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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료 낮출 수 있다는데”…의료법 막힌 보험사 ‘헬스케어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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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료 낮출 수 있다는데”…의료법 막힌 보험사 ‘헬스케어 혁신’

상담·병원 연계·질병 예측 등 의료행위 논란에 발목
금융당국은 확대 주문, 법 해석 제자리…고도화 ‘불가능’
의료법 충돌로 인해 보험사들의 헬스케어 서비스가 고도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픽사베이이미지 확대보기
의료법 충돌로 인해 보험사들의 헬스케어 서비스가 고도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픽사베이
보험사가 고객 건강관리를 통해 질병을 줄이고 보험금 지출을 낮추겠다는 ‘헬스케어 전략’이 의료법 장벽에 가로막혔다. 간호사 건강상담, 병원 연계, 질병 예측 서비스 등 보험사가 추진하려는 핵심 기능들이 의료법상 무면허 의료행위(진단), 영리 목적 환자 유인, 의료기관 개설주의 위반 소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금융당국은 헬스케어 활성화를 주문하지만, 제도 간 충돌로 인해 사실상 제자리걸음이라는 지적이다.

11일 보험연구원 분석과 보험업계 등에 따르면 보험사 헬스케어 사업은 고도화하지 못한 채 정체돼 있다. 보험사들은 그간 헬스케어 사업을 통해 고객의 활동량·식습관·건강지표 등을 기반으로 일상 건강관리와 질병 조기 발견을 가능하게 하고, 이를 통해 보험금 지출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왔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역시 건강증진형 보험상품과 비(非)의료 건강관리서비스를 통해 장기적으로 보험료 부담을 낮출 수 있다는 판단 아래, 2017년부터 관련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왔다.

현재 국내 보험사들도 다양한 형태의 헬스케어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삼성생명은 종합 건강관리 플랫폼 ‘더 헬스(The Health)’를 통해 운동·수면·영양 관리부터 건강지표 분석까지 제공하고 있으며, KB손해보험은 헬스케어 자회사 ‘KB헬스케어’를 중심으로 비대면 진료·건강검진 예약·AI 기반 건강관리 서비스 ‘올라케어’를 운영 중이다. 삼성화재·NH농협생명 등도 걸음 수 기반 리워드 프로그램, 건강 리포트 제공, 만성질환 모니터링 앱 등을 선보이며 헬스케어 플랫폼 시장에 진입했다. 다만 이들 서비스는 대부분 비의료 영역에 한정돼 있어 전문적 건강상담이나 병원 연계 서비스는 사실상 시도하기 어렵다.

문제는 보험사가 실제로 제공하려는 서비스 대부분이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보험사들은 건강점검, 생활습관 관리, 만성질환 모니터링 등 비(非)의료적 상담을 위해 간호사 등 보건의료인을 상담센터에 배치하지만, 이 과정에서 간호사가 고객의 증상을 설명하거나 수치 변화를 해석하는 행위가 의사의 ‘진단’으로 평가될 소지가 있다. 질환 위험도를 예측·제시하는 서비스 역시 의료행위로 간주될 가능성이 있다.
특정 병원·의료진으로 예약을 연결해주는 기능도 ‘영리 목적 환자 유인행위’에 해당할 우려가 있다. 원격 상담의 경우, 의료기관 밖에서 의사가 상담을 제공하면 의료기관 개설주의 위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현행 의료법은 의료행위의 범위를 명확히 열거하고 있지 않아, 개별 사안마다 법원의 판단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구조다. 헬스케어가 ‘운동·식습관 관리’ 같은 비의료 건강관리인지, 아니면 의료적 판단을 동반하는 ‘진단 행위’인지 기준이 불명확해 보험사들은 서비스를 설계할 때마다 위법성 논란을 검토해야 한다. 이 때문에 금융위가 강조하는 ‘헬스케어 금융플랫폼’ 모델도 현실적으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금융당국은 확대하라고 하고, 의료법은 금지하는 기형적 구조”라는 불만이 나온다. 실제로 금융위는 2022년 이후 헬스케어 자회사 설립을 허용하고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 업무 범위 확대를 추진해왔지만, 제도권 해석이 바뀌지 않는 이상 보험사가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는 제한적이다. 일부 보험사는 전문 간호사 상담센터, 건강예측 AI 서비스, 병원 예약대행 기능 등을 도입했지만, 법적 해석 리스크를 이유로 기능을 축소하거나 별도 자회사로 분리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실정이다.

백경희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보고서를 통해 “의료법 규제 개선 없이는 보험회사 헬스케어 사업 활성화는 사실상 어렵다”며 “비의료 건강관리 서비스 범위 명확화, 간호사 상담 가능 범위 설정, 의료기관 연계 기준 정비, 원격진료 제도 확립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석경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ong@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