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원 24명 전원 무사, 화재 4시간 만에 자체 진압… 원인 규명엔 수일
트럼프 "이란 소행" 단정·파병 공개 압박… 한국 정부 "신중 검토"
트럼프 "이란 소행" 단정·파병 공개 압박… 한국 정부 "신중 검토"
이미지 확대보기호르무즈 봉쇄 두 달을 넘긴 페르시아만에서 한국 최대 해운사 HMM이 운용하는 화물선이 폭발과 화재 피해를 입어 두바이항 예인을 기다리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을 소행 주체로 지목하며 한국에 해상 호위 작전 참여를 공개 압박하고 나서 한국 정부의 외교적 선택이 시험대에 올랐다.
씨트레이드 마리타임(Seatrade Maritime), 로이터(Reuters), AFP 등 주요 외신들이 지난 4~6일(현지시각) 보도한 내용을 종합하면, 지난 4일(한국시각) 오후 8시 40분께 아랍에미리트(UAE) 움알쿠와인항에서 북서쪽으로 약 20㎞ 떨어진 해역에 정박 중이던 HMM 나무(HMM NAMU)호의 기관실 좌현에서 폭발음과 함께 화재가 발생했다.
선원들이 이산화탄소(CO2)를 방출해 약 4시간 만에 자체 진화에 성공했고, 한국인 6명과 외국인 18명 등 탑승 선원 24명 전원이 다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3만8000 DWT 최신예 화물선, 진수 8개월 만에 화염
HMM 나무호는 지난해 9월 중국 광저우 HPWS조선소에서 진수한 3만8000 DWT(재화중량톤수)급 다목적화물선(MPP)으로, 건조된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최신형 선박이다. 선박은 파나마 국적으로 등록되어 있으며, 공선(빈 배) 상태로 정박 중이었다.
사고 직후 해상 보안 업체 뱅가드 테크(Vanguard Tech)는 폭발이 기관실 좌현 부근에서 발생했으며, 원인으로 무인 수상정(USV·해상 드론) 또는 표류하던 해상 기뢰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 지역에는 다국적 연합군이 출동했다고 전했다. 다만 HMM 측은 "외부 공격인지 선박 내부 원인인지 아직 확인되지 않는다"며 단정을 피했다.
화재로 선박 전력이 차단돼 자력 항행이 불가능한 상태지만, 비상 발전기가 가동 중이고 식량·식수 등 생필품은 확보되어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화재 진압 때 기관실 내부에 주입한 이산화탄소 농도가 여전히 높아, 선원들이 직접 피해 규모를 확인하지 못한 채 예인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 사고는 지난 3일과 4일 24시간 남짓 사이에 이 해역에서 세 번째로 발생한 상선 피격 사례다. 지난 3일 오후 7시 40분(협정세계시 기준)에는 푸자이라 북쪽 78해리 해상에서 유조선이 드론으로 추정되는 공격을 받았고, 같은 날 오전 11시 30분에는 이란 시리크 서쪽 11해리 해역에서 호르무즈 해협으로 향하던 벌크선이 소형 선박들의 공격을 받은 바 있다.
정부, 전방위 대응… 원인 규명엔 "수일" 전망
청와대는 5일 강훈식 비서실장 주재로 긴급 상황점검 회의를 소집했다. 외교부도 같은 날 새벽 0시께 김진아 2차관 주재로 UAE, 두바이,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7개 공관 및 해양수산부가 참석한 재외국민보호대책본부 회의를 긴급 개최하고, 올해 2월 중동전쟁 발발 이후 호르무즈 해협 내 한국 관련 선박 피해 사례로는 처음이라며 깊은 우려를 표했다.
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예인선 투입과 접안, 국내 조사 인력 파견 및 분석 기간 등을 고려할 때 원인 분석에는 수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해 중앙해양안전심판원 소속 조사관, 소방청 감식 전문가, 한국선급(KR) 두바이 지부 인력을 현지에 급파하기로 했다.
