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중심 집값 급등세로 가계부채 관리에 대한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기준금리 인하 기대로 '집값 반등론'에 힘이 실리면서 몰려드는 대출 수요에 속수무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 주문에 은행들은 가산금리를 올리는 방식으로 속도 조절에 나서고 있지만 '지금 사야 한다'는 투자 심리를 꺾기에는 역부족이다. 김병환 신임 금융위원장은 31일 취임 일성으로 가계부채 대응을 꼽아 추가적인 정책 대응이 나오거나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날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달 25일 기준 713조3072억원으로, 6월 말(708조5723억원)보다 4조7349억원이 늘었다. 가계대출은 6월 한 달 새 5조3415억원 불어나 2021년 7월(6조2009억원) 이후 약 3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늘었는데, 이달에도 비슷한 규모의 증가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달 들어 은행들은 당국의 주문에 따라 가산금리를 올리는 방식으로 가계대출 증가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사실상 효과가 전무했던 셈이다.
KB국민은행은 지난달 3일과 18일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를 0.13%포인트(p), 0.2%p 잇따라 올린 데 이어 29일 0.2%p 추가 인상을 결정했다. 신한은행도 지난달 15일과 22일 은행채 3년·5년물 연동된 대출의 금리를 0.05%p씩 높인 데 이어 29일 주담대 금리를 0.1∼0.3%p 상향 조정했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24일 아파트 담보대출과 전세대출 상품 금리를 0.2%p 올렸는데 8월 2일부터 최대 0.3%p를 더 올리기로 했다. NH농협은행도 지난달 24일 주담대 주기형·혼합형 상품의 금리를 0.2%p 인상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가산금리를 올리는 방식으로는 가계부채 잡기가 사실상 어려워졌다고 지적한다.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으로 집값 상승에 대한 시장의 확신이 커진 상황이라 소폭의 금리 인상으로 '지금 사야 한다'는 투자 심리를 꺾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시장참여자들의 금리 인하에 대한 확신이 커졌고, 수도권의 주택공급 부족 요인으로 집값이 더욱 들썩일 가능성이 있다"면서 "가계대출을 틀어막는 것보다 시장에 충분한 주택공급 신호를 보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가계부채 급등세는 금융당국과 한은의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은이 전날 공개한 지난달 11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정례회의 의사록에서는 금통위원들의 치솟는 집값과 가계부채에 대한 고심 흔적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었다. 특히 한 금통위원은 "금리 인하가 부동산 가격 상승을 촉발하는 계기가 돼서는 안 된다"면서 섣부른 금리 인하를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취임한 김병환 신임 금융위원장도 취임 일성으로 가계부채 대응을 꼽았다. 김 위원장은 취임사를 통해 "금리인하 기대, 부동산 시장 회복 속에서 리스크가 확대되지 않도록 치밀한 대응계획(contingency plan)을 사전에 준비하는 등 경각심을 갖고 철저히 관리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2단계 도입이 예고된 9월 전까지 가계부채 증가세가 꺾이지 않을 경우 추가적인 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정성화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h122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