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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경계관리활동'은 전략적 강약 조절이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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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경계관리활동'은 전략적 강약 조절이 핵심

[우형록 교수의 변화를 넘어 미래로(9)] 구축된 경계는 지속적으로 잇고 관리하라

타인과 다른 나를 규정할 땐
최소한 '나'의 경계 설정해야
국가•조직에도 개인처럼 존재
'경계'는 정체성 구성하는 기초
조직에서는 강화와 완화 통해
최적화 활동 지속적으로 해야

사람들은 스스로 경계에 있다고 주장하는 경향이 강하다. 보릿고개를 겪어 본 해방둥이라느니 본고사나 학력고사를 치른 마지막 세대, 교복자유화의 첫 세대 등은 우리 현대사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경계이다. 이렇게 경계인임을 자처하는 데는 본인이 경험했던 고충을 타인은 이해할 수 없다는 차별점을 만들고 자신의 특수성을 부각시키려는 숨은 의도가 있으리라. 이런 관점에서 개인 수준에서 인식하는 경계도 일상에서 다분히 발견할 수 있다. 할머니들은 시집살이한 마지막 세대인데 이제 와 자식들 눈치도 봐야 한다고 푸념한다. 아빠는 엄마와 아이들의 경계에 있다지만 엄마 역시 아빠와 아이들 사이에 있다. 과장은 팀장과 사원들의 중간에서 힘들다고 한다.

우선 경계인이 되려면 경계를 설정해야 한다. 경계(boundary)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이 어떠한 기준에 의하여 분간되는 한계’이다. 타인과 다른 ‘나’를 규정하려면 최소한 ‘나’의 경계를 설정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경계는 개인의 인식뿐만 아니라 조직과 국가 등에도 존재한다. 우리 팀원인지 아닌지, 우리 국민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한계가 경계이다.

조직 내에서 경계인을 자처하는 사람이 많고 그들이 제시하는 경계는 다양하다. 언스트와 크로봇-메이슨(Christ Ernst & Donna Chrobot-Mason)은 전 세계 2800명에게 실시한 설문조사와 128명의 경영진과의 심층인터뷰를 종합하여 조직의 경계를 5가지로 정리했다. 먼저 조직에서 가장 빈번하게 언급되는 것은 수직적 경계와 수평적 경계이다. 수직적 경계는 직급과 계층 간에 나타나며 수평적 경계는 팀이나 기능 간에 발생하는 경계이다. 정보와 감정을 전달하는 상의하달 및 하의상달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다면 수직적 경계가 비효율적이라는 신호이다. 수평적 경계의 부정적인 문제는 사일로 효과(5월 18일자 참조)로 잘 알려져 있다.

세 번째 경계는 성별, 나이, 학벌, 교육수준 등의 기준으로 조직구성원들을 분별하면서 발생하는 인구통계학적 경계이다. 하지만 인구통계학적 경계를 초월하여 상이하고 특이한 지식과 경험을 보유한 인재가 조직혁신의 밑거름으로 인식되면서 이러한 경계는 조직 다양성 확보 차원에서 파괴되고 있다. 넷째, 이해관계자 경계는 조직 외부와의 관계에서 나타난다. 작금의 기업은 주주, 고객, 협력업체, 시민단체 등의 조직 외부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를 등한시할 수 없기에 주목해야 할 경계이다. 마지막으로 지리적 경계이다. 정보통신기술이 발전하면서 시공간의 격차가 적잖이 축소되었지만 제도 및 문화적 거리는 여전히 잔존한다. 본부와 현장, 수도권 본사와 지방의 공장, 현지 법인에서 지리적 경계를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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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경계는 정체성을 구성하는 기초로 어디든 존재한다. 반대로 경계가 무너지면 정체성도 사라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쉬운 예로 성별의 경계가 없다면 성정체성도 모호해진다. 정체성과의 관계 때문에 경계는 넘을 수 없거나 넘어서는 안 되는 ‘벽’의 이미지로 지나치게 각인되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실제로 경계는 견고한 벽이라기보다 그 수위가 끊임없이 조절된다. 절대적인 정체성 개념인 성(性)마저도 수중 생태계에서는 파괴된다. 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물고기가 400여 종에 이른다. 영화 ‘니모를 찾아서’의 주인공으로 유명해진 흰동가리(clownfish)는 수컷이 암컷으로 성전환하며 앵무고기(parrotfish)는 암컷이 수컷으로 탈바꿈한다. 번식을 주도하던 무리의 우두머리인 암컷이나 수컷이 죽더라도 차상위자가 성전환을 통해 그 자리를 재빠르게 대체하는 것이다.

학자들은 어류의 성전환 행위를 무리의 안정과 균형을 회복하려는 사회적 행위라고 해석한다. 성의 경계를 파괴하여 정체성을 변혁함으로써 무리 및 종족을 보전한다는 보다 큰 사회적 목적에 부응한 행위라는 의미이다. 인간의 사회적 행위도 관찰해 보면 이웃의 집과 마당으로부터 구별짓고자 우리 집에 벽과 울타리를 쳐 경계를 표시한다. 하지만 곧 경계를 오가기 위해 창문이나 대문을 만들어 경계를 완화하며 완화된 경계를 다시 강화하려고 커튼이나 빗장을 설치한다. 이와 같이 경계는 정체성을 고수하는 고정된 장벽이 아니다. 특히 조직에서는 강화와 완화를 최적화하는 지속적인 경계관리(boundary spanning management)를 통해 조절되어야 할 대상이다.

