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사회 소속 리사 쿡(Lisa D. Cook) 이사를 향해 전격적인 해임 통보를 단행하면서 촉발된 갈등은 연방대법원의 법정 공방으로 비화했다. 1913년 연방준비제도 창설 이래 111년이 넘는 미국 중앙은행 역사상 현직 연준 이사를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축출하려 한 사태는 전무후무하다. 이는 단순한 인사 분쟁의 범주를 넘어, 현대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핵심 기틀인 '중앙은행의 정치적 독립성'을 정면으로 뒤흔드는 중대한 시험대다.
리사 쿡 이사는 경제학계에서 입지전적인 길을 걸어온 노동·혁신·거시경제 전문가다. 108년 연준 역사상 최초의 아프리카계 흑인 여성 이사라는 상징성도 지니고 있다. 그녀의 학문적 성취와 정책 경험은 그 상징성을 훌륭히 뒷받침한다. 조지아주 밀리지빌 출신인 쿡 이사는 흑인 대학(HBCU)인 스펠먼 칼리지(Spelman College)에 진학해 물리학과 철학을 복수 전공하며 수석급(magna cum laude)으로 졸업했다. 학부 시절 전미 유망 인재에게 수여되는 해리 S. 트루먼 장학생(Truman Scholar)으로 선발되었다. 스펠먼 칼리지 출신으로는 사상 최초로 영국 마셜 장학생(Marshall Scholar)으로 뽑혀 대서양을 건넜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세인트 힐다스 칼리지)에서 철학·정치·경제학(PPE) 학위를 취득한 데 이어, 세네갈의 셰이크 안타 디오프 대학교(Université Cheikh Anta Diop)에서 철학 연구 과정을 거치는 등 다문화적·융합적 시야를 넓혔다. 이후 미국으로 돌아와 명문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UC 버클리)에서 경제학 박사(Ph.D.) 학위를 취득했다. 당시 그녀를 지도한 인물은 국제금융론의 대가 배리 아이켄그린(Barry Eichengreen)과 거시경제학 교과서의 표준을 쓴 데이비드 로머(David Romer)였다. 박사학위 논문은 제정 러시아와 구소련 붕괴 이후 낙후된 은행 시스템 및 법치주의의 형성이 금융 발전에 미치는 영향이다. .
쿡은 연구실에만 머무르지 않고 현실 경제 정책 수립의 최전선에 섰다. 2000~2001년 미국 외교협회(CFR) 펠로우십을 통해 재무부 국제업무국 금융·개발 선임고문으로 일하며 아프리카와 신흥국의 금융 개혁을 지원했고, 2011~2012년에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선임 이코노미스트로 발탁되어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 과정의 거시경제 정책을 자문했다.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이사로도 활동하며 중앙은행 시스템에 대한 이해를 쌓았다. 2022년 1월 조 바이든 대통령에 의해 연방준비제도 이사로 지명되어 동년 5월 23일 취임했다. 2023년 5월 재지명된 뒤 상원의 인준 절차를 거쳐 2023년 9월 13일, 2038년 1월 31일까지 법적으로 보장된 14년 정규 임기를 시작했다. 연준 내에서 쿡 이사는 인플레이션 억제와 고용 극대화라는 연준의 '이중 책무(Dual Mandate)' 사이에서 데이터에 기반해 경기 연착륙을 모색하는 온건한 비둘기파·중도파 성향으로 평가받아 왔다.
트럼프의 눈밖에 난 근본적 배경
트럼프 행정부는 왜 이처럼 탄탄한 학문적·정책적 경력을 갖춘 쿡 이사를 겨냥해 칼을 빼 들었을까? 트럼프 대통령이 표면적으로 제시한 해임 명분은 이른바 '모기지 대출 부정행위'다. 2025년 8월, 트럼프 행정부의 연방주택금융청(FHFA) 청장 빌 풀테(Bill Pulte)는 쿡 이사가 2021년 미시간주와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부동산 대출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두 곳 모두를 주 거주지(primary residence)로 신고해 부당한 금리 혜택을 취득했다며 법무부에 수사를 의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금융 감독자로서 "기망적이며 잠재적 범죄 행위"로 규정하고 연방준비제도법상 정당한 해임 사유(for cause)에 해당한다며 즉각 해임을 통보했다.
