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160만배럴서 700만배럴로…유가 상승 막는 완충재 역할
비축유·정유 감산·전기차로 대응…6개월 추가 억제 가능
비축유·정유 감산·전기차로 대응…6개월 추가 억제 가능
이미지 확대보기중국이 비축유 방출과 정유공장 감산, 연료 수출 중단, 전기차 보급 확대를 통해 원유 수요를 탄력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글로벌 석유회사와 산유국의 장기 수요 전망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공급을 조절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처럼 수요를 조절해 국제 원유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9일(이하 현지시각) 분석했다.
◇ 중국 원유수입 하루 460만배럴 감소
미국석유협회(API)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하루 평균 1160만배럴의 원유를 수입했다.
호르무즈 해협이 폐쇄된 뒤 수입량은 빠르게 줄어 올해 6월에는 하루 약 700만배럴까지 떨어졌다. 하루 460만배럴가량 감소한 것으로 비율로는 약 40%에 이른다.
주요 국가의 원유 수입이 이 정도 규모로 줄어든 것은 심각한 경기침체기에도 찾아보기 어려운 사례라고 WSJ는 전했다.
중국의 2분기 경제성장률은 4.3%로 1분기보다 둔화했지만 에너지 소비가 붕괴할 정도의 경기 위축은 아니었다.
중국의 원유 수입 축소는 국제 원유시장의 공급 부족을 일부 상쇄해 유가 상승을 제한하는 완충재 역할을 했다. 원자재 거래업체들도 세계 최대 원유 구매국이 이처럼 빠르게 수입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 비축유로 6개월 추가 버틸 여력
6개월 뒤에도 중국에는 정유사와 민간기업의 상업용 재고, 전략비축유를 합쳐 약 11억배럴이 남을 것으로 추산됐다.
다만 중국 정부가 비축량을 지나치게 낮추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중국의 원유 재고는 지난해 초 약 10억7000만배럴이었다. 중국 정부는 당시 대대적인 원유 비축 확대에 나섰다.
재고가 이 수준에 가까워지면 중국이 국제 현물시장에 복귀해 원유 구매를 다시 늘릴 가능성이 있다. 중국의 수입 재개 시점이 국제유가를 결정할 주요 변수가 된 셈이다.
◇ 정유공장 가동 줄이고 연료 수출 금지
중국은 비축유를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호르무즈 해협 폐쇄 직후 정유공장 가동률도 낮췄다.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제품의 해외 수출을 금지해 국내 공급량을 확보했다. 정유공장의 원유 처리량이 줄면서 해외 원유를 새로 들여와야 할 필요도 감소했다.
중국 소비자의 교통수단 변화도 석유 소비를 줄이는 데 기여했다.
내연기관차 대신 전기차를 이용하는 사람이 늘었고 국내선 항공기 대신 전기로 운행하는 고속철도를 선택하는 수요도 증가했다.
중국은 수년 동안 해외 원유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전기차와 고속철도, 재생에너지, 원유 비축시설에 대규모로 투자해왔다.
지난해 중국에서 판매된 신차 가운데 절반 이상은 전기차를 포함한 전동화 차량이었다. 전쟁과 해협 폐쇄를 계기로 이런 에너지 전환의 효과가 실제 위기 상황에서 확인됐다고 WSJ는 분석했다.
◇ 산유국 아닌 소비국이 유가 움직여
국제 원유시장은 전통적으로 공급 변화가 가격을 움직이는 구조로 인식됐다.
OPEC이 생산 할당량을 조정하면 국제유가가 움직이고 유가가 배럴당 약 65달러(약 9만4000원)를 넘으면 미국 셰일업체가 생산을 늘려 공급 부족을 메우는 방식이었다.
반면 원유 수요는 가격이 오르더라도 단기간에 크게 줄지 않는 비탄력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중국은 비축유와 전기차, 대중교통, 정유공장 운영을 함께 조정해 원유 수입을 단기간에 대폭 줄였다.
케이플러 관계자는 “시장에서는 중국을 ‘원유 수요의 OPEC’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며 “중국 정부의 판단이 국제유가의 방향을 좌우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에너지 컨설팅업체 랜타우그룹은 공급뿐 아니라 수요 측에서도 시장을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이 원유 공급업체에는 상당한 위협이라고 진단했다.
◇ 지난해에는 비축 확대해 유가 하락 막아
중국은 지난해에도 예상과 다른 방식으로 국제유가에 영향을 미쳤다.
당시 일부 분석가는 공급 과잉으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50달러(약 7만3000원)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중국이 전략비축유를 늘리기 위해 원유를 대규모로 사들이면서 예상됐던 공급 과잉은 현실화하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중국의 구매 확대가 유가 하락을 막았지만 올해는 수입 축소가 유가 상승을 제한하고 있다.
중국이 비축유 규모와 정유 가동률을 조절하면서 원유시장에서 가격 안정자와 가격 상승 요인을 모두 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 전기차·재생에너지 전환 효과 부각
중국의 수입 축소는 화석연료 수입 의존도가 높은 다른 국가의 부담도 일부 덜어주고 있다.
중국이 국제시장에서 원유 구매를 줄이지 않았다면 빠르게 감소하는 세계 원유 재고와 공급 차질이 맞물려 유가가 더 큰 폭으로 올랐을 가능성이 있다.
WSJ는 중국이 운송수단을 전기화하고 발전원을 다변화해 원유 충격을 견딜 여유를 확보했다고 평가했다.
미·이란 전쟁 이후 동남아시아 일부 국가에서도 중국산 전기차와 태양광 패널 수입이 늘고 있다. 다른 원유 수입국들이 중국의 에너지 전환 전략을 참고하기 시작했다는 초기 신호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WSJ는 중국이 원유를 사들이던 석유업계의 최대 고객에서 필요에 따라 구매를 대폭 줄일 수 있는 시장 변수로 바뀌었다며 대형 석유회사와 산유국이 중국 수요를 이전처럼 안정적인 것으로 간주하기 어려워졌다고 전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