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세이코엡손은 1996년말 한국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당시 한국시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넘어야할 벽도 많았다.
한국HP가 그 유명한 데스크젯을 앞세워 잉크젯프린터 시장을 석권하고 있었다.
또 지사설립 직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터지면서 국내 실물경기가 극도로 위축됐다.
하지만 엡손도 나름대로의 카드가 있었다.
엡손은 ‘세이코’ 시계를 만들면서 성장한 기업이다.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세이코가 공식 타임키퍼로 선정됐는데 당시 각 종목별 기록을 인쇄물로 남기기 위해 프린터(모델명 EP-101)를 제작한 게 엡손이라는 사명의 기원이다.
게다가 지사설립 이전에도 ‘엡슨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로 한국시장에서 이미 강자의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한국엡손은 본사 임원으로 홍콩에서 근무하던 다카하시 마사유키씨를 초대 사장으로 임명하고 삼보컴퓨터에서 북미시장을 맡아오던 묵현상씨를 부사장으로 영입해 유통망을 정비하고 한국시장에서 영역을 넓혀나갔다.
한국엡손은 외환위기로 어려움을 겪던 국내 광고시장에도 도움을 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로서는 매우 큰 금액인 16억원을 들여 지하철 2호선 전동차 광고를 싹쓸이했고 TV광고까지 추진하면서 적잖은 투자를 했다.
3사 경쟁체제를 비집고 들어오려는 한국엡손의 가세로 경쟁이 첨예화되면서 프린터가 TV 광고에 등장하는 기현상도 이때 펼쳐졌다.
HP가 탤런트 최종원을, 삼성전자는 전지현을 모델로 한국엡손은 김규리를 기용해 광고전을 펼쳤다.
당시 이름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전지현은 '삼성마이젯' 광고 한편으로 단번에 여신의 지위를 차지하며 광고계 블루칩으로 올라서는 등 엄청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엡손은 주로 사무용 프린터 등 범용시장이 대부분이던 당시에 그래픽 사용자들용 고품위 잉크젯 프린터를 내놓고 시장 장악에 나섰다.
아울러 고품위 잉크젯프린터와 스캐너, 프로젝트를 잇따라 히트시키면서 한국시장 안착에 성공했다.
한국엡손의 시장진출을 둘러싼 에피소드 한가지.
‘엡슨’이냐 ‘엡손’이냐를 놓고 당시 기자들을 비롯한 한국스텝들과 일본 임원들간의 의견 충돌이 벌어졌다.
이미 시장에서 엡슨 도트매트릭스 프린터가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데다 서구식 어감의 ‘엡슨’을 사용하자는 의견을 놓고 벌어진 논쟁이다.
다카하시 마사유키 사장은 일본 기업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다는 조언에도 불구하고 “기업체 이름을 바꿀 수 없다”며 일축했고 한국엡손이라는 브랜드를 순조롭게 정착시켰다.
이규태 기자 a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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