공개된 대출 견적서와 사실관계에 따르면 조지아주 주택은 주 거주지가 아닌 '휴양용 별장(vacation home)'으로 명시되어 있었다. 우대금리를 편취했다는 혐의는 법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결국 대출 서류 표기 문제는 꼬투리를 잡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을 뿐, 실제 트럼프의 눈밖에 난 본질적인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뉴욕증시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리사쿡 해임에 대해 연준의 금리 정책에 대한 불만과 '본보기식 압박'으로 보고 있다.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폭탄, 법인세 인하, 제조업 유치를 핵심으로 하는 자신의 경제 아젠다를 뒷받침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하지만 제롬 파월 의장을 필두로 한 연준은 관세 인상에 따른 인플레이션 반등 위험을 경계하며 신중한 금리 인하 기조를 유지했다. 행정부의 요구에 순응하지 않는 연준을 굴복시키기 위해 상대적으로 정치적 기반이 취약한 바이든 지명 이사를 공격하여 연준 전체에 강한 경고를 날린 것이다.
트럼프의 리사쿡 해임시도는 또 연준 이사회 장악을 통한 '통화 주권'의 종속화 시도로 불 수 잇다. 연준의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7명의 연준 이사와 5명의 지역 연은 총재로 구성된다. 대통령이 '정당한 사유'의 해석을 멋대로 확장해 현직 이사를 강제 해임하고 충성파 인사로 대체할 수 있다면, 백악관은 통화정책 결정 기구를 장악할 수 있게 된다. 쿡 이사의 축출 시도는 연준 이사회의 구성을 흔들어 정치적 종속을 유도하려는 교두보 확보 전략이었다. 보수 진영의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및 진보 학계 엘리트' 척결 기조와도 무관하지 않다. 쿡 이사는 인종적 불평등과 경제 성장의 관계를 연구해 온 대표적 학자이자 바이든 행정부 다양성 정책의 상징적 인물이었다. 공화당 강경파 지지층에게 쿡 이사에 대한 공격은 연준이라는 권력 기관 내 '진보적 엘리트주의'를 심판한다는 강력한 정치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수단으로 기능했다.
트럼프의 일방적 해임 처분에 맞서 쿡 이사는 연방법원에 즉각 효력 정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경제학계 역시 격렬하게 반응했다. 590명이 넘는 경제학자와 수많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은 연명 성명을 통해 "연준 이사에 대한 정치적 탄압은 미국 금융 시스템의 신뢰를 갉아먹는 자해 행위"라고 경고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2026년 6월 29일, 본안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쿡 이사가 정상적으로 연준 이사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결정을 내렸다(Trump v. Cook). 대법원은 법률이 규정한 해임 절차적 정당성을 대통령이 위반했음을 지적하며, 대통령이 자의적이고 정치적인 이유로 연준 이사를 해임할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결코 학자들의 추상적 명분이 아니다. 단기 선거 승리에 눈이 먼 정치권력이 발권력을 쥐고 금리를 마구 조작하기 시작할 때, 그 끝은 화폐 가치 폭락과 통제 불능의 하이퍼인플레이션뿐이라는 사실을 인류의 경제사는 뼈아프게 기록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리사 쿡에게 가한 공세는 한 이코노미스트 개인에 대한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기축통화 달러의 신뢰와 전 세계 금융 질서를 지탱해 온 시스템의 숨통을 조이려 한 도박이었다. 정치가 중앙은행의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시장의 신뢰는 회복할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