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을 위한 탄생, ‘부강한 대한민국’의 토대가 되다
전세계를 덮친 외환위기, 쓰러지는 기업들의 버팀목으로
순이익 1조 시대를 연 기업은행, 기업들의 ‘창공’을 꿈꿔
전세계를 덮친 외환위기, 쓰러지는 기업들의 버팀목으로
순이익 1조 시대를 연 기업은행, 기업들의 ‘창공’을 꿈꿔
![1961년 설립 당시 종로구 견지동 본점 전경 [사진=IBK기업은행]](https://nimage.g-enews.com/phpwas/restmb_allidxmake.php?idx=5&simg=20211217235716034699d71c7606b2181461757.jpg)
“해 뜰 때 우산을 빌려주고 비 올 때 우산을 뺏어가는 짓은 하지 않겠다. 기업은행은 (경제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중소기업들과 동고동락 하겠다” 고(故) 강권석 20대 기업은행장이 취임 직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다.
올해로 창립 60주년을 맞은 기업은행의 역사는 국내 기업들의 발전사다. 기업들은 6.25 전쟁, 석유파동, 외환위기, 코로나19 같은 역경을 뚫고 현재의 한국을 일궈낸 주인공이다. 그런 기업들에게 있어 기업은행은 동반자이자 우산이었다. 그리고 지금 기업은행은 새로운 60년을 그리며 혁신 한복판에 서있다.
기업은행은 ‘혁신경영’과 ‘바른 경영’을 무기 삼아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고 있으며, 나아가 중소기업의 새로운 창공도 꿈꾸고 있다.
◆중소기업을 위한 탄생, ‘부강한 대한민국’의 토대가 되다
중소기업은행의 뿌리는 1958년 설립된 농업은행이다. 1960년 농업은행은 농촌 금융 전담 특수 은행으로 전환하려는 논의의 대상이었다. 이때 일부 도시 점포의 분리 방안도 검토됐으며, 5.16 군사 정변 후 ‘중소기업은행법’이 기습 공포 됐다. 그리고 1961년 8월 1일, 중소기업은행은 서울 종로구의 농업은행 건물에서 시작을 알렸다.
![1961년 중소기업은행 업무 개시 테이프를 끊는 박동규 초대 은행장 [사진=IBK기업은행]](https://nimage.g-enews.com/phpwas/restmb_allidxmake.php?idx=5&simg=20211217235728004699d71c7606b2181461757.jpg)
출범 직후 기업은행은 신용보증 준비금을 적립했다. 1964년 적립금 10배 한도 내에서 보증부 대출도 운용했다. 해당 제도는 당시 담보가 없고, 만성적인 자금난에 시달리던 중소기업에게 동아줄 같았다. 이는 신용보증기금 탄생에도 기여했다.
1960년대는 군사 정권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된 시점이다. 기업은행은 1965년 외자부를 신설해 장기 저금리의 외국자본을 도입했다. 이는 시설자금 부족에 시달리던 중소기업들의 성장 발판이 됐다.
![1966년 AID 차관협정에 서명하는 서병찬 은행장 [사진=IBK기업은행]](https://nimage.g-enews.com/phpwas/restmb_allidxmake.php?idx=5&simg=20211217235738030529d71c7606b2181461757.jpg)
1970년대 석유파동은 중소기업의 자금줄을 조였다. 당시 정부의 긴축 재정 기조 아래 기업은행은 중소기업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언덕이었다. 1974년 중소기업특별자금지원 중 기업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24.8%였다. 하지만, 1978년에는 32.1%, 1980년에는 39%로 늘어갔다. 그 결과 1981년 기업은행의 중소기업 대출잔액은 1조 원을 돌파한다.
◆전세계를 덮친 외환위기, 쓰러지는 기업들의 버팀목으로
![1987년 을지로 본점 신축 이전 리셉션 [사진=IBK기업은행]](https://nimage.g-enews.com/phpwas/restmb_allidxmake.php?idx=5&simg=20211217235811081269d71c7606b2181461757.jpg)
1987년 현재 을지로 본점으로 이전한 기업은행은 비약적 발전을 거듭했다. 1988년에는 총수신 4조 원을 달성했으며, 1990년에는 수신 5조 원을 기록했다. 자본금은 2171억 원, 대출금 총액은 6조9817억 원으로 늘어났다.
