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 혁명이 물가 누른다는 가설… 작은 일터엔 보여도 거시 통계엔 아직
워시 첫 회의서 금리 동결·연내 인상 시사… 미국 노동자 43%가 AI 쓴다
워시 첫 회의서 금리 동결·연내 인상 시사… 미국 노동자 43%가 AI 쓴다
이미지 확대보기연방준비제도(Fed)는 지난 17일(현지시각) 기준금리를 연 3.50~3.75%로 동결했다. 케빈 워시 신임 의장이 주재한 첫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다. 점도표는 한 발 더 나아갔다. 위원들의 새 전망은 올해 0.25%포인트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석 달 전 0.25%포인트 인하를 점쳤던 것과 정반대 방향이다. 5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4.2% 올라 2023년 4월 이후 가장 큰 상승폭을 기록했다.
한국 투자자의 질문은 단순하다. 이 높은 물가와 금리가 언제 꺾이느냐다. 주택담보대출과 기업 자금 비용이 여기에 달렸다.
이 질문에 가장 도발적인 답이 있다. "인공지능(AI)이 물가를 잡는다"는 가설이다. AI가 같은 인력으로 더 많이 생산하게 만들면, 경제가 빨리 성장해도 물가는 오히려 내려간다는 논리다. 그러나 핵심은 가설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시점'이다. 작은 일터에서는 효과가 보이지만, 나라 전체 통계에는 아직 잡히지 않는다. 지금은 오히려 AI가 물가를 밀어 올린다.
거시 통계는 가설을 받쳐주지 못한다
총요소생산성(TFP)이 이를 뒷받침한다. 샌프란시스코 연준 자료를 보면 챗GPT가 나온 2022년 이후 TFP 증가율은 해마다 평균 1.11%에 머물렀다. 역사적 평균 1.23%를 밑돈다. TFP는 자본과 노동을 모두 반영해 순수한 효율 개선을 가려내는 지표다. 이 수치가 낮다는 것은 성장이 효율이 아니라 투자 자체에서 나왔다는 뜻이다.
여기서 숫자 혼선을 짚어야 한다. 노동생산성은 결이 다르다. 미국 노동통계국(BLS)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노동생산성은 1년 전보다 2.8% 올랐다. TFP가 자본·노동을 함께 보는 반면, 노동생산성은 시간당 산출만 따져 단기 체감에 더 가깝다. 그래서 두 숫자가 엇갈린다.
다만 그 속살은 미묘하다. 인디드 하이어링랩 분석을 보면 2025년 TFP는 1.5%에서 0.8%로 둔화했고, 1분기 노동 분배율은 54.1%로 1947년 통계 작성 이후 최저였다. 효율보다 자본 투자가 끌어올린 수치이며, 그 몫도 노동자에게 가지 않는 '쥐어짜기'라는 해석이다.
작은 일터에서는 효과가 분명하다
반대로 개별 업무로 좁히면 신호가 강하다. 골드만삭스 분석에서도 소프트웨어 코딩과 고객 응대라는 두 용도에서 약 30%의 생산성 향상이 확인됐다.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HAI)의 올해 보고서는 더 구체적이다. 고객 지원은 14~15%, 소프트웨어 개발은 26%, 마케팅 산출은 50% 늘었다. 다만 한계도 짚었다. 깊은 추론이 필요한 작업에서는 효과가 작고, AI에 지나치게 기대면 장기적으로 학습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낙관론에 선 학자도 있다. 스탠퍼드대 에릭 브린욜프슨 교수다. 그는 특정 작업에서의 두 자릿수 향상을 근거로 지난해 미국 생산성이 약 2.7% 늘었다며 중요한 전환점이 시작됐을 수 있다고 본다.
쟁점은 하나로 모인다. 작은 일터의 향상이 언제 나라 전체로 퍼지느냐다. 무디스 애널리틱스는 경제학자와 기술자가 다른 언어로 말한다고 정리했다. 경제학자는 시간당 실질 산출로 생산성을 재고, 기술자는 다른 잣대를 쓴다.
"지금 AI는 오히려 물가를 밀어 올린다"
가설의 가장 약한 고리가 여기다. AI 인플레는 분명한 경로를 탄다. 메모리(HBM)·그래픽처리장치(GPU) 가격 상승이 데이터센터 설비투자(CAPEX)로, 다시 전력·냉각·건설 비용으로, 끝내 서비스 가격으로 번진다.
골드만삭스와 JP모건자산운용, 스타이플은 한목소리를 냈다. AI 구축이 지금은 물가를 끌어올리고 있으며, 약속된 생산성 효과는 아직 멀었다는 진단이다. 스타이플의 토머스 캐럴은 올해가 65년 만에 처음으로 기술재 가격이 임금보다 빠르게 오른 '체제 전환'의 해라고 평가했다. 통상 물가를 끌어내리던 기술재가 거꾸로 물가 요인으로 바뀌었다는 신호다.
연준 내부도 갈렸다. 워시 의장은 장기적으로는 이 가설을 지지하는 편이다. 그는 지난해 월스트리트저널 기고에서 AI가 생산성을 높이고 미국 경쟁력을 키우는 '중대한 물가 안정 동력'이라고 적었다. 다만 당장 첫 회의에서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현재의 지표를 통제하겠다는 뜻이다.
반면 리사 쿡 이사는 AI 투자 수요가 반도체와 고가 장비, 소프트웨어는 물론 건설 인력과 전기, 물 가격까지 밀어 올린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내일의 더 높은 생산성에 대한 희망에 통화정책을 걸기보다, 오늘의 목표 상회 물가를 경계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근거는 약 1조 5000억 달러(약 2308조 원)에 이르는 데이터센터 투자 계획이다.
