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개방형 시스템은 출발이 달라도 동일한 결과 획득"

공유
1

"개방형 시스템은 출발이 달라도 동일한 결과 획득"

[우형록 교수의 변화를 넘어 미래로(14)] 과정보다 결과를 통제하고 결과보다 과정을 격려하라

인간의 합리성은 제약 따라
유일한 최선의 방법은 없어
일정한 수준의 대안에 불과
업무 결과가 똑같다고 해도
여러 가지 원인과 과정 존재
제한된 합리성 존재 인정해야


어지간히 아파서 마지못해 가게 되는 병원인데 세분화된 진료 분과를 잘 아는 사람은 흔치 않다. 가족 중에 누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하면 내과를 가야 할지 외과를 가야 할지 당혹스럽다. 인터넷에 검색해봐도 충수염 수술을 어디서 하는지 묻는 질문에 배 속이 아픈 것이니 내과를 가야 한다는 조언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내과와 외과를 구분하는 기준은 질환의 위치가 아니라 의사들의 치료 방법이다. 외과는 환자의 몸에 칼을 대어 수술을 주로 하고 내과는 수술보다는 약물치료를 주로 처방하는 곳이다. 그래서 충수염 증상으로 소화기내과를 찾아 진단은 받을 수 있지만 충수를 떼어내는 수술은 소화기외과에서만 가능하다.

특정 직업에 대한 다소 전문적일 수도 있는 이러한 정보를 요즘 중학생 정도면 더욱 자세히 꿰뚫고 있어야 한다. 대학 진학을 위한 소위 ‘스토리’를 만들기 위함이다. 그런데 발전적인 진로 탐색의 본보기로 권고되는 모델이 지나치게 기계적인 경향이 강하다. 초등학교 때 장래 희망 직업을 의사로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입하고 나면 중학교에서는 외과인지 내과인지 선정해야 한다. 중학교를 졸업할 즈음에는 내과에서도 순환기내과, 호흡기내과, 소화기내과 등을 선택해야 한다. 이렇게 직업의 전문성이 순차적으로 구체화되는 진로탐색 스토리가 대학 입학 사정에서 유리하다고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모양이다. 반대로 피아니스트가 될까 고민했다가 의사가 되겠다고 학교생활기록부에 족적을 남긴 학생은 왜 그렇게 변경했는지에 타당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면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제1회 군포시청소년진로박람회가 열린 9월 7일 경기 군포시민체육광장에 마련된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부스에서 학생들이 자동차 엔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제1회 군포시청소년진로박람회가 열린 9월 7일 경기 군포시민체육광장에 마련된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부스에서 학생들이 자동차 엔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뉴시스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장래의 진로를 점진적으로 구체화해 나간다는 측면에서는 논리적이고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의사, 내과의사, 소화기내과로 이어지는 단선적 발전을 높게 평가하는 이면에는 기계론적 세계관이 자리 잡고 있다. 청소년의 진로탐색 활동에서 주저함이나 시행착오는 불필요한 요소이다. 기계론은 뉴턴의 역학에 기반하여 모든 현상을 물리적인 운동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19세기 과학의 눈부신 발전은 물체의 위치와 운동량을 파악하면 그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전 세계적으로 확산시켰다. 극적인 실례로 해왕성의 발견을 들 수 있다. 행성 간의 역학관계를 계산해 보니 이상하게 천왕성의 운동궤도가 들어맞지 않았다. 천왕성 밖에 또 다른 행성을 설정해야 천왕성의 궤도가 잘 설명되었다. 즉, 수학적으로 먼저 행성의 존재를 예측하고 관측으로 확인한 결과 그 자리에 짐짓 해왕성이 있었다.

이 정도면 자신감이 아니라 오만이 발동할 만하다. 지식인들이 너도나도 세상의 모든 인과관계를 단선적으로 파헤칠 수 있다는 시류에 합류했다. 철학자 데카르트(Rene Descartes)는 우주는 정밀한 시계와 같고 인간은 정밀한 기계장치에 비유했다.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인 라프라스(Pierre-Simon Laplace)는 과거와 현재를 모두 설명할 뿐만 아니라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초월적 존재가 가능하다고 피력했다. 그런 존재를 ‘라플라스의 악마(Laplace’s demon)’라고 부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라플라스의 악마’의 출현은 현재로서는 요원해 보인다. 불확정성의 원리(uncertainty principle)에 의해 물체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 물리학에서 증명되었다. 1950년대에 이르러 사회과학에서도 인간이 모든 정보를 인지하고 최적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한계가 존재한다는 주장이 수용되었다. 인간의 합리적 판단을 기본 전제로 삼았던 전통경제학을 부정하며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을 주창했던 사이몬(Herbert A. Simon)은 노벨경제학상을 받기도 했다. 인지능력의 한계, 한정된 시간, 부정확하고 미흡한 정보 때문에 인간의 합리성에는 궁극적으로 제약이 따른다. 따라서 유일한 최선의 방법(the one best way)에 도달하기란 불가능하며 우리가 내리는 결정은 일정 수준에서 만족화(satisficing)가 이루어진 대안에 지나지 않는다(satisficing은 ‘만족하다(satisfy)’와 ‘충분하다(suffice)’의 합성어).