1990년대를 맞아 중소기업은행은 국내 최초로 ‘신용여신한도제’를 시행한다. 해당 제도는 신용평가가 우량한 업체는 담보가 없어도 신용한도 내에서 자금을 지원받게 한 제도다. 이를 위해 기업은행은 1995년 수많은 부도기업의 자료를 분석해 ‘중소기업 신용평가모형’을 개발했다. 전세계를 강타한 1997년의 외환위기는 기업은행을 위기로 내몰았다. 한보철강을 비롯해 수많은 대기업이 연이어 도산했다. 또한 대기업 중심의 양적 경제성장, 무분별한 차입경영 등으로 성장해온 중소기업도 무너졌다.
결국 중소기업은행은 긴급경영체제를 선언했다. 1998년 1월부터 대출금 상환 기한 연장을 시작으로 5월에는 ‘중소기업 살리기 총력자금 조성운동’ 등으로 8938억 원을 조성해 대출을 실시했다. 특히 10월에는 연 20%를 넘나들던 중소기업 대출 금리를 11.5~12.5%로 인하하는 강수까지 둔다. 이는 중소기업 대출을 기피 하던 시중은행들의 대출금리 인하의 발판이 된다.
![1998년 우리경제 되살리기 새출발 다짐대회 [사진=IBK기업은행]](https://nimage.g-enews.com/phpwas/restmb_allidxmake.php?idx=5&simg=20211217235820001599d71c7606b2181461757.jpg)
하지만 기업은행의 노력은 부실채권과 손실액 급증 결과만 낳았다. 급기야 정부는 지원책으로 1988년 약 1조7000억 원을 기업은행에 출자한다. 결국 정부는 기업은행의 경영 자구계획을 요구했으며 기업은행은 그 해 2579명의 인력을 줄이는 등 고강도 구조조정을 감내해야 했다. 이같은 노력에 힘입어 외환위기는 1999년부터 조금씩 진정됐지만, 기업은행에는 새로운 시련이 왔다. 대규모 손실을 낸 시중은행이 우량 중소기업에게 ‘대출 덤핑’ 공세를 취한 것이다. 이로 인해 중소기업 대출 시장에서 기업은행의 입지는 흔들리고 결국 기업은행은 새로운 도약을 위해 경영 혁신에 들어간다.
◆순이익 1조 시대를 연 기업은행, 기업들의 ‘창공’을 꿈꾸다
![2004년 네트워크론 지원에 관한 협약식 [사진=IBK기업은행]](https://nimage.g-enews.com/phpwas/restmb_allidxmake.php?idx=5&simg=20211217235827008549d71c7606b2181461757.jpg)
2000년 전후 국내 경기는 수출은 호조를 보였지만 내수는 침체됐다. 특히 원자재 가격 상승, 납품 대금의 회수 기간 장기화 등 많은 중소기업이 어려움을 겪었다. 기업은행이 취한 해결책은 다름 아닌 전도 금융 ‘네트워크론’이었다. 2004년 8월 출시된 네트워크론은 중소기업이 대기업 등으로부터 주문 받아 발주서를 제시하면, 신용보증기금의 보증서를 담보로 기업은행이 낮은 금리로 먼저 지원해주는 제도였다. 이는 생산 단계에서 부터 자금 부족을 겪는 중소 제조업체들에는 획기적인 상품이었다.
그 결과 네트워크론은 2006년 7월까지 2년만에 3조 원의 약정과 1조7000억 원이라는 전대미문의 대출 실적을 기록한다. 2007년에는 당기순이익 1조 원을 돌파한다.
![2008년 범국민 외화모으기 캠페인 [사진=IBK기업은행]](https://nimage.g-enews.com/phpwas/restmb_allidxmake.php?idx=5&simg=20211217235834005869d71c7606b2181461757.jpg)
기업은행에 있어서 2008년은 또 다른 위기의 해였다. 9월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제 2의 IMF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스며든 것이다. 시중은행들은 중소기업 대출을 축소하면서 대출 자금을 회수했지만, 기업은행은 오히려 기업대출을 확대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기업은행은 정부로부터 5000억 원 규모 현물 출자를 이끌어냈으며, 임직원들은 급여를 삭감하고 성과급을 반납하는 등 희생을 보였다. 그 결과 기업은행은 2009년부터 2010년까지 은행권 전체의 중소기업 대출 순증액 중 91%를 공급했다. 은행권 전체의 중기 대출이 9000억 원 감소한 반면, 기업은행은 5조2000억 원 증가한 것이다.
