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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경제 국가로 도약 위해 넘어야 할 장벽 아직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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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경제 국가로 도약 위해 넘어야 할 장벽 아직 높다

[이승우와 함께하는 변화혁신(22)] ‘오너 리스크’로부터 배우는 교훈

노사갈등 산업구조 극복하고 건강한 자본주의 구축해야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시대에 맞는 시스템 필요
2015년 가을 국정감사의 계절이 돌아왔다. 국정감사란 국회가 입법 기능 이외에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정 전반에 관해 조사하는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다. 행정부의 국정 운영과 예산집행 등에 대해 국회 상임위별로 감사활동을 통해 정부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한다. 해마다 이때가 되면 으레 정부 각 부처와 산하기관의 직원들은 밤잠을 잊을 정도로 국정감사 대비에 바빠진다. 지난 1년간의 행정활동에 대한 준엄한 평가에 직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행정부 관료가 아닌 기업인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시키는 문제를 두고 국회의원들 간에 고성이 오가는 볼썽사나운 일이 발생했다. 얼마 전 ‘형제의 난(亂)’으로 불리며 경영권 분쟁을 벌인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의 증인출석 문제가 원인이었다. 그룹 내부의 경영권 분쟁 이후 신동빈 회장이 직접 대국민 사과를 통해 지배구조개선과 투명경영을 약속했다. 그러나 그룹 차원의 자율적인 노력에는 한계가 있고 재벌그룹의 경영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이 실제로 국정감사 현장에 출석하게 될지는 지켜볼 일이지만 재계서열 5위권의 롯데그룹 차원에서는 이미 대내외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 것이 사실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의 자료를 보면 롯데그룹은 지난 10년간 5대 대기업집단 중 불공정거래 행위로 적발된 건수가 가장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어느 사회단체에서는 기업의 수익 규모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사회공헌 활동을 해온 기업으로 롯데그룹을 꼽기도 했다. 한마디로 총체적인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된 것이다. 물론 다른 대기업이라고 해서 그러한 사회적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많은 대기업 총수들과 그 자녀들의 비상식적 경영행태가 있어왔고 이러한 뉴스를 접할 때마다 국민의 마음에 더해지는 상처는 깊어졌다. 기업에 대한 싸늘한 시선이 모아지고 불매운동이 일어나기도 한다. 대내외적으로 혼란과 불신이 이어지면서 기업의 주식가치가 떨어지는 일도 다반사였다.

말 그대로 ‘오너 리스크(Owner Risk)’다. 재벌그룹의 회장이나 대주주 개인 등 오너의 잘못된 판단이나 불법행위로 인해 기업 전체가 위험에 빠지게 된다는 뜻이다. 지난 산업화시대를 이끌어왔던 오너와 직계가족 중심의 기업지배구조가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채로 산업현장과 국가경제에 부작용을 유발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올해 9월을 기준으로 국내 30대 그룹의 자산 승계율이 40%를 넘어섰고 삼성그룹은 최고인 53.6%에 이른다고 한다. 자산 승계율이란 그룹 총수와 배우자, 직계 자녀의 보유 자산 중 자녀가 소유한 자산 비율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미 기업자산의 상당부분이 직계 자녀들에게 승계되었음을 뜻한다.

이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기업경영의 보편적 원리와도 동떨어져 있다.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인 주식회사(株式會社)의 속성을 보면 자본은 주식의 형태로 구성원들의 출자에 의해서 형성되고 주식보유의 비율에 따라 중요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권한을 갖는다. 또한 경영과 소유를 분리함으로써 경영의 전문성을 높이고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확보하며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한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시장을 무대로 나아가는 글로벌 기업이라고 자평하는 우리 한국의 대기업들에는 이런 원리가 통하지 않고 있다. 기업 오너가 독점하는 의사결정의 판단 착오 또는 가족 간 경영승계에서 일어나는 갈등으로 인한 위험(Risk)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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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러한 상황은 국내보다 글로벌 시장에서 더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기업운영 과정에서 대외적인 신뢰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건에서 최근 롯데그룹 사태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이슈가 된 대기업 일가의 일탈을 보며 지난 2006년 가을에 있었던 뉴욕 월스트리트에서의 경험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당시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되어 있던 국내 회사의 직원으로서 미국을 방문했을 때 국내 주식을 주식예탁증서(Depositary Receipts)로 국제시장에서 거래하던 J.P.모건 체이스 뱅크(J.P.Morgan Chase Bank)의 아시아-태평양 담당 매니저들과 회의를 했다. 우리가 고객사의 입장에서 방문한 자리였기에 나름대로 우호적인 대접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들은 PC 모니터를 앞에 놓고 보여주며 이전의 5년 동안 한국의 종합주가지수(KOSPI)가 성장해온 그래프를 설명했다. 이미 뉴욕의 증권거래소에서 거래되고 있는 몇몇 한국기업의 주가흐름에 대한 설명도 곁들이며 앞으로도 추가적인 성장세가 기대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멀리서 찾아온 고객사의 손님에게 긍정적인 견해를 들려주는 것은 비즈니스 세계에서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설명을 듣던 중간에 내가 물었다. 실제로 세계경제의 중심 월스트리트에서 한국경제와 한국기업의 미래전망에 대해 우려하는 점은 무엇인지를 직설적으로 물었다. 보통은 한국에서 온 방문단이 좋은 이야기만 듣고 가는데 문제점을 지적해달라고 하는 나의 질문에 그는 잠시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왔던 두 가지 지적은 안타깝게도 1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오늘날의 한국 상황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첫째는 기업과 근로자 간에 평행선을 긋고 있는 노사간의 갈등으로 인해 경제성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산업구조였고, 둘째는 수십 개의 계열사를 문어발식으로 거느린 그룹총수의 독단적 의사결정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성이었다.

세계경제의 흐름을 좌우하는 미국의 금융시장에서 바라본 한국 경제는 여전히 취약한 구조에 놓여있었고 이는 기업을 냉정하게 평가하는 투자가들에게 신뢰성의 문제를 야기했다. 결국 우리가 외면하고 있던 현실을 그들은 속속들이 관찰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해외자본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우리 기업이 선진국보다 비싼 이자를 부담하는 상황이라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갔다. 이제는 좀 먹고 살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생각한 것이 우리들의 섣부른 판단이었음도 새삼 깨달았다. 앞으로 우리가 원하는 선진경제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넘어야 할 장벽이 크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승우 변화혁신연구소장(숭실대학교 겸임교수)
이승우 변화혁신연구소장(숭실대학교 겸임교수)
우리가 겪었던 어려운 시기에 도전과 열정, 그리고 혼신의 힘을 다해 맨손으로 산업기반을 일군 기업인들의 공로는 진심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전쟁 이후의 피폐함에서 오늘날의 대한민국 경제성장을 이뤄내기까지 기업인들의 기여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시대에 과거 봉건시대의 영주(領主)처럼 자신의 성(城)을 지키기에만 급급한 채로 지속가능한 경영을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우리가 지향하는 건강한 자본주의가 아니다. 한사람이 쓰러지면 모두가 함께 무너지는 세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기업가 정신은 거창한 그 무엇이 아니다. 그저 기업총수로부터 유발되는 ‘오너 리스크’로 인해 그를 따르는 기업의 임직원들, 그리고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더 이상 불안과 스트레스에 빠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이승우 변화혁신연구소장(숭실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