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픽스(Pix) 확산에 6000곳 폐쇄, 전국 시·군 절반 '은행 공백지' 전락
JP모건은 160개 신설로 역주행…한국도 5년간 900곳 사라져 '같은 경고음’
JP모건은 160개 신설로 역주행…한국도 5년간 900곳 사라져 '같은 경고음’
이미지 확대보기지난 10년 동안 브라질 전역에서 은행 점포 약 6000곳이 사라진 가운데, 약 2000만 명이 대면 금융 서비스조차 받지 못하는 '금융 난민' 신세로 전락한 것으로 드러났다.
브라질 최대 일간지 폴랴 지 상파울루(Folha de S.Paulo)가 지난 23일(현지시각) 보도한 내용이다. 이는 한국에서도 5년간 900개 이상의 점포가 문을 닫은 상황과 맞물려 '디지털 전환의 이면'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10년 만에 점포 37% 증발…전국 절반이 '은행 없는 도시’
브라질 노동통계·경제연구소(Dieese)가 중앙은행 자료를 분석한 결과, 브라질 전국 은행 점포는 현재 1만 4000여 곳으로 2015년 대비 37% 줄었다. 2015년 이후 638개 시·군에서 은행 점포가 완전히 자취를 감췄고, 약 690만 명이 대면 금융 서비스에서 배제됐다.
수치는 더 가파르게 읽힌다. 현재 점포가 단 한 곳도 없는 시·군은 전국의 48%인 2649곳에 달하며, 이는 10년 전 36%에서 크게 늘어났다. 은행 없는 지역 거주 인구도 같은 기간 전체의 3.4%에서 9%로 두 배 이상 불어나 1970만 명을 넘어섰다.
점포 소멸의 직접 방아쇠는 두 가지였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브라질 정부의 즉시 결제 시스템 '픽스(Pix)' 도입이 맞물리면서 근래 들어서만 전통 오프라인 점포 6000여 곳이 폐쇄됐다.
딜로이트와 브라질은행연합회(Febraban)가 공동 발표한 조사에서도 2024년 은행 거래의 75%는 이미 모바일 기기로 처리됐다. 그러나 완전한 디지털화와는 거리가 멀다. 같은 해 청구서 납부의 27%, 투자 상품 계약의 14%는 여전히 오프라인 창구에서 이뤄졌다.
핀테크 확산 속도도 숨가쁘다. 브라질 중앙은행 인가 핀테크 기업은 2016년 1개에서 2025년 330개로 급증했으며, 인가 여부를 불문한 전체 핀테크 수는 2020년 이후 77% 늘어 2000개를 넘어섰다.
마릴리아 지역 은행원노동조합 에딜손 줄리안(Edilson Julian) 위원장은 "디지털이 대세임을 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에 익숙해질 때까지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도 서비스가 닿아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 지역에서 달마다 초에 점포 문이 열리기 전부터 긴 줄이 선다고 전했다.
노인은 40㎞를 달려서…텅 빈 1000㎡ 건물이 도심을 갉아먹다
점포 폐쇄의 충격파는 취약계층을 집중강타하고 있다. 상파울루 주 산투스(Santos) 시는 2025년에만 14개 점포가 폐쇄돼 현재 80곳만 남았다. 브라질 주요 도시 가운데 고령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다.
이 도시의 아드리아누 레오카디우(Adriano Leocadio) 재정관리국장은 "역사 도심에 1000㎡ 넘는 민간 은행 건물들이 수개월째 빈 채로 방치되고 있다. 이 규모를 받아줄 기업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상파울루 주 내륙 소도시 오스카르 브레사니(Oscar Bressane)에서는 주민들이 금융 업무를 위해 약 40㎞ 떨어진 마릴리아까지 이동해야 한다. 세아라(Ceará) 주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2022년 이후 117개 점포가 문을 닫았으며, 이 중 62곳은 2025년 한 해에 집중됐다.
상파울루 은행원노동조합 네이바 히베이루(Neiva Ribeiro) 위원장은 "은행들이 조 단위 순이익을 쌓으면서도 대규모 해고와 점포 폐쇄를 이어가는 것은 사회적 책임을 저버리는 행위"라며 "특히 고령층·저소득층·소상공인 등 대면 서비스 의존도가 높은 이들의 금융 접근권이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JP모건은 160개 신설로 역주행…한국도 같은 갈림길에 서다
브라질과 달리, 미국 대형 은행들은 오히려 오프라인 네트워크를 넓히고 있다. JP모건 체이스는 올해 2월 30개 이상의 주에서 160개 이상의 점포를 새로 열고, 기존 600개 점포를 추가 개보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농촌과 중저소득층 지역 사회까지 새 시장으로 개척하겠다는 것이 목적이다.
이 대비는 한국 금융 현장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국내에서도 디지털 전환을 명분으로 한 점포 축소가 빠르게 진행 중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20개 은행이 운영하는 오프라인 점포는 2025년 9월 말 기준 5534곳으로, 2024년 말과 비교해 111개 줄었다. 2024년 한 해 110개가 감소했는데, 2025년엔 9개월 만에 그 규모를 넘어섰다.
지역 불균형도 뚜렷하다. 국회 정무위원회 더불어민주당 허영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에 위치한 4대 은행 지점 1045곳 중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에만 329곳이 몰려 전체의 31.5%를 차지했다. 반면 지방 중소도시에서는 자동입출금기(ATM)조차 찾기 어려운 곳이 늘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 자료에서도 은행 점포 이용을 위한 이동 거리가 20㎞를 넘는 상위 30개 지역 가운데 26개가 65세 이상 인구 비율 20%를 웃도는 초고령화 지역으로 나타났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4일 정부서울청사 간담회에서 "은행 점포 폐쇄 대응 방안을 마련해 오는 3월부터 본격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반경 1㎞ 내 점포 통폐합도 이제는 사전영향평가, 지역 의견 청취, 대체 수단 마련을 의무적으로 거쳐야 한다. 지방에서 점포를 줄이면 지방자치단체 금고 유치전에서도 불이익을 받는다.
브라질의 사례는 단순한 남미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의 간편송금 서비스도 빠르게 일상을 파고들고, 오픈뱅킹과 마이데이터가 금융의 무게 중심을 모바일로 이동시키는 지금, '디지털 전환'과 '금융 접근권'이라는 두 가치를 어떻게 균형 잡을 것인지는 한국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함께 짊어져야 할 숙제다.
브라질에서 6000개 점포가 사라지는 데 10년이 걸렸다면, 한국은 얼마나 걸릴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