금융위기를 이겨낸 기업은행은 2010년 당기순이익 1조2901억 원을 기록하며 3년 만에 ‘1조 클럽’에 복귀했다. 2012년에는 금융권 최초로 중소기업 대출 100조 원을 돌파한다.
2010년대 중후반 들어 국내 경제는 저금리·저성장 기조에 접어든다. 이에 기업은행은 서민경제의 근간인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에 힘을 쏟았다. 2017년 2월에는 소상공인과 중·저 신용등급의 중소기업에 각각 1조 원 씩 특별지원 프로그램도 가동했다. 2018년에는 1%대 초저금리 중소기업 대출을 1조 원 규모로 시행했다.
![2013년 12월 26일 오전 서울 중구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IBK 그랜드슬램 달성' 축하 행사에서 조준희 전 은행장과 권선주 전 은행장이 직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IBK기업은행]](https://nimage.g-enews.com/phpwas/restmb_allidxmake.php?idx=5&simg=20211224141737099179d71c7606b1181318851.jpg)
그 결과 2018년 10월에는 영국의 금융전문지 ‘더 뱅커’ 선정 글로벌 100대 은행에 진입한다. 이는 전 세계 중소기업금융 전문은행으로는 유일했다.
2020년 역시 기업은행의 기업 동반자 적 행보는 부각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1월 말 전국 657개 영업점에 금융애로종합상담센터를 설치했으며, 2월에는 본부 차원의 금융지원반을 구성했다. 코로나19 피해 기업에게 저금리의 특별지원자금과 대출 만기 연장, 이자 상환 유예 등 특별 금융 지원이 시작된 것이다.
이밖에 착한 임대인 운동, 코로나19 물품 지원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특히 코로나19 장기화로 일자리가 줄자,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 등과 힘을 모아 일자리 창출을 위한 동반 성장 업무 협약 등을 맺고 육성 기금·융자도 지원했다. 가장 필요한 시점에 종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고심한 결과였다.
![2020년 코로나19 관련 금융지원 현장간담회 [사진=IBK기업은행]](https://nimage.g-enews.com/phpwas/restmb_allidxmake.php?idx=5&simg=20211217235851045269d71c7606b2181461757.jpg)
이같은 기업은행의 행보는 새로운 단계로 진화한다. 2017년 9월 창업·벤처기업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 은행장 직속으로 창업벤처지원단이 신설됐다. 이는 미국의 ‘실리콘밸리’처럼 국내에 직접 혁신적인 창업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포부였다.
해당 프로그램의 이름은 ‘IBK창공(創工)’이었다. 마포에서 시작해 구로, 부산에서 문을 연 IBK창공은 기업은행이 대출자이면서 동시에 컨설턴트, 멘토, 투자자 역할까지 수행하는 종합 플랫폼으로 거듭났다. 또한 글로벌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성과를 공개하는 ‘데모데이’를 통해 창공 기업들은 세계로 뻗어 가고 있다.
![2021년 5월 25일 서울 을지로 IBK파이낸스 센터에서 열린 'IBK창공' 통합 온오프라인 데모데이에서 윤종원 기업은행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IBK기업은행]](https://nimage.g-enews.com/phpwas/restmb_allidxmake.php?idx=5&simg=20211224141725001229d71c7606b1181318851.jpg)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은 “중소기업 지원 소임은 변하지 않지만 시대적 흐름에 맞춰 IBK의 역할은 달라져야 한다”며 “과거 고도성장기 국민경제의 지렛대 역할, 경제위기의 버팀목 역할을 넘어 중소기업의 혁신 성장을 뒷받침하고 한국경제의 역동성을 높이는 마중물 역할을 할 때다”고 강조했다.
신민호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o634@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