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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막힌 러시아, 북극항으로 밀 수출 우회…운송비 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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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막힌 러시아, 북극항으로 밀 수출 우회…운송비 급증

무르만스크서 밀 2만9500t 첫 시험 선적…7~9월 수출량 38% 감소
우크라이나도 대체 항로 확보 난항…양국 농가 수익 악화에 내년 생산 차질 우려
러시아 북극권 바렌츠해에 위치한 무르만스크항 전경.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러시아 북극권 바렌츠해에 위치한 무르만스크항 전경. 사진=로이터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으로 흑해를 통한 곡물 수출에 심각한 차질을 빚고 있는 러시아가 수천㎞ 떨어진 북극항을 활용해 밀 수출에 나섰다.

세계 최대 밀 수출국인 러시아가 기존 흑해 항로 대신 북극해와 발트해 등으로 수출 경로를 돌리고 있지만 운송비 급증과 철도·항만의 처리능력 부족으로 대체 수송에도 한계가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우크라이나 역시 러시아의 공격으로 곡물 수출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양국 농민들이 생산비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곡물을 판매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흑해 해상 운송을 둘러싼 충돌이 격화하면서 양국의 곡물 수출 비용이 급증하고 농가 수익이 악화하고 있다고 1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러시아, 북극항서 밀 2만9500t 첫 시험 선적


러시아 북극권에 있는 무르만스크항에서는 지난달 28일 북아프리카로 수출할 밀 2만9500t을 벌크선에 싣는 작업이 시작됐다.

무르만스크항이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이번 수출은 북극항을 활용한 첫 시험 선적이다.

항만 측은 기존에 비료를 취급하던 시설을 곡물 선적에 활용하도록 개조했다.

러시아가 주요 농업 생산지에서 수천㎞ 떨어진 북극항까지 곡물을 운송하는 것은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으로 흑해를 통한 기존 수출 경로가 사실상 막혔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2022년 러시아의 전면 침공 이후 흑해 항구 봉쇄로 곡물 수출에 반복적인 차질을 겪었다.

그러나 올해 여름부터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항구와 상선을 겨냥한 드론 공격을 강화하면서 러시아의 곡물 수출도 심각한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이미 발트해 항구를 이용한 곡물 수출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번 무르만스크항 시험 선적을 통해 북극해 항로의 활용 가능성까지 확인하고 있다.

◇러시아 밀 수출 38% 급감…흑해 운임 두 배 이상 상승


러시아 철도 화물업체 루사그로트란스에 따르면 올해 7~9월 러시아의 밀 수출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8% 감소했다.

수확량이 지난해보다 늘었음에도 주요 수출항이 공격받으면서 해외로 곡물을 실어 나르는 데 어려움이 커진 결과다.

원자재 가격정보업체 패스트마켓츠에 따르면 일부 흑해 항로의 해상 운임은 지난 7월 중순 이후 두 배 이상 상승했다.

러시아 곡물수출업체들은 수송 차질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대체 경로를 활용하고 있다.

일부 선박은 아조프해에서 돈강을 거슬러 올라가 볼가-돈 운하를 통과한 뒤 카스피해로 이동해 이란에 곡물을 운송하고 있다.

또 다른 업체들은 기존 곡물 전용 하역시설이 없는 항만에서 철도 화차에 실린 곡물을 컨테이너로 옮겨 선박에 적재하는 방식까지 동원하고 있다.

그러나 대체 항로의 운송비와 처리능력은 기존 흑해 항로에 비해 불리한 상황이다.

아르카디 즐로쳅스키 러시아곡물연합 회장은 단순히 일정 물량을 다른 항로로 돌릴 수 있느냐가 핵심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아조프해·흑해를 통한 수출보다 물류비가 상당히 높아질 수밖에 없으며 결국 누군가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즐로쳅스키 회장은 “올해 말까지 발트해 터미널이 처리할 수 있는 추가 물량도 흑해와 아조프해에서 줄어든 수출량의 절반을 넘기 어렵다”고 추산했다.

북쪽 항구로 곡물 수송이 집중되면서 철도망에도 과부하가 발생하고 있다. 항만 터미널에는 곡물을 실은 화차들이 밀려들어 적체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우크라이나도 대체 항로 한계…운송비 t당 50달러 추가


러시아뿐 아니라 우크라이나도 흑해 수출항에 대한 공격으로 심각한 물류 문제를 겪고 있다.

타라스 비소츠키 우크라이나 농업부 장관에 따르면 다뉴브강 항로와 인접 유럽연합(EU) 국가를 통한 도로·철도 운송 등 대체 수출 경로의 처리능력은 평상시 농산물 수출량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대체 경로를 이용하면 곡물 t당 물류비가 최소 50달러(약 6만6800원) 추가로 발생한다.

이같은 비용 부담으로 일부 우크라이나 농업 생산자들은 수익을 남기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비소츠키 장관은 농민들이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영농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곡물을 판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내륙 창고에서 거래되는 옥수수 가격은 올해 수확 물량이 시장에 나오면서 최근 3주 동안 약 20% 하락했다.

러시아 농민들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과거에는 흑해 수출항과 가까운 러시아 남부 농민들이 높은 곡물 가격을 받을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수출 터미널에 접근하기 쉬운 중부와 볼가강 지역 농민들보다 낮은 가격을 받고 있다.

농업 컨설팅업체 소브에콘의 안드레이 시조프 대표는 러시아 국내 곡물 가격이 지난 8~9월 급격히 하락했다고 밝혔다.

이후 일부 회복됐지만 여전히 생산비보다 수십 퍼센트 낮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양국 농가 자금난 심화…내년 수확량에도 악영향 우려


곡물 가격 하락과 운송비 상승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농민들의 영농 자금 확보에도 부담을 주고 있다.

농민들이 가격 회복을 기대하며 수확한 곡물을 보관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시조프 대표는 농민들이 겨울철 파종 자금과 대출 상환금, 직원 임금 등을 마련해야 하므로 곡물을 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수출 차질로 판매가격이 떨어져도 운영자금 확보를 위해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다.

흑해 항로를 정상화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도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2022년 흑해 곡물 수출 협정 체결을 중재했던 튀르키예는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선박을 위한 별도의 안전 항로를 마련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러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를 “터무니없다”고 일축했다.

협상 상황을 아는 관계자들도 러시아가 해당 제안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국제 밀 가격은 지난 8월 말 3년 만에 최고 수준까지 상승했다가 이후 하락했다.

수입업체들이 다른 곡물 수출국에서 대체 공급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기대가 반영된 결과다.

그러나 해상 운임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즐로쳅스키 러시아곡물연합 회장은 정부의 일부 지원에도 추가 물류비가 결국 농민들에게 전가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수출업체들이 늘어난 운송비를 자체적으로 부담하지 않을 것이라며 농민들에게 남은 자금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겨울철 파종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지 못하는 농민들이 늘어날 경우 내년 곡물 생산에도 타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즐로쳅스키 회장은 이미 겨울철 파종 작업이 지난해보다 크게 지연되고 있다며 이같은 상황이 이어지면 내년 수확의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