그래도 '나중엔 디스인플레'라는 모델
낙관론을 떠받치는 근거는 감(感)이 아니라 모델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이 펴낸 연구보고서(워킹페이퍼 1179호)가 둘로 갈린 흐름을 깔끔하게 설명한다. AI 도입은 초기에는 물가를 끌어내린다. 하지만 가계와 기업이 미래의 생산성 향상을 미리 예상하면 투자와 소비(수요)가 앞당겨져 단기적으로 물가가 즉시 오른다는 분석이다. 지금 인플레는 시장이 AI 효과를 '미리' 반영한 결과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부문별 시차도 확인된다. 캔자스시티 연준은 2022년 3분기부터 미국 노동생산성이 팬데믹 이전 추세를 뚜렷이 웃돌았고, 이는 생성형 AI 도구의 상업적 등장 시기와 겹친다고 분석했다. 다만 초반에는 소수 산업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으며, 실제 이익도 정보 서비스와 기업 대상 전문 서비스의 특정 분야에 몰렸다고 단서를 달았다. 효과가 진짜이되, 아직 좁다는 뜻이다. 그러나 과거 전기와 정보기술(IT)도 소수 산업에서 출발해 10여 년에 걸쳐 전 산업으로 번졌다. 낙관론자들이 "지금은 그 초입"이라고 보는 근거다.
한국은 '공급자'이자 '빠른 사용자'
지역 비교는 가설에 가장 유리한 대목이다. 한국에 주는 뜻도 크다.
세인트루이스 연준과 브루킹스연구소의 공동 연구 '마인드 더 갭'을 보자. 올해 초 미국 노동자의 43%가 업무에 생성형 AI를 썼다. 유럽 6개국 평균은 32%다. 연구진은 2022년 이후 미국이 유럽보다 3.2%포인트의 생산성 우위를 추가로 쌓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다만 단서를 달았다. 이는 인과관계가 아니며, AI 도입이 많은 산업이 다른 이유로 이미 상승세였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는 신중론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AI를 만드는 나라'와 '쓰는 나라'가 다르다는 점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자료 기준으로 아랍에미리트(UAE)가 70%를 웃돌아 1위, 싱가포르가 63%로 2위다. 반면 미국은 모델 개발과 칩 설계, 벤처 투자를 지배하면서도 일상 사용률은 세계 20위권 밖이다. 격차를 가른 핵심은 비용이나 규제가 아니었다. 기업이 직원에게 AI 사용을 적극 권하고 도구를 제공하는지 여부가 더 컸다.
한국의 위치는 독특하다. 메모리와 인프라를 대는 공급자이자, 동시에 가장 빠른 사용자다. 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크는 AI 시장 15곳 중 10곳을 차지했고, 한국의 AI 사용은 지난해 상반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43.2% 늘어 세계 1위 증가율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미국 증가율 19%를 두 배 넘게 앞섰다.
그만큼 한국은 시험대에 선다. AI 디스인플레가 통계에 잡히기 전까지, 전력·부지·설비투자 부담이라는 인플레 요인과 생산성 향상이라는 디스인플레 요인이 동시에 작용하는 무대다. 그 결과가 국내 금리와 부동산, 설비투자 흐름을 가른다. 전력 수요 급증이 물가를 밀어 올리면 한국은행은 미국보다 인하를 서두르기 어렵다. 반면 생산성 효과가 먼저 잡히는 기업·업종은 설비투자와 주가에서 앞서간다. 거시 금리 완화보다 종목 차별화가 먼저 온다.
금리 내릴 명분은 아직 없다
종합하면 'AI가 물가를 잡는다'는 명제는 틀린 주장이 아니다. 아직 증명되지 않은 조건부 낙관론이다. 골드만삭스조차 절충안을 냈다. AI 효과가 넓게 퍼지면 결국 물가를 누르는 힘으로 바뀌지만, 그 전까지는 물가를 밀어 올리는 요인이라는 '선비용, 후효과' 구도다.
투자자가 지켜볼 지표는 세 가지다. 각 지표가 금리로 이어지는 길도 분명하다.
첫째, 빅테크 설비투자 증가율이다. 투자 광풍이 꺾이면 수요발 물가가 풀려 장기금리 하락 압력으로 작용한다.
둘째, 시간당 노동생산성과 단위노동비용(ULC)이다. 생산성이 오르고 ULC가 내리면 근원물가가 둔해진다. 현재 ULC는 전년 대비 0.5%로 낮지만, 효율이 아닌 쥐어짜기에 기댄 수치인지 가려야 한다.
셋째, 실시간 물가지표와 공식 소비자물가지수(CPI)의 간격이다. 블록체인과 실시간 데이터를 활용해 매일 물가를 산출하는 탈중앙화 플랫폼 '트루플레이션'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매일 가격을 집계하는 민간 지표는 공식 통계보다 변화를 먼저 보여준다. 두 지표의 격차가 좁혀지면 정책 시차가 줄어 연준이 방향을 틀 명분이 생긴다.
금리 하락의 조건은 'AI 생산성이 거시 통계에 잡히는 것'이며, 이는 최소 1~2년의 시차를 전제한다. AI는 언젠가 금리를 내리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금리를 내릴 이유는 아직 만들지 못했다. 논쟁의 승부는 기술이 아니라 시점에 달렸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