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서는 줄기세포 치료 효과가 이미 입증된 질환보다는 아직 효과가 불확실한 질환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개인적인 관심사, 특히 난치 질환에 대한 관심이 큰 영향을 미쳤다.
난치 질환들은 줄기세포 치료와 관련해 아직 충분한 정보가 없고 치료에 대한 시도도 한정적이다. 줄기세포로부터 상대적으로 소외된 질환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줄기세포 외에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있는 치료법이나 대안이 없는 막막한 질환이기도 하다.
실제로도 흔히 알려진 치료 기전이 확실한 질환보다는 뇌와 같이 아직 명확한 근거를 찾기 어려운 질환들에 관심을 두고 있다. 뇌의 복잡한 메커니즘 속에서 ‘논리적 추론의 근거’에 기반해 치료의 근거를 찾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이전 글에서 뇌 질환에 대해 다뤘을 때는 뇌졸중, 외상 등 활발한 치료 연구가 이루어지는 영역을 중심으로 소개했다. 이에 따라 다양한 질문을 접할 수 있었다. 그 중에는 뇌 질환으로 분류되는 뇌전증을 ‘정신질환’으로 오해하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대할 만한 치료법이 없지만 줄기세포의 신비한 능력 중 하나가 새로운 희망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기대인 것 같다.
특히 정신의학 분야의 질환들은 뇌 구조의 잘못이 아니라 단순한 ‘성향’ 정도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아 이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줄기세포를 연결해 탐구하려면 현재의 증상 중심 치료에서 벗어나 재생 가능성의 단서를 찾아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뇌전증(epilepsy)은 ‘전간증(간전증)’ 혹은 과거에 ‘간질’로 알려진 질환이다. 예전에는 뇌전증을 ‘지랄병’, ‘땡깡’ 등 부정적인 행동을 빗대어 부르기도 했다. 이 때문에 뇌의 문제로 발생한 질환이지만 성격의 결함이나 극단적인 행동의 결과로 오해를 받을 수 있어 최근 의학계에서 명칭을 수정했다.
뇌전증은 뇌의 신경세포(neuron) 간 전기 신호 전달 과정에서 이상이 생길 경우 발생한다.
서로 연결된 신경세포들은 미세한 전기 신호를 통해 지속적으로 정보를 주고받는다. 이 때 정상적인 전기 신호가 단절되면 과민하거나 엉뚱한 신호를 잘못 방출하게 된다. 이로 인해 발작, 인지 장애, 2차적 정신이상증 등이 나타날 수 있다. 특히 대발작이 발생할 경우, 입에 거품을 물고, 안색이 파래지거나 의식을 잃고 전신 경직 상태에 빠져 호흡조차 어려워진다.
최근에는 임신 중 영양 상태 부족, 출산 시 합병증, 두부 외상, 독성 물질, 뇌 감염증, 종양, 뇌졸중, 뇌의 퇴행성 변화 등 해부학적 세포 이상이 뇌전증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래서 MRI상의 이상 소견이 있고, 증상이 나타나면 뇌전증의 진단을 내릴 수 있다. 뇌전증의 가족력은 약 2.5%로 보고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뇌전증의 원인을 알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러한 유전적 소양도 뇌의 기질적 문제가 원인이라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뇌전증은 뇌의 구조가 잘못되어 나타나는 ‘하드웨어’적 문제로 발생하는 질환이다. 이는 ‘소프트웨어’적 오류와 같은 정신 질환과는 별개라는 것이다. 결국 치료의 가능성이 더 높다는 희망도 있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는 뇌전증의 치료 기전을 섣불리 판단하기 보다는 질환의 다양한 증상과 원인에 대해 더욱 깊은 연구와 탐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뇌전증의 발작 증상은 영향을 받은 뇌의 부위와 그 강도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발작 증상은 눈꺼풀의 가벼운 깜빡임부터 몸 전체가 격렬하게 떨리는 것까지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현대 의학의 발전으로 약물치료를 통해 70~80%는 증상 조절이 가능하다. 그러나 증상 조절이 힘든 경우에는 간이나 문제가 되는 구조를 제거하는 수술이 필요하기도 하다.
이렇게 해도 증상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현재로서는 세포를 공급해 재생하거나 치환하는 줄기세포 치료가 유력하다. 줄기세포 치료가 이미 효과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만큼 뇌전증 치료의 필요성이 크다는 뜻이다.
