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 패러다임의 대전환, ‘스테이블코인’
‘달러 패권’의 디지털 진화… 글로벌 금융 지형 흔든다
‘달러 패권’의 디지털 진화… 글로벌 금융 지형 흔든다
이미지 확대보기1977년부터 본격 가동된 ‘국제금융통신망(SWIFT)’과 각국의 자금 결제망(CHIPS, Fedwire, TARGET2 등)은 과연 어떤 운명에 놓이게 될까.
법정화폐 및 국채에 1:1로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은 복잡하고 더딘 전통 중개 은행망을 빠르게 대체하며 차세대 결제 인프라로 세를 확장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중국 등 주요국이 통화 주권을 사수하는 동시에 글로벌 디지털 금융 혁신을 주도하기 위해 ‘제도화 속도전’에 사력(死力)을 다하는 이유다.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미 국채 담보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이제 단순한 가상자산 영역을 넘어 글로벌 결제시스템의 핵심축으로 자리 잡을 태세다.
글로벌 무역·금융 결제의 주축인 SWIFT는 블록체인 기반 자금 이체에 비해 비용과 시간 면에서 명확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기존 방식은 자국 통화를 달러 등 기축통화로 환전하고, SWIFT망을 거쳐 환적(Correspondent) 은행을 통과한 뒤, 다시 상대국 화폐로 교환하는 번거로운 단계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 SWIFT는 전문 메시지(MT103 등)를 전달하고, 미국 뉴욕의 ‘CHIPS·Fedwire’, 한국의 ‘BOK-Wire+’, 유럽의 ‘TARGET2’ 등 각국 결제망을 통해 최종 자금 정산과 결제를 완료한다.
지금껏 SWIFT 시스템은 국경 간 거래를 확장하고 세계 경제를 번성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스테이블코인의 등장은 SWIFT를 비효율적인 구체제로 내몰고 있다. 높은 송금 수수료(평균 6~7%)와 긴 정산 기간(1~4일), 복잡한 행정 절차는 가속화되는 글로벌 비즈니스의 걸림돌이 된 지 오래다.
스테이블코인은 이 구조를 단숨에 재편한다. 블록체인 네트워크 위에서 기업 간(B2B), 개인 간(P2P) 직접 결제가 이루어짐으로써, SWIFT와 중개은행 연합으로 구성된 기존 결제망은 급격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수수료는 1% 미만으로 떨어지고, 수일이 걸리던 정산은 단 수 분 만에 완료된다.
나아가 스마트 컨트랙트는 탈중앙화 거래소(DEX)와 연동되어 송금과 동시에 자동 환전까지 수행한다.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유로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으로 즉시 전환해 수취인에게 전달하는 식이다. 기업과 개인이 이 압도적인 효율성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미 국채 담보 스테이블코인', 보이지 않는 달러 영토 확장
SWIFT 집계에 따르면 글로벌 결제 통화 중 미 달러화 비중은 50% 안팎으로 독보적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유로화, 파운드, 엔화, 위안화가 그 뒤를 잇는다. 하지만 이 통계에는 착시가 존재한다. 어디까지나 ‘전통 은행망’을 거친 거래만을 집계한 수치이기 때문이다.
아르테미스(Artemis), 알리움(Allium Labs) 등 온체인 데이터 분석 기관에 따르면, 블록체인 상에서 이뤄지는 스테이블코인의 연간 누적 거래 규모는 이미 수십조 달러를 넘어섰다. 이 중 90% 이상이 미 달러화에 연동된 코인이다. 보이지 않는 이 온체인 거래까지 합산하면 실질적인 글로벌 달러 결제 비중은 공식 통계를 훨씬 웃돌고 있다. 미 국채 담보 스테이블코인이 완전한 제도권에 안착하면, 높은 신뢰성과 편의성을 바탕으로 달러의 시장 지배력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제2 달러 패권’ 시대의 도래다.
전통 은행들의 수익 모델 붕괴 위험
스테이블코인의 폭발적 확산은 전통 SWIFT 결제망의 급격한 위축을 뜻한다. 그동안 해외 송금 중개수수료와 환전 마진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누려온 전통 은행들의 수익 모델은 붕괴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SWIFT의 대표적 단일 해외 송금 표준 메시지(전문)인 'MT103'을 비롯한 기존 자금 이체 메시지 물량 역시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달러 패권’ 더 강화 되나… 한국의 과제는
씨티그룹(Citigroup) 등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2030년대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장(발행잔액)이 1조6000억 달러에서 최대 4조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 가운데 미 국채 담보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80~85%의 압도적 점유율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미국의 막대한 부채(국채)를 일정 부분 자연스럽게 소화해 주는 동시에, 달러 유통망을 전 세계 구석구석으로 확산시키는 디지털 통화 패권의 핵심 무기가 되고 있다.
1971년 닉슨 독트린으로 달러 금태환이 정지된 이후, 글로벌 금융 지형에 다시 한번 거대한 변혁의 파도가 몰려오고 있다. 거세게 확장하는 기축통화들의 디지털 영토에 흡수될 것인가, 아니면 자국 통화 주권을 지키며 새로운 국제 결제생태계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것인가.
민간 스테이블코인의 자발적 확장성과 글로벌 네트워크 효과를 고려할 때, 원화(KRW) 사수라는 규제 틀에만 매달린다면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지배하는 글로벌 디지털 영토에 속수무책으로 흡수될 수 있다. 민간의 혁신과 중앙은행의 신뢰도를 조화롭게 결합한 ‘한국형 디지털 통화 생태계’의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은 이유다.
탈중앙화 블록체인 시대, 통화 주권은 더이상 정부의 인위적인 통제나 강제력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자국 화폐의 안전성과 신뢰도는 스스로 증명해 내야 한다. 방만한 재정 운용으로 정부부채와 통화량이 과도하게 늘어나고 환율 불안이 가중 된다면, 국제무대는 물론 국내 거래에서조차 원화는 소외될 수 있다. 경제 주체들에게 외면받고 거래에서 소외된 화폐는 결국 종이 조각에 불과해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때다.
황상석 글로벌이코노믹 수석 전문위원 h1234@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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