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과 대안을 위한 건강정책학회, 학술대회에서 3명 실명 공개
[글로벌이코노믹=노정용기자] '누군가 다른 사람의 입을 빌려서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게 하라.' 홍보업계의 오랜 전략으로 통한다. 흡연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결론을 뒤집기 위해 다국적 담배회사들이 일명 '화이트 코트'란 프로젝트를 통해 국내의 대표적인 학자 3명에게 연구비를 지원하고 연구하게 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다국적 담배회사들의 이 같은 '검은 전략'은 비판과대안을 위한 건강정책학회가 9일 서울대에서 개최한 '건강과 기업' 학술대회에서 밝혀졌다. 박상표 비판과대안 연구위원은 '담배회사로부터 돈을 받은 한국의 연구자들'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다국적 담배회사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은 N박사, K교수, P교수를 실명으로 폭로했다.
박 연구위원에 따르면 흡연과 폐암, 니코틴의 중독성 등 담배와 건강에 관한 과학적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해 왔던 다국적 담배회사들이 1980년대를 기점으로 전략을 바꿔 담배회사를 위해 일할 과학자들을 비밀리에 모집해 왔다고 한다.
다국적 담배회사들이 전략을 수정하게 된 직접적 계기는 1981년 히라야마 다케시 일본 국립암연구소 연구원이 발표한 '간접흡연의 위험에 관한 역학적 연구 결과'다. 이때부터 다국적 담배회사들은 우선 생물통계학자인 야노 에이지, 카가와 준 등과 계약해 히라야마의 연구결과에 흠집 내기 위한 대규모 비밀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연구위원은 ETS Consultant Program이 1987년 미국에서 시작해 1988년 유럽, 1989년 아시아, 1991년 라틴 아메리카 순으로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를 위해 박 연구위원은 담배회사 내부문서를 분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9월까지 캘리포니아대 Legacy Tobacco Documents Library(LTDL)에서 ETS, Korea, Consultant를 키워드로 2042건의 문서를 찾아냈고, 이 문서를 검토해 프로젝트에 참가한 한국인 과학자의 이름을 추출해냈다. 그는 이 과학자들의 영문 인명을 다시 LTDL에서 검색해 문서를 재수집했고, 프로젝트별, 개인별로 분류했다.
이렇게 해서 박 연구위원은 고려대, 한양대를 비롯한 국내 유수 의과대학의 교수와 연구진들의 실명을 이날 공개했다. 특히 이들에게 다국적 담배회사가 접근한 방식부터 연구후원을 받은 논문으로 국제학술대회를 조직한 과정, 구체적인 보수수준에 이르기까지 낱낱이 밝혀짐에 따라 학계의 파장이 예상된다.
박 연구위원은 "이 논문이 담배회사 내부문건에 근거했기 때문에 실체적 진실을 모두 규명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신원이 밝혀진 한국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이들의 논문 내용에 대한 학술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다국적 담배회사들이 한국의 과학자들에게 자신들의 '검은 전략'을 미리 알려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의 '윤리경영'과 '사회적 책임'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시되는 시점에서 과학자를 컨설턴트로 고용하고 다국적 담배회사의 간접 홍보를 위한 것이라면 비난을 면키는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