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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경제논리에 설득당해 다양성 상실…중세 봉건시대와 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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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경제논리에 설득당해 다양성 상실…중세 봉건시대와 흡사

[글로벌 CEO에게 대학의 미래를 묻다(1회)] 주창언 (주)도시바 메디칼 시스템즈(Toshiba Medical Systems Corporation)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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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창언 (주)도시바 메디칼 시스템즈 대표
대학이 위기입니다. 대학은 다양성 교육을 통해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되어야 하지만 ‘기업 맞춤형 인재’ 양성을 요구하는 사회의 요구에 따라 직업훈련원이 되어 버렸습니다. 인공지능(AI), 자율주행자동차, 사물인터넷(IoT) 등 제4차 산업혁명 앞에 우리 대학은 교육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이에 글로벌 이코노믹은 진로전문가인 신현정 중부대학 교수와 함께 한국에 진출한 글로벌기업 CEO와 인터뷰를 통해 오늘날 대학 현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나아가 미래 대학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시리즈를 마련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편집자 주


-먼저 (주)도시바 메디칼 시스템즈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세계적인 의료기기 제조업체인 도시바 메디칼 시스템즈(본사: 일본 도치기현, 대표: 도시오 다키구치)는 100년 이상의 최첨단 의료 기술을 바탕으로 CT, MRI, X-ray, 초음파 장비를 생산•판매하는 글로벌 기업입니다. 전 세계 140개국에 계열사와 판매 에이전트가 다양한 솔루션과 최상의 고객 서비스로 세계 시장을 선도해 나가고 있습니다. 국내에는 2009년 한국 공식 독점 판매법인으로 개설된 후 2013년 4월 도시바 메디칼시스템즈 코리아㈜로 전환됨에 따라 ‘Made for Life’라는 기업 이념을 바탕으로 인간의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사명감을 가지고, ‘도시바 메디칼’의 기술과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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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창언 (주)도시바 메디칼 시스템즈 대표(왼쪽)과 신현정 중부대 교수
-대표님의 소개에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기업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 저는 대표님과 ‘대학의 미래’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저의 뇌리에 새겨진 고전적인 대학의 이미지는 역시 ‘지식의 상아탑’인데요.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시절의 대학은 젊음과 자유의 표상이었고 시대정신을 이끌어가는 지성의 장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21세기를 맞이하면서 대학이 과거와는 사뭇 다른 색채로 물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저만의 생각일까요?

“저도 공감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과거의 대학은 위대한 사상의 출발점이었고 가치 논쟁의 장이었으며 사회발전의 원동력이었지요. 그런데 오늘날의 대학을 보고 있으면 중세의 암흑시대를 연상하게 됩니다. 서양의 중세는 ‘신’이라는 절대적 가치에 여타의 모든 가치가 매몰됨으로써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거세당한 시기였지요. 해방 이후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받아들였지만 실제로는 안보지상주의라는 절대 가치의 시대를 거쳐 이제는 경제지상주의라는 절대 가치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 상황에 우리의 대학 역시 ‘사회맞춤형 인재 양성’이라는 거대한 경제논리에 완전히 설득당해 버린 것 같습니다. 그들이 본래 가지고 있던 독자적인 철학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자본가를 배부르게 하는 기업의 논리에 대학이 맥없이 굴복하고 있는 듯 보이니까요. 교육의 다양성을 용납하지 않고 기업이 원하는 인간 육성이라는 독재성만을 대학에 강요하는 이 시대는 어쩌면 중세 봉건시대의 암흑기와 흡사합니다. ‘사회맞춤형 인간’이란 개념은 기업이 사용할 부품으로서의 인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대표적인 천민자본주의의 발로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대학 변화의 밑바탕에는 ‘기업형 대학의 육성’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재정 지원이라는 당근과 대학 평가라는 채찍으로 대학의 자율을 구속하고 있는 교과부의 정책도 한몫하고 있겠지요. 저는 학문 연구, 특히 인문학에 대한 뜨거운 갈망과 독자적인 철학이 없는 대학은 엄밀한 의미에서 대학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직업훈련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가진 일개 OJT 기관에 불과할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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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창언 (주)도시바 메디칼 시스템즈 대표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의 대학이 어떤 형태로 변화되어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첫째는 대학교육의 다양성 확보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각 대학이 스스로 자신들의 주체적 가치를 설정하고 그것의 실현을 위해 매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학의 재정자립화가 시급합니다. 왜냐하면 지금처럼 재정적인 측면에서 국가의존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대학의 자립능력은 점점 쇠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학의 자립을 위해서는 우선 정부출연을 줄이고 재단출연을 늘려야 합니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기업투자나 기업기부 문화를 활성화시켜야 합니다. 예를 들면 중부대학교 충청캠퍼스는 인삼으로 유명한 금산에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금산군과 중부대학교는 인삼 산업을 통해 막대한 이윤을 창출하고 있는 KT&G 같은 기업의 기술투자나 재정적 기부를 보다 적극적으로 유치해야 합니다. 이제 기업과 지역 그리고 대학의 상생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사회적 책무가 되었으니까요.

