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도 무역협정 서명 지연 속 에너지 공급 다변화 협력 전면화
호르무즈 봉쇄 장기화에 미국산 에너지·베네수엘라 원유 카드 동시 꺼내
호르무즈 봉쇄 장기화에 미국산 에너지·베네수엘라 원유 카드 동시 꺼내
이미지 확대보기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에너지 위기에 몰린 인도를 향해 미국이 '에너지 동맹'을 전면에 내세우며 관계 복원에 나섰다.
인도 투데이(India Today)는 23일(현지시각) 마르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뉴델리에서 회담을 열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명의의 백악관 방문 초청장을 직접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회담은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관세 갈등과 러시아산 원유 구매 문제로 냉각됐던 미·인도 관계를 수습하려는 워싱턴의 행보로 풀이된다.
루비오 장관은 모디 총리와의 회담에서 "미국은 이란이 글로벌 에너지 시장을 인질로 잡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미국산 에너지 제품이 인도의 에너지 공급원을 다변화하는 데 충분한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다. 올해 3월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 이후, 대체 송유관의 수송 능력은 하루 원유 물동량(약 2000만 배럴)의 7분의 1에 불과하고, 우회 항로를 이용하더라도 수송 비용이 50~80%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원유 수입량의 80%를 해외에 의존하는 인도로서는 호르무즈 해협의 사실상 폐쇄가 에너지 안보의 급소를 찌른 셈이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분석에 따르면, 인도의 러시아산 원유 구매량은 제재 부과 이전 하루 약 2만 배럴에서 최대 200만 배럴로 급증했으며, 이를 통해 인도 정유사들은 2023~2024년 110억~250억 달러(약 16조~37조 원)를 절감한 것으로 추산된다.
루비오 장관의 에너지 제안에는 베네수엘라 카드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은 인도에 미국산 에너지 수출 확대 의사를 밝히는 한편, 베네수엘라 원유 공급을 연계한 광범위한 에너지 협력 방안도 함께 검토 중이다.
니콜라스 마두로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 이후 미국이 사실상 장악한 베네수엘라 원유를 세계 시장에 다시 공급하겠다는 구상으로, 인도를 주요 수요처로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관계 복원 시도… 곳곳에 남은 긴장의 흔적
루비오 장관의 이번 방문은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난 직후 이뤄졌다. 미국 외교정책 싱크탱크 외교관계협의회(CFR)의 인도·파키스탄·남아시아 선임연구원 사다난드 두메는 "루비오는 사실상 '관계 수리'를 위해 인도를 방문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인도 외교부 차관 샴 사란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25년간 지속된 미·인도 관계의 상승세가 정체 내지 후퇴 국면에 들어섰다"고 진단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인도의 러시아산 원유 지속 구매에 대한 '보복' 조치로 인도산 수입품에 최대 50%의 관세를 부과했다. 이후 모디 총리와의 회동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인도 측의 러시아산 원유 구매 중단 약속을 받아내는 조건으로 관세를 18%로 낮췄다.
그러나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새 변수가 등장하면서 인도는 러시아산 원유 구매를 다시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어서 양국 간 긴장의 불씨는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외교적 냉기류는 루비오 장관의 도착 현장에서도 감지됐다. 뉴델리 공항에서 그를 맞이한 인물이 외교부 고위 인사가 아닌 실무급 담당자에 그쳤다는 점에서, 인도 측이 미묘한 거리감을 표시했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쿼드 복원·G7 정상 회동 계기 될지 주목
미·인도 간 다음 외교 이벤트는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루비오 장관은 오는 26일 인도에서 열리는 쿼드(Quad·미국·인도·일본·호주) 외교장관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다.
이는 최근 지도자 회의 취소 등으로 존재감이 약해진 쿼드를 되살리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미국의 지속적 관여를 동맹국들에 재확인하는 신호로 읽힌다.
미·인도 두 정상의 직접 만남도 머지않은 것으로 보인다. 원문 보도에 따르면 모디 총리는 다음 달 프랑스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특별 초청자 자격으로 참석하며,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동이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해졌다.
루비오 장관의 방문이 양국 간 실질적 돌파구를 여는 계기가 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와 이란과의 평화 협상 교착이라는 중동발 불확실성이 미·인도 무역협정의 정식 서명도 계속 지연시키고 있는 탓이다.
미국 국무부는 이번 회담이 인도·미국 포괄적 전략 파트너십의 추진력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양국이 에너지·안보·무역 세 축에서 협력의 속도를 실제로 높일 수 있을지, 그 시험대가 G7에서 펼쳐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