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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젊은 소리꾼 정유정의 세 번째 공연…붉은 닭의 기운으로 채운 재간꾼의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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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젊은 소리꾼 정유정의 세 번째 공연…붉은 닭의 기운으로 채운 재간꾼의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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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의 '산조춤'
‘울산 예인들’(대표 오수령) 주최로 지난 12일 오후 7시 울산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정유정(이화여대 한국음악과 1학년)의 세 번째 공연이 열렸다. 이원(梨園)에서 수학, 한 해를 보내고 고향에서 올리는 유정의 소리는 암전에서 시작됐다. 12잡가 소리기행 중인 유정은 춘향가 중 ‘십장가’를 청성(淸聲)으로 풀어내며 희망과 꿈을 불러왔다. 소리처럼 맑고 밝은 세상을 꿈꾸는 청년예술가 유정의 소리에 대한 경건과 엄숙한 알림은 현대 감각을 소지했다.

‘선유가’도 앉은 자세에서 장고의 반주에 맞추어 부른 유정은 기량의 진전이 눈에 띄었다. 유정은 행운의 럭키 일레븐의 범주 안에 ‘십장가’, ‘선유가’, ‘사발가와 양류가’, ‘정선아리랑’, ‘육칠월’, ‘베틀가와 오봉산타령’, ‘창부타령’으로 자신의 일취월장한 기량을 발휘했다. 악가무(樂歌舞)는 분리될 수 없는 동체(同體), 유정은 김미자 선생에게서 지도받은 ‘산조춤’ 실력을 풋풋함으로 능청스럽게 보여주었다. 유정의 소리와 춤은 세파의 잡음을 잠식하고도 남는다.
배반의 계절에도 감사의 몸짓으로 선사하는 경건한 위안의 소리는 화평을 부르고 있었고 소리 연륜의 미진함은 무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묘미였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예능보유자 이춘희―이수자 최윤영(부산)―이수자 강효주(서울) 선생의 적통을 이어가는 작은 요정의 소리에 이동복 전 국립국악원장은 축사로 화답했고, 김정미 선생의 지도로 해피아이합창단(18명)은 ‘하늘친구 바다친구’, ‘고추잠자리’, ‘울산아가씨’(유정도 합창)로 화사를 불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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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의 '십장가'
이날 공연은 1. ‘십장가’ 2. ‘선유가’ 3. ‘산조춤’(정유정) 4. ‘사발가와 양류가’ 5. ‘살풀이 춤’(정유선, 한영숙류, 이민희 지도) 6. ‘정선아리랑’ 7. 해피아이합창단의 합창 8. ‘육칠월’ 9. ‘밤의 소리’(강나은의 가야금독주) 10. ‘베틀가와 오봉산타령’ 11. ‘창부타령’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강나은의 가야금독주 ‘밤의 소리’는 달빛아래 누군가를 기다리는 심전 안중직의 성재임간도(聲在林間圖)의 분위기 창출과 여동생 정유선의 ‘살풀이 춤’은 어울림의 미덕을 보여주었다.

흐르는 세월 속에 밝은 마음 속 약속, 자연의 수려함, 푸근한 인간미를 보여준 이번 공연에는 이화여대 한국음악과 동기 학생들(가야금/강나은, 대금/박수현, 피리/이아영, 해금/김지은, 장구/정예진)이 반주를 담당하였다. 울산 작은 애기 유정의 고향나들이에 여느 때처럼 심규훈 일신테크 회장, 이상근 명지계전 사장, 윤난순 미래에셋 이사, 강효주 선생이 든든한 후원자로 나섰다. 공연을 이어가면서 유정은 사회와 해설을 겸한 수완을 발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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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의 '사발가'
서민적 취향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경기잡가(경기민요)에 도드리장단, 굿거리장단, 세마치장단, 빠른 타령장단의 변주를 맛 볼 수 있는 구성은 원형의 보존과 현대화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묘미를 제공하였다. 정한(情限)의 감정으로 연기해내며, 정제의 매개체로서 자연을 포용하는 정유정의 소리는 태화강변의 선바위와 십리대숲의 정기를 물려받은 것들이다. 인성응천(人聲應天)의 소리를 이어간 ‘사발가와 양류가’에서는 여성 오악사의 악기가 동원되었다.

예술을 위한 예술을 배제하면서도 늘 신비적 단자(單子)를 달고 기꺼이 문화적 전통의 형성자가 되고자 애쓰는 유정은 일상을 클래식화 할 수 있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합창에 이어 휘모리 잡가 ‘육칠월’은 장고와 소리로 머슴 총각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준다. 가정에서 체득된 친화적 품성은 대중친화적 유전자를 소지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유정은 흑단의 단단함과 질그릇의 유연함을 조화롭게 연결시킬 줄 아는 소리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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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의 '정선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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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의 '육칠월'
‘베틀가와 오봉산타령’, ‘창부타령’에 이르면 유정은 장고를 메고 있고, 악사들은 모두 검정 스커트, 바지 , 스타킹 등 검정 색깔로 한껏 멋을 부린 채 무대 중앙에 포진하며 연주를 한다. 해마다 프로그램의 변화를 꽤하고 있는 역동적 공연은 소리, 연주의 기교와 더불어 홍보, 조명, 음향 등 외적 부분에도 더욱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 소리의 맥을 이어가는 ‘정유정의 소리’가 훌륭한 문화 콘텐츠, 훌륭한 브랜드의 수범(秀範)으로 더욱 빛을 발휘하기를 바란다.
따스한 시선으로 그녀를 지켜보았던 여고생까지의 공연과는 달리 대학생으로서 무대에 선다는 것은 냉엄한 평가가 따르는 법이다. 같은 소리라도 자신의 향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창의적 노력, 소리와 소리 사이의 차별적 매력 소지, 발전적 기량의 가시화가 필요하다. 작은 눈들이 쌓여 나뭇가지를 부러트리듯 작은 노력이 쌓이면 못 넘을 장벽이 없다. 그러기에 그간의 각고의 노력을 보여준 이번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건투를 빈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