경계관리의 구체적인 세부 활동은 앤코나와 카드웰(Deborah G. Ancona & David F. Caldwell)이 최초로 제안했다. 첫째, 외교사절활동(ambassador activities)은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조직을 보호하고 대외적으로 조직에 필요한 자원과 협조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조직의 위상과 본질을 외부에 적극적으로 홍보하여 지명도를 높이고 평판을 관리하려는 정치적 행위가 여기에 해당된다. 둘째, 조정활동(task coordinator activities)은 외부와의 업무 문제를 조율하고 피드백을 수용하여 반영하는 것이다. 셋째, 정찰활동(scouting activities)은 기술, 경쟁사, 시장에 대한 정보와 아이디어를 탐색하고 수집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조직 내의 정보가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살피고 지키는 경비활동(guarding activities)이 있다.

경계관리활동을 기업의 팀 수준에서 상상해 보자. 팀원들이 외부에 나가 ‘외교사절’로서 팀의 업무와 역할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팀은 뭘 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하한다. 팀장마저 ‘외교사절’로서 임원 앞에서 팀의 과업을 어필해서 필요한 자원을 요청하는 데 미온적이다. 외부에서 팀의 성과와 역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관심이 없고,새로운 지식과 정보보다 지금 하는 방식을 고수하려고 한다. 이 정도라면 이 팀은 구성원들이 방향성을 잃고 응집력은 땅에 떨어질 것이다. 본연의 업무를 아무리 잘 하더라도-그럴 확률도 낮지만-소용이 없다.
앤코나와 카드웰은 효과적인 경계관리는 외부와의 회의나 교류의 횟수가 아니라 4가지 경계관리활동을 전략적으로 강약을 조절하여 구사하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 국내 기업들의 '경계관리활동' 3가지 유형

최고경영진이 선언한 미션 충실하게 실행


국내 기업들의 경계관리활동을 분석해보면 3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먼저 통•번역형은 기존의 역할과 책임, 최고경영진이 개념적으로 선언한 미션을 충실히 구체화하고 실행하는 데 열중하는 기업이다. 주어진 미션과 역할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수동적 측면이 강하고 팀 활동에 필요한 정보와 지시는 주로 상의하달 방식으로 전달된다. 경계관리는 내부감사의 관점에서 조직 내 문제를 발굴하고 출처를 밝혀 해결하는 데 집중된다. 문제 출처로 지목된 팀의 설득을 받아내고 이후 개선 여부를 모니터링하는 방식을 주로 구사한다. 따라서 조직의 경계는 경직되어 각 팀들의 기존 역할과 임무에 그대로 안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즉, 기존의 경계구조는 유지하면서 문제를 발굴•개선하는 데 몰입하다 보니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과잉보호하는 경비활동에 집착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두 번째, 협상형은 조직 내 각 팀의 고유한 문제보다는 팀 간의 협력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집중하는 기업이다. 통•번역형이 특정 팀의 문제를 발굴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협상형은 팀 간에 숨겨진 문제를 도출하고 공평한 쌍방타협(give-and-take)을 제시함으로써 원활한 협력을 유도한다. 팀 간의 갈등과 장벽을 해소함으로써 통•번역형보다 경계를 더욱 느슨하게 운영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통•번역형이 부분 최적화에 몰두한다면 협상형은 전체 최적화에서 변화의 가치를 도모한다.

마지막으로 앙트러프러너십형은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여 혁신적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이다. 다른 유형에 비해 부정적인 의미의 이슈나 문제에 집중하기보다 혁신과 기회를 도모한다는 차이가 있다. 다양한 팀의 특•장점을 조합하여 혁신의 기회를 발굴하고자 기존의 경계를 파괴하기도 한다. 기존 조직의 경계를 재구축해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포착하여 사내 벤처 조직이라는 새로운 경계를 탄생시키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특히 외교사절 활동, 조정 활동을 활성화하여 정규적 모임뿐만 아니라 비공식모임으로부터 정보와 니즈를 적극적으로 파악한다. 이를 토대로 우호적인 정보교류와 소통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데 집중한다.

최근 무경계(boundaryless)가 역설되고 있지만 경계관리의 방식과 수위에 정답은 없다. 업의 특성과 문화적 역량에 따라 구사할 수 있는 경계관리활동의 전략이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협상형과 앙트러프러너십형이 성과가 높다고 알려져 있지만 자칫 느슨한 경계는 정체성의 부재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성공적인 조직변화를 바란다면 기정의 경계뿐만 아니라 조직구성원들이 인식하고 있는 경계의 유형과 수준을 면밀하게 분석하여 적확한 경계관리전략을 이행해야 한다.
우형록 한양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