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드라이 파우더'에 대출 기준 완화 우려…현금 이자 대신 빚 쌓는 PIK 대출도 '뇌관'
'2008년과 다르다' 반론에도…전문가들 '새로운 유형의 위기' 가능성 경고
'2008년과 다르다' 반론에도…전문가들 '새로운 유형의 위기' 가능성 경고

피치북 자료에 따르면 민간 부채 시장에 쌓인 미소진 자금, 이른바 '드라이 파우더'는 5668억 달러(약 775조 원)로 사상 최고 수준이다. 자금을 운용해야 수수료 수익이 발생하는 자금운용역들은 경쟁하듯 대출을 집행할 유인이 크며, 이 과정에서 대출 심사 기준이 완화될 수 있다. 모닝스타의 시한 아베이구나 동남아시아 담당 상무이사는 "더 많은 돈을 빌려주기 위해 대출 기준을 낮추면 채무 불이행의 위험이 높아진다"며 "이것이 현실이 되면 금융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JP모건 역시 비슷한 우려를 나타냈다. JP모건의 세린 첸 아시아태평양 신용·통화·신흥시장 영업 책임자는 "어떤 자산이든 너무 많은 돈이 몰리면 대출 심사 기준이 완화하고 약정은 덜 엄격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현금 이자 대신 원금을 늘려 빚으로 이자를 갚는 '현물상환(PIK)' 대출의 증가를 위험 신호로 꼽는다. 당장의 현금 부담은 없지만, 앞으로 상환해야 할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구조로, '숨겨진 부실'이 한꺼번에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핌코의 데이비드 포개시 자산운용 책임자는 "경기 침체가 닥치면 부채가 많은 기업은 큰 타격을 받는다"며 "민간 신용은 '떨어질 여러 신발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위험은 금융 기관 사이의 상호연결성을 통해 시스템 전반으로 퍼져나갈 수 있다. 무디스 애널리틱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민간 신용 펀드와 다른 금융 기관 사이의 연결성 증가는 평상시에는 위험 분산 효과가 있지만, 위기 때에는 '충격 증폭기'로 작용해 금융 불안정을 키운다"고 분석했다. 또한 "시장의 불투명성 때문에 투자자 환매 요구가 급증하면, 유동성 위기가 대규모 자산 투매로 번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물론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일각에서는 2008년 세계 금융 위기(GFC)와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유니온 방케르 프리베의 마이클 오스트로 아시아 민간 시장 책임자는 "은행의 민간 신용 직접 노출은 기업개발회사(BDC) 대출 등으로 제한되며, 대부분의 대출은 50~60% 수준의 견고한 자기자본 완충 장치를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대출을 받은 기업 가치가 50% 넘게 폭락해야 은행이 손실을 보기 시작한다는 뜻"이라고 그는 말했다. 베인 앤드 컴퍼니의 수비르 바르마 자문 파트너는 "세계 금융 위기의 교훈으로 현재 대출 심사는 훨씬 엄격해졌으며, 과거 부실채권을 잘게 쪼개 유통하던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과 달리, 민간 신용 자금운용역들은 위험을 직접 보유하는 경향이 있다"고 강조했다.
◇ '사상누각' 아니지만…'새로운 유형의 위험' 경고
그러나 옥스퍼드 대학교 사이드 경영대학원의 루도빅 팔리푸 금융경제학 교수는 민간 신용이 전통의 뱅크런 대상이 아니기에 안전하다는 시각은 "다소 순진하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현재 금융 생태계가 2008년 이전보다 더 취약하지는 않다고 보면서도, "투자자 채무 불이행, 마진 콜, 자산 재평가 등 새로운 유형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팔리푸 교수는 현재의 처지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이것이 사상누각은 아니지만, 그런 냄새는 풍긴다. 그리고 분명히 많은 메자닌 층과 매우 비싼 엘리베이터가 있는 집이다."
앞으로 경기 침체 같은 외부 충격이 발생하면, 사모 대출 시장이 금융 시스템의 '약한 고리'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