둘째는 4차 산업혁명시대를 선도하는 변화관리 능력을 육성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이사장과 총장의 역할이 명확히 구분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치 기업의 주주와 CEO의 역할이 분명히 구분되듯 말이지요. 서로의 선택에 책임을 지고 서로의 전문성을 존중하고 인정하면서 자신들에게 맡겨진 직분이 대학 발전이라는 수레를 끌기 위한 두 개의 바퀴임을 정확히 인식할 때 대학은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를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가끔 언론 보도를 통해 이사장과 총장, 혹은 총장과 교수들의 불협화음으로 대학 발전은 꿈도 꾸지 못한 채, 학내 분쟁에 휩싸여 있는 대학 이야기를 접할 때면 기본적인 역할 분담조차 하지 못하는 곳에 어떻게 우리 아이들을 맡길 수 있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해집니다.

마지막으로 셋째는 교육기술의 선진화가 필요합니다. 이제 더 이상 기존의 지식을 전달하는 교수 주도형 수업은 만족스러운 성과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교실의 주도권을 학생들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우리 학생들은 이미 기업이 만든 제품을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시대가 아니라 스스로 사용하고 싶은 제품을 기업이 제조하게 하는 시대를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대학은 지식을 전달하는 기존의 역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즉, 대학교육은 수많은 지식 중에 자신에게 가장 가치 있는 지식을 비판적으로 확인•선별할 수 있는 능력과 더불어 가치 있는 지식들을 목표에 따라 재편집할 수 있는 능력 배양을 지향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표를 주고 학생 스스로 방법을 찾게 하는 수업이 보편화되어야겠지요. 예를 들면 캡스톤 디자인 같은 수업을 적극 활용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그 캡스톤 디자인의 목표 설정 자체도 학생 스스로에게 일임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육기술의 선진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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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창언 (주)도시바 메디칼 시스템즈 대표

-인터뷰를 하다 보니 대표님은 정말 대학에 실제 근무하는 분보다 대학교육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대표님의 말씀을 종합해 볼 때, 이제 대학은로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재정립해야 할 시기를 맞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대학을 향해 꼭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제4차 산업혁명 같은 대변혁의 시기일수록 더욱 중요한 것은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학의 본분은 누가 뭐라고 해도 잘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무엇을 어떻게 잘 가르칠 것이냐에 대한 깊은 고민과 집중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모쪼록 대학이 다양성의 가치를 재인식함으로써 사회적 요구를 무조건적으로 추종하기보다는 새로운 사회적 요구를 창출하는 교육을 해 나가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될 때 대학은 우리 사회를 좀 더 새롭고 밝은 미래로 이끌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교직에 몸담고 있는 저를 비롯해 많은 교육 관계자분들께 반성과 영감을 주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대학교육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조언 부탁드리겠습니다.
대담 및 정리=신현정 중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