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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유통 다음 판은 바이오…유통가 후계자들이 몰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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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유통 다음 판은 바이오…유통가 후계자들이 몰리는 이유

대상 ‘의약용 아미노산’ 인수, CJ 마이크로바이옴·CDMO 확장
오리온은 ADC로 신약 플랫폼 진입
내수 정체·저출산에 성장판 이동…다만 R&D 장기전
(왼쪽부터) 담서원 오리온 부사장, 신유열 롯데바이오로직스 부사장, 이선호 CJ 미래기획그룹장   사진=각사이미지 확대보기
(왼쪽부터) 담서원 오리온 부사장, 신유열 롯데바이오로직스 부사장, 이선호 CJ 미래기획그룹장 사진=각사
담서원 오리온 부사장, 신유열 롯데바이오로직스 부사장, 이선호 CJ 미래기획그룹장 등 유통가 후계자들이 바이오 산업을 차기 성장축으로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에 내수시장 정체로 본업인 식품·유통의 성장성이 둔화하는 가운데 바이오 산업이 신사업 성과와 경영 역량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무대로 떠오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저출산·고령화로 내수 성장 여력이 제한되는 상황에서 발효·미생물 제어 등 식품 제조 과정에서 축적한 기술을 의약·헬스케어 분야로 넓혀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키우려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상은 지난 17일 독일 의약용 아미노산 전문기업 ‘아미노’ 지분 100%를 약 502억원에 인수한다고 공시했다. 현재 관련 승인 절차를 진행 중이며 내년 3월까지 인수 절차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1958년 설립된 아미노는 의료용 수액제와 환자식, 바이오의약품용 세포배지·부형제 제조에 쓰이는 의약용 아미노산을 생산한다. 독일 북부 프렐슈테트에 연구소와 3개 생산공장(약 6000㎡)을 운영하며 글로벌 대형 바이오제약사와 환자식 업체들과 거래 기반을 구축해왔다.

대상은 이번 인수를 계기로 의약용 아미노산 시장에 진입한다는 방침이다. 고령화와 의료 인프라 확대로 수액제·환자식 수요가 늘면서 의약용 아미노산 시장도 매년 10%씩 성장하는 분야로 거론된다. 단백질·유전자·세포 치료제 등 바이오의약품 시장이 커지면서 세포배지, 부형제, 시약 등 아미노산 기반 소재 수요도 동반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CJ는 30년 넘게 발효 기반의 사료·식품용 아미노산 사업을 이어오며 그린바이오 역량을 쌓아왔다. 다만 올해 3분기에는 라이신 시황 부진과 고수익 제품 경쟁 심화의 영향으로 바이오사업부문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8.4%, 71.9% 줄었다.
그럼에도 CJ는 올해 초 거론됐던 그린바이오 매각을 철회했다. 업계에서는 EU의 중국산 라이신 반덤핑 관세 부과로 경쟁 구도가 재편되면서 CJ의 기술력과 생산 거점이 다시 부각될 수 있다는 판단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본다. 이선호 미래기획그룹장을 중심으로 바이오·소재 융합 전략을 강화하는 인사가 이어진 점도 함께 거론된다.

레드바이오 확장도 병행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2021년 ‘천랩’을 약 983억원에 인수해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사업을 키우고 있으며, 네덜란드 CDMO 기업 ‘바타비아 바이오사이언스’ 지분 약 76%를 2677억원에 확보해 생산 역량까지 포트폴리오에 담았다. 이후 레드바이오 전문 자회사 CJ바이오사이언스를 출범시키며 추진 체계도 정비했다.

신 부사장은 최근 인사에서 롯데바이오로직스 각자대표로 선임되며 롯데그룹 바이오 사업 분야에 힘을 싣고 있다.

오리온은 항체·약물 접합체(ADC) 기술을 보유한 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 지분을 확보하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제과 사업으로 확보한 현금 창출력을 신약 파이프라인에 투입한 사례로, 바이오를 전략 사업으로 키우려는 행보로 해석된다.

글로벌 식품 기업들도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네슬레는 2011년 ‘네슬레 헬스 사이언스’를 설립하고 환자식과 영양 보충제를 성장 축으로 키워왔다. 식품과 의료의 경계 영역에서 ‘푸드 사이언스’로 사업 외연을 넓힌 사례로 꼽힌다.
다만 바이오는 식품과 다른 시간표를 요구한다. 식품 산업이 비교적 짧은 주기로 성과가 드러나는 제조업이라면, 바이오는 장기 투자와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바이오는 식품처럼 분기 단위로 성과가 바로 나오는 사업이 아니다”라며 “연구개발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도 꾸준히 발생하는 만큼, 식품사 입장에서는 장기전으로 버틸 체력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황효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yojuh@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