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 마음의 산책(78회)]
불행의 뿌리는 불통…서로 통하는 만사형통의 병신년 기대상대에게 믿음 주고 “고맙다” 자주하는 게 관계복원 지름길
몸과 마음이 바쁜 연말연시다. 연말이 되면 누구나 지난 일 년을 돌아보며 미루어두었던 일들을 해결하고 아쉬웠던 일들을 마무리하려고 바쁘다. 그중에서도 특히 바쁜 이유로 만나지 못했거나, 자주 만나기는 하지만 정말로 마음속에 있는 말을 하지 못했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정리하려고 송년회 자리를 많이 갖는다. 왜 연말에는 서로 만나고 싶어할까? 그것은 아마도 연말은 한해의 마지막을 의미하고, 마지막은 정리(整理)를 의미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을 정리해야 할까? 정리해야 할 것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지난 일 년 동안 살아오면서 그때그때 정리하지 못한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마음을 정리하는 것이다. 고맙지만 미처 고맙다고 이야기하지 못해서 마음에 걸리는 일, 미안하지만 표현하지 못해서 마음 속에 불편하게 남아있는 감정, 또는 화가 나고 속상했지만 관계를 악화시킬까봐 두려워서 표현하지 못하고 마음에 담아두었던 감정의 응어리들을 풀어야 가벼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할 수 있다.
인간관계에 관한 첫 번째 후회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더라면”이다. 그 다음으로는 “친절을 베풀었더라면” “만나고 싶었던 사람을 만났더라면” “기억에 남는 연애를 했더라면” “결혼을 했더라면” 등이다. 이 후회들은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표현을 잘 안 한다는 것을 반대로 잘 보여주고 있다. 동시에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고 기억에 남는 연애도 별로 못하고 기억에 남는 연애도 별로 못한 채 결혼도 하지 못하고 산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미지 확대보기이 모든 불행의 근저에는 공통의 원인이 있다. 서로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통즉통(不通卽痛)’이란 말도 있듯이 모든 인간관계에서도 서로 통하지 않으면 결국 고통 받게 마련이다. 반대로 서로 통하면 ‘만사형통(萬事亨通)’하게 된다.
이렇게 의사소통이 안 돼 힘들어하면서도 사람들은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말을 할 줄 알면 의사소통은 저절로 되는 줄 알고 있다. 하지만 의사소통도 일종의 기술이다. 모든 기술을 익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사소통을 잘 하려면 그 원리를 배우고 훈련을 해야 한다. 그래서 그 방식을 몸에 익혀야 한다.
의사소통을 할 때 어린이는 상대가 자신과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심지어는 눈으로는 상대를 보지만 마음으로는 상대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깨닫지 못한다. 여러 어린이들이 놀이터에서 함께 노는 광경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들은 함께 놀이를 하지만 그리고 상대에게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은 자기 혼자만의 세계에서 이야기하고 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대화를 하지만 그 대화는 사실 ‘집단적 독백(collective monologue)’에 불과하다. 대화하는 방식을 잘 살펴보면 그 사람의 성숙도롤 알 수 있다. 만약 대화를 하면서 상대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만을 일방적으로 쏟아붓는다면 그는 어린이처럼 집단적 독백을 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그는 의사소통 면에서는 미성숙한 어린이에 불과하다. 성숙한 의사소통은 독백이 아니라 ‘대화(對話, dialogue)’이다. 한자 ‘대(對)’는 “대답하다”라는 뜻이다. 즉 대화는 먼저 상대를 인정하고 상대에게 ‘말로 대답하는 것’이 기본이다.
의사소통을 잘 하기 위한 두 번째 원리는 ‘앞서 나가지 말라’는 것이다. 주위에는 가끔 너무 일찍 상대의 생각이나 감정을 알아차리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이런 자신의 이런 예민한 능력이나 ‘감(感)’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 주변에는 속마음을 나누며 깊게 사귀는 친구가 별로 없다. 우리에게는 상대가 알아차리지 않기를 바라는 영역이 있다. 그리고 서로 관계가 깊어지고 믿을 수 있게 되면 자연스럽게 밝히는 영역이 있다. 그러나 만약 누군가 우리가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속마음을 읽고 공개한다면 마음속으로 위협을 느끼고 불안해지며 분노하게 된다. 비록 눈치 챘지만 상대가 스스로 밝힐 때까지 기다려주는 마음씀씀이가 원활한 의사소통에서는 중요하다. 우리 말에 “알고도 속는다”는 말은 이런 지혜를 일컫는 것이다.
의사소통을 잘 하기 위한 세 번째 원리는 자신의 속마음을 솔직히 표현할 수 있는 ‘용기(勇氣)’를 가지는 것이다. 자신의 속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공통적 특징은 ‘거부(拒否)’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는 것이다. “미안하다”고 이야기했다가 오히려 상대에게 무안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크기 때문에 망설이다가 결국 때를 놓치고 만다. “사랑한다”고 고백했다가 거부당하고 웃음거리가 될 까봐 두려워 결국 마음속으로만 간직하고 만다. 멋진 연애를 하려면 거절당할 두려움을 극복하고 상대에게 나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의사소통을 잘 하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믿음’을 주어야 한다. 나에게는 무슨 이야기를 해도 거부하거나 비난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상대에게 줄 수 있을 때 그는 나에게 속마음을 열고 다가올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화의 내용이 아니라 그 대화의 밑에 깔려있는 감정에 반응해야 한다. “내일 학교에 안 갈래!”라고 이야기하는 자녀는 정말로 학교에 가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을 만큼 “힘들다”는 것을 알아달라는 것이다.
죽음에 직면해서 사람들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했더라면” “죽도록 일만 하지 않았더라면” 하고 후회한다. 2015년을 보내고 2016년 새해를 맞으면서 밀린 일을 하고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진짜로 해결해야 할 ‘일’은 ‘관계를 복원’하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은 대상이 있다면 전화를 걸어서 표현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아마도 상대는 표현은 안 했지만 그 말을 듣기를 오래 전부터 기다렸을 것이다. 마음에 드는 대상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사랑한다”는 말을 하자. 만약 상대가 거기에 부응하지 않는다면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된다. “고백이라도 한 번 해 볼 걸”하고 평생 후회하는 것보다는 거절당하는 것이 훨씬 낫다.
연말은 정리하는 시간이다. 감사하고 사랑하고 용서하는 시간이다. 그래야만 마음속 감정의 응어리를 풀고 가벼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을 수 있다.
이미지 확대보기한성열 고려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