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327)]

유물은 시기가 다소 다른 김해식토기와 민무늬토기·붉은간토기 등이 같이 출토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모두 유구 내에서 발견된 것이 아니라 근처에서 수습된 것이라서 재론의 여지가 남아 있다. 이 유적은 춘천 천전리, 파주 옥석리 등과 함께 한강 유역의 고인돌 문화를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를 제공한다.
가장 큰 1호 고인돌은 양쪽의 뚜껑돌이 넘어진 탁자식 고인돌이다. 뚜껑돌의 평면형태는 사다리꼴이며 길이 350㎝, 폭 210㎝, 두께 30~50㎝이다. 또한 7개의 성혈(性穴:cup-mark)이 확인됐는데 이는 고인돌을 만든 사람들의 난생설화 또는 태양 등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굄돌 3매 중 2매는 마주보고 서 있으며 그 주위에는 여러 자갈돌이 깔려 있다. 전체적인 형태는 북방식고인돌이며 무덤방의 규모는 120cm×60cm×18cm의 크기다. 유물로 굄돌 주위에서 뗀석기·민무늬토기·김해식토기 등이 출토됐다.
3호 고인돌은 130cm 정도 되는 원형의 뚜껑돌을 덮고 밑에는 자갈돌을 이용하여 200cm×100cm×20cm 정도의 무덤방을 만들었다. 유물로는 김해식토기 조각과 반달돌칼이 출토되었다. 이 외에 뗀돌도끼 1점이 출토되었으나 고인돌의 부장품으로 보기는 어렵다.
김경상 다큐멘터리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