제한된 합리성을 지지하는 용어로 시스템 이론에 이인동과성(異因同果性;equifinality)을 들 수 있다. ‘모로 가나 기어가나 서울만 가면 그만이다’라는 속담을 연상시키는 개념이다. 시스템 이론은 주로 조직을 유기체와 같은 개방형 시스템으로 간주하는데 동일한 결과에 여러 가지 원인과 과정이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건강하려면 먹고 자는 것이 풍요로워야 하고 적절한 운동, 면역력이 강한 유전형질도 필요하다. 그중에 한 가지를 확보했다고 건강해지지 않는다. 즉, 개방형 시스템은 출발점, 자원, 방법이 다르더라도 특정 결과를 동일하게 얻을 수 있다. 또한 이인동과성은 결과를 성취하는 최선의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내포한다.

● 사이몬스의 네 가지 통제 지렛대


과정·결과 인과관계 분석 따라 조직 관리방식 달라져

성과 및 결과를 예측하고 과정과 결과를 이어주는 인과관계를 분석할 수 있는 수준에 따라 조직의 유연성, 관리방식이 달라진다. 사이몬스(Robert Simons)는 사업전략이 실현되는 관리체계를 네 가지 통제 지렛대(levers of control)로 분류했다. 우리는 ‘통제’라고 하면 흔히 진단통제(diagnostic control)로 이해한다. 진단통제는 목표와 실적을 비교, 평가함으로써 목표 달성에 매진하도록 견인한다. 효과적인 진단통제는 조직의 성과지표 및 평가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함으로써 조직구성원들의 행동을 일체화시킨다.

둘째, 신념통제(belief control)는 조직이 바라는 가치와 방향을 제시하여 조직구성원의 몰입을 증진시키는 방법이다. 비전, 미션, 핵심가치, 사훈 등 구체적이고 인위적인 상징물을 활용하여 조직의 핵심가치를 전달한다. 상대적으로 비교하자면 신념통제는 목적(goal)을 강조하고 진단통제는 목표(target)에 주안점을 둔다. 목적은 업 또는 업무의 본질, 존재 이유이고 목표는 납기와 품질수준이 명시된 성과지표이다.

이미지 확대보기
신념통제와 진단통제가 ‘해야 할 일’에 중점을 둔다면 경계통제(boundary control)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강조한다. 얼핏 부정적인 방식으로 보이지만 폐기학습(8월24일자 참조)의 대상과 회피해야 할 위험을 미리 공표함으로써 필요 이상의 개입과 간섭을 최소화한다는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 최소한의 구속을 부가함으로써 오히려 조직구성원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고취시킬 수 있다. 그래서 경계통제는 최소한의 필수제약(cold constraints)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상호작용통제(interactive control)는 조직구성원과 관리자가 의사결정에 함께 참여하여 수평적으로 소통하는 과정에서 불확실성을 낮춰가는 방식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몰입을 이끌어낼 수만 있다면 조직 관행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환경의 위협과 위험을 조기에 파악함으로써 불확실성에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다. 결과 및 성과를 예단하여 방어 또는 추구하는 경계통제나 진단통제와 달리 소통의 과정에서 성과를 만들어 가는 데 역점을 둔다.

당연히 어느 통제 방법이 가장 우수하다는 정답은 없다. 업무와 조직구성원의 특성에 따라 달라진다. 이를 주장했던 사이몬스 또한 네 가지 통제에 균형을 맞춰야 조직의 창의와 혁신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조직의 경영진과 관리자는 본인이 주로 사용하는 지렛대와 균형을 위해 강화할 지렛대를 반추해 볼 필요가 있다.

네 가지 중에 진단통제를 단순하거나 부정적인 관리행태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목표 대비 실적으로 스트레스를 조장하는 결과 통제를 흔히 연상하기 때문이다. 특히 아동교육에서 주장하는 결과보다 과정에 칭찬하라는 충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도 있다. 과정은 격려하고 결과는 진단통제로써 관리해야 한다. 진단통제에는 결과인 성과지표와 목표만을 관리하고 과정은 조직구성원에게 위임한다는 의미가 있다. 바람직한 성과지표와 목표에 대해 조직구성원과 정의 또는 합의하고 나면 성취하는 과정은 조직구성원의 자율에 맡겨 스스로의 방법으로 추진하도록 유도하는 탁월한 방법이다. 즉 우리는 진단통제로서 과정상의 창발적인 변이로부터 성과를 창출한다는 부수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실제로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심각한 문제는 과정의 곳곳에 개입하여 진단통제를 구사하는 행위이다. 이는 과정을 관리하지 않고 통제한다는 뜻이다. 결과를 통제하듯이 미주알고주알 과정 상의 진척 사항을 따지고 임무를 지시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사이몬스는 모든 지렛대에서 제한된 합리성과 이인동과성을 반영하여 과정에 유일한 최선의 방법을 강요하지 않는다. 과정에 집중하는 상호작용통제마저도 수평적 참여, 소통, 몰입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찾고 학습을 모색하는 개방성이 지향점이다.

청소년들이 진로를 탐색하는 과정도 같은 맥락에서 재고될 필요가 있다. 세상이 필요로 하는 인재로 성장하는 경로는 단선적이지 않고 다양하고 우발적이다. 혹여 의사, 내과의사, 소화기내과로 이어지는 경로가 현재 성공적일지라도 미래에도 그대로 최선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사회에 기여할 훌륭한 의사로 이어지는 다양한 잠재적 경로를 기계론적 세계관으로 재단하는 일은 부적절하다. 복잡다단한 인과관계를 제한된 합리성과 주관성으로 설정해 놓고 강제하는 행위는 ‘라플라스의 악마’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우형록 한양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