외교부 측은 "정확한 사고 원인은 선박을 예인한 뒤 피해 상태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미국, 이란,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들과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있으며 중동 주재 대사관들을 통해 현지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 중이다.
HMM은 현재 UAE와 사우디아라비아 현지에서 예인선을 섭외하고 있다. 예인선이 확보되면 두바이항으로 이동해 정밀 조사와 수리를 병행할 예정이나, 예인에 걸리는 시일은 유동적이다.
HMM 관계자는 "이런 사태는 처음이라 정확한 일정을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선 의사를 밝힌 선원은 아직 없으며, 하선을 원하는 선원이 생길 경우 교대 인력을 구할 계획이다. HMM은 현재 호르무즈 해협 안쪽 페르시아만에 나무호를 포함해 컨테이너선 1척, 유조선 2척, 벌크선 2척 등 총 5척을 운용하고 있다.
트럼프 "이란 소행" 단정·파병 압박… 한국은 "신중 검토"
이 사고를 둘러싼 외교적 파장도 빠르게 번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이란이 '프로젝트 프리덤'과 관련된 선박 이동 과정에서 한국 화물선을 포함한 여러 국가 선박을 향해 발포했다"며 이란을 공격 주체로 지목했다. 이어 "이제 한국이 이 작전에 동참해야 할 때"라고 압박했다. 피트 헥세스 미국 국방장관도 한국에 '프로젝트 프리덤' 참여를 추가로 촉구했다.
프로젝트 프리덤은 트럼프 대통령 지시에 따라 미군이 페르시아만에 갇힌 민간 선박들을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탈출시키기 위해 가동한 호위 작전이다. 미군은 이 지역에 유도 미사일 구축함과 항공기 100여 대, 병력 1만 5000명을 투입한 상태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압박에 즉답 대신 신중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청와대는 한반도 안보 상황과 국내 법적 절차, 국제법 준수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살피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국 외교부도 나무호 공격 주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지목 발언을 공식 확인하지 않은 채 "예인 후 피해 상태 확인을 거쳐야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있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 사건이 이란의 소행으로 확인될 경우, 이란과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 온 한국 정부로서는 외교적 부담이 한층 커질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외교가 안팎에서 나온다.
해수부에 따르면 현재 호르무즈 해협 내에 발이 묶인 한국 관련 선박은 총 26척이며, 이 가운데 한국인 선원은 123명이다. 한국인이 승선한 외국 국적 선박까지 포함하면 해협 내 억류된 한국인은 모두 160명에 달한다.
정부는 해협 인근에 정박 중인 국내 선박들에 카타르 방면으로 이동하라는 안전 지시를 내렸고, 업계에서는 상당수 선박이 이에 따라 이동 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올해 2월 중동전쟁 발발 이후 한국 선박을 포함한 각국 대형 상선 2000여 척이 두 달 넘게 해협에 갇혀 있는 가운데, 국제 에너지 시장의 불안도 극도로 고조되고 있다.
실제로 국제 원유 기준 유종인 브렌트유 선물은 5일(현지시각) 배럴당 112~113달러 선(약 16만 4640원~16만 6110원, 달러당 1470원 기준)에서 거래됐다. 올해 2월 전쟁 발발 전과 비교해 60% 안팎 급등한 수치다.
골드만삭스는 5일 보고서에서 현재 전 세계 원유 재고가 약 101일치 수요에 해당하지만, 5월 말에는 98일치로 줄어들 것으로 추산하면서 나프타·액화석유가스(LPG)·항공유 등 정제 제품의 공급 부족이 특히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ING 은행의 워런 패터슨 상품전략 책임자는 "차질이 장기화될수록 시장이 재고에 기댈 여력이 줄고, 추가 수요 파괴 압력은 더 높아진다"고 경고했다.
산업통상부는 앞서 지난달 중순 자원 안보 위기 경보를 '경계' 단계로 격상하고, 정유사가 전략비축유에서 차입할 수 있는 비축유 스와프(SPR Swap) 프로그램을 가동한 상태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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