뇌의 복잡한 구조와 신호 전달 기전은 아직 완전하게 이해되지 않은 분야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천연치료 중 하나인 줄기세포가 어떤 역할을 수행할지, 무슨 기전에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에 있다.
현재 뇌전증에 대한 줄기세포 치료 효과는 아직 확실히 입증되지 않은 상태다. 동물 실험을 통해 얻은 데이터가 인간의 치료에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연구가 진행 중이다. 줄기세포를 통해 뇌 내의 기질적 오류를 수정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단계다.
인간 뇌전증에 대한 임상 시험은 최근 10년 동안 몇 건이 발표됐다. 클리니컬트라이얼즈(ClinicalTrials)에서는 줄기세포 현탁액을 정맥이나 척수강에 주사해 경과를 관찰한 연구 논문을 찾아볼 수 있다.
임상 연구 논문 수가 한정적이라 다른 질환에 비해 확신하긴 어렵지만 뇌전증을 단순히 별도의 질환으로 보지 않고 파킨슨병이나 뇌졸중, 루게릭병 등 다른 뇌 신경 기질 손상 측면에서 보면 줄기세포 치료 기전에 대한 합리적인 이해가 가능할 것 같다.
Dakukina 등이 발표한 최근 논문에 따르면 통상적인 항간질약품(AED; anti-epiletic drugs)에 반응하지 않는 뇌전증 환자들에게 줄기세포 치료가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 연구에서는 AED에 반응하지 않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줄기세포 치료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 실험을 진행했다. 참여 환자들은 기존의 약물 투여를 중단하지 않은 채 줄기세포 치료의 영향을 관찰, 증상을 비교했다. 이 연구에서 실험군은 AED와 줄기세포를 동시에 투여받았으며, 비교군은 AED만을 투여받았다.
1년 동안 증상 개선 정도를 비교한 결과 줄기세포 투여군에서는 10명 중 8명이 긍정적인 반응이 나타났다. 그 중 3명은 증상이 완전히 사라지는 놀라운 효과를 보였으며 나머지 5명도 주목할 만한 증상 개선이 확인됐다. 반면 비교군에서는 12명 중 2명만이 증상 개선을 경험했다.
AED효과를 감안하더라도 줄기세포 투여를 통해 약 70%의 환자에서 효과가 나타났다.

이 연구는 줄기세포 치료의 효과에 대해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연구에 사용될 줄기세포의 용량과 투여 방법, 줄기세포가 실제로 뇌에 제대로 전달되는지에 대한 의문 등 여러가지 한계점이 있어 연구 결과가 뇌전증 치료의 결정적인 해법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해당 연구에서는 분화시키지 않고 증식만 시킨 중간엽 줄기세포를 환자당 1회, 몸무게 1㎏당 100만 개씩 정맥에 주사했다. 그 다음으로는 1㎏ 당 10만 개의 신경분화 배양 세포를 척수강에 주사했다.
이렇게 뇌 치료를 위해 정맥을 통해 주사하는 방법에 대한 논란은 다른 중추 신경 질환 연구에서도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뇌에는 뇌-혈류 장벽(BBB; blood brain barrier)이 있어 외부 물질이 뇌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준다. 따라서 뇌 치료를 위해 정맥을 통해 줄기세포를 주사할 경우 실제로 BBB를 통과해 뇌 내 병변에 도달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그러나 뇌전증 환자의 증상이 개선된 것을 보면 분명 정맥 주사를 통해서도 줄기세포가 BBB를 통과해 효과를 발휘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왜 어떤 질환에서는 정맥 주사를 할 경우 줄기세포 효과가 미미한 반면, 뇌전증에서는 두드러진 효과가 나타나는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뇌전증의 기전 연구를 위해서는 다른 중추신경 질환보다 좀 더 주변 세포의 역할에 집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 뇌신경 세포의 병리 기전을 파악하는 것도 완전하지 않다. 뇌전증의 주요 원인으로 추정되는 뇌교세포 4종(microglial cells, astocytes, oligodendtocytes, NG2 linage ependymal cells)에 대한 기능 파악도 미흡한 수준이다.
