등지에서 자율주행 실증 사업이 활발히 진행되는 가운데, 북미 지역에서 먼저 불거진 '자율주행 혼잡' 이슈는 한국형 모빌리티 정책 수립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데이터가 증명한 역설... 주행거리 6% 늘고 빈 차가 도로 절반 점령


자율주행차가 보급되면 교통 흐름이 최적화될 것이라는 일반적인 기대와 달리, 실증 데이터는 정반대의 방향을 가리킨다.

미국 텍사스 대학교 알링턴 캠퍼스(University of Texas at Arlington)의 파라 나즈(Farah Naz)와 스티븐 매팅리(Stephen Mattingly) 교수팀이 26개의 기존 연구 사례를 정밀 검토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자율주행차 도입 시 전체 차량 주행거리(VMT)는 평균 6% 가량 상승할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주행거리 폭증의 이면에는 자율주행만이 가진 독특한 이용 행태가 자리 잡고 있다. 우선 차량 내에서 업무를 보거나 휴식을 취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이용자들이 과거보다 더 길고 잦은 이동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수요 유발' 현상이 뚜렷해졌다.

실제로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의 웨이모 이용자들은 일반 차량 호출 서비스보다 10%나 높은 비용을 지불하면서도 기사가 없는 로보택시를 고집하고 있다. 이는 운전의 피로가 사라진 이동 수단이 대중교통이나 자전거 이용 수요를 잠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 심각한 문제는 승객을 태우지 않은 채 다음 호출을 기다리거나 충전소로 향하는 '데드헤딩(Deadheading)', 즉 빈 차 주행의 함정이다. 지난달 말 기준 샌프란시스코 내 웨이모 주행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전체 주행거리의 약 50%가 승객이 없는 공차 상태였다.

자율주행차는 운전자의 휴식이 필요 없기에 24시간 도로를 점유할 수 있으며, 주차비를 아끼려 목적지 없이 도심을 배회하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교통 체증의 주범으로 지목된다.

"도로 확충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전문가들 '혼잡통행료' 정조준


교통 전문가들은 자율주행으로 인한 정체를 해소하기 위해 차선을 늘리는 행위는 임시방편일 뿐이라고 입을 모은다.

도로 용량이 늘어나면 그만큼 새로운 차량 유입이 발생하는 '유발 수요(Induced Demand)'의 법칙 때문에 결국 정체는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업계와 학계에서는 도로 이용에 가격표를 붙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뉴욕 맨해튼이 도입한 혼잡통행료나 버지니아주 I-66 고속도로의 가변 요금제처럼, 특정 시간과 구간에 비용을 부과해 차량 흐름을 분산하는 방식이다.

데이비드 지퍼(David Zipper) 수석 연구원은 블룸버그를 통해 "자율주행차가 도심을 마비시키기 전에 선제적으로 '도로 가격 책정(Road Pricing)'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특히 사람이 타지 않은 채 도로를 점유하는 빈 차 주행에 대해서는 징벌적 수준의 높은 부담금을 물려 운영 업체들이 차량 배차 효율을 스스로 높이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한국형 로보택시 시대, '사회적 비용' 산정 서둘러야


이번 외신 보도와 관련해 국내 모빌리티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미국보다 인구 밀도가 높고 대중교통망이 촘촘해 자율주행차 도입 시 발생하는 교통 혼잡 여파가 훨씬 클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서울시 등이 추진하는 자율주행 버스 및 택시 서비스가 확대될 경우, 기존의 효율적인 대중교통 수요를 잠식해 오히려 전체 교통망의 경제적 효율을 떨어뜨릴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다.

자율주행 기술의 편익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정교한 정책 설계가 선행되어야 한다. 자율주행 차량에 대한 탄력적 혼잡통행료 부과, 공차 주행 구간 제한, 대중교통과의 연계성 강화 등 구체적인 관리 지침 마련이 시급하다.

기술의 진보가 '이동의 자유'를 약속할 수 있지만, 도로의 흐름을 조율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정책적 결단에 달려 있다. 자율주행 시대의 연착륙을 위해 지금이 바로 도로 이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시작해야 할 때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