뇌전증의 원인은 손상부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주된 문제는 2차적 신호전달의 오류에 있다. 그렇다면 줄기세포 치료의 복구 대상은 세포 단위의 신경 전달에 있어 뇌전증 환자들에게 뚜렷한 증상 개선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또한 여러 종류의 뇌교세포(glial cells)가 잘못 작동해 뇌전증을 일으킬 수도 있다. 뇌교세포는 우리 몸의 방어 시스템인 면역 기전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면역 시스템이 너무 활발하거나 적게 작동할 경우 뇌에서 정보 전달에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줄기세포로 면역 시스템을 조절해 뇌전증을 치료할 수도 있다.
뇌신경 세포는 정상인데 신호 전달에 이상이 생길 경우에는 글루타메이트(glutamate)의 증가와 GABA전달의 감소가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그 이유로는 복잡한 면역과 그에 따른 대식세포 작용, 수초 형성 작용 등이 언급되는 추세다.
연구에서는 신경 분화 세포를 척수강에 투입했는데 이에 대한 명확한 근거나 이유가 제시되지 않았다. 뇌전증의 주요 원인은 뇌교세포에 있고 뇌신경 세포와 뇌교세포는 종류가 다르다. 만약 신경세포가 뇌전증의 원인이더라도 신경세포를 척수강에 주입할 경우 BBB를 어떻게 통과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이 방법은 오히려 뇌교세포에 의해 자가 면역 반응을 촉진할 수 있고 이미 분화된 신경세포의 특성상 아메바성 이동이 제한될 수 있다.
뇌전증의 병리적 기전에 대한 이해가 아직 불완전한 상황에서 연구 결과가 줄기세포 치료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분화세포를 주사하는 것은 아직 근거가 부족해 추가적인 연구와 검증이 필요하다.
특히 뇌교세포들은 통상적인 외배엽성(ectodermal) 세포와는 다르게 본태적인 난황에서부터 독립적으로 기인한다는 점에서 생각해볼 점이 많다. 물론 필자의 주장대로 충분한 큰 크기와 동일한 유전자를 갖는 섬유모세포형 줄기세포라면 어떤 세포든 분화가 가능하다. 그러나 만약 신경세포로 분화해 투여한다면 그 능력도 손상되었을 수 있다.
종합적으로 필자는 정맥 주사의 유효성만 인정하고 싶지만 척수강 주사도 예상을 뛰어 넘는 결과가 나타났다. 따라서 중추신경 치료와 관련된 척수강 신경세포 투여의 유용성도 부정할 수 없어 이 분야의 연구에 대해 아직 많은 궁금증이 남는다.
줄기세포의 작용 기전을 완전히 이해하는 데에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임상 연구처럼 귀납적 접근법을 통해 다양한 조합을 시도하며 가능성을 열어두고 효과를 관찰하는 방식은 치료법 발굴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동물 실험의 결과를 세심하게 분석하고, 환자의 선택은 윤리적 틀(IRB)에 부합하도록 해야 한다. 기존 치료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환자들에게 줄기세포 치료를 시도할 경우 충분한 동의를 구해야 한다. 특히 중추신경 질환 치료에 대한 시도는 가장 파악이 어려우므로 임상실험에 앞서 윤리적 고려사항에 대한 엄격한 준비와 검토가 필요하다.
뇌전증에서 줄기세포 치료는 효과가 있을까? 이 질문에 대답은 “피할 수 없는 긍정”이다. 특히 줄기세포 치료는 기존 치료법에 더해 추가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다만 이러한 전망에도 불구하고 비용 문제로 접근성이 제한되는 문제가 있다. 뇌전증은 특히 질환에 대한 병리 인지도가 낮아 비용 부담이 더욱 비윤리적인 문제로 남아있다는 점에서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대한줄기세포치료학회 이사장 이희영은 누구?

이희영 대한줄기세포치료학회 이사장은 1991년 성형외과 전문의로 의료계에 발을 내디딘 후 지방 성형을 자주 접하면서 당시에는 흔하지 않던 대량 지방이식을 시작했다. 특히 전문의로서 지방조직을 연구하던 중 의대에서 배운 것과는 다소 다른 지방이식에 관한 시각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줄기세포치료의 발전과 보급을 위해 2007년 대한줄기세포치료학회를 설립, 동료 의사들과 함께 활발한 학술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희영 대한줄기세포치료학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