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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코노믹

위기만 강조하면 변화의 본질 놓치고 내성만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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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만 강조하면 변화의 본질 놓치고 내성만 키운다

[우형록 교수의 변화를 넘어 미래로] <2>위기 의식 과용하면 약효 떨어진 마약
만성화된 불안 되풀이 땐 불신감·무기력 등 부작용

구체적인 문제 분석해내야 구성원에게 방향 제시 가능

“늑대가 나타났다! 늑대가 나타났다!”

심심했던 양치기 소년은 다급하고 큰 목소리로 외쳤다. 마을 사람들은 소년의 외침에 놀라 손마다 곡괭이, 몽둥이를 들고 언덕으로 달려왔다. 그 꼴이 소년에게는 배꼽 잡을 만큼 우스웠다. 이후에도 마을 사람들은 몇 번의 거짓 외침에 또 속았지만 정작 늑대가 나타났을 때는 도움을 주지 않았다. 거듭되는 거짓에 소년이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전하는 유명한 동화이다. 아무튼 현재 상태(마을 사람들이 하던 일)를 멈추고 목표한 방향(양치던 언덕)으로 마을사람들을 움직였으니 변화의 관점에서 양치기 소년은 처음 몇 번 성공한 셈이다.
거짓말처럼 우리 기업들은 20여 년째 위기이다. 한 해를 시작하는 시무식에서 경영진은 당해 연도가 생사의 갈림길이라고 매번 강변한다. 가정이나 학교에서는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중에 결정적 시기가 아닌 학년이 없다. 매 학년이 학업능력을 높여야 하는 결정적 시기이니 긴장을 풀 겨를이 없다. 이 정도로 위기가 우리를 에워싸고 만연해 있다면 그건 위기가 아니라 일상이 아닐까? 위기의 진위를 따지기 이전에 우리가 ‘위기의 일상’에 살면서 긴장감도 없고 집중력도 떨어져 있다면 혹시 ‘양치기의 거짓말에 여러 번 속아 넘어간 마을 사람들’의 딜레마에 빠졌는지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변화의 대상인 조직 및 개인에게 위기감을 조성하는 행위는 조직변화의 중요한 촉발점임에 틀림없다. 조직 변화의 바이블로 불리는 ‘기업이 원하는 변화의 리더(Leading Change)’의 저자 코터(John P. Kotter)도 성공적인 변화의 첫 단계로 ‘위기감을 고조시켜라’라고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조직 변화를 촉발하는 내외적 압력이 위기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지난 10년간 조직 변화를 다룬 유수의 논문 500여 편에서 핵심어를 추출해본 결과 ‘위기’뿐만 아니라 ‘문제’ ‘기회’ ‘갈등’ ‘저항’ ‘진화’로 조직 변화의 이유는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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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가장 광범위하게 언급되는 조직 변화의 본질은 문제(problem)이다. 기업에서 문제란 조직의 효율성과 효과성 측면에서 설정된 목표 대비 미흡한 현재 상태를 포괄적으로 지칭한다. 따라서 문제를 해결하는 행위는 목표와 현상(現狀)의 차이(discrepancy)가 발생한 원인을 밝히고 차이를 좁힐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문제와 위기는 구체성에서 다르다. 문제보다 비구체적인 위기는 실질적인 방법(how to do)과 과업(what to do)을 제시할 수 없다. 그 대신에 위기는 조직구성원에게 ‘방향 없는 열심’을 요구하거나 ‘영혼 없는 구호’만 외치도록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

둘째, 기회(opportunity)를 포착하여 궁극적으로 목표 달성에 필요한 대안을 마련하는 변화 시도는 문제 해결과 표면적으로 다른 점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부정적인 반면 기회는 긍정적이다. 동일한 과업을 목표달성의 장애 및 독소로 볼 것이 아니라 개선해봄직한 새로운 시도로 간주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긍정적인 기회의 관점에서 문제는 ‘개선적 기회’로 재해석된다. 어떤 광고에서 선생님이 학생이 틀린 문제에 빨간 펜으로 X표를 치지 않고 ☆표를 해주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학생의 밝은 표정처럼 기회는 조직에 적극성과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촉진된 적극성과 활력은 기회의 또 다른 영역인 ‘창의적 기회’를 발현시킨다. 창의적 기회는 문제와 기회를 확연히 구분하는 두 번째 특징이다. 문제와 맞닿아 있는 개선적 기회가 기존 자원의 효율적 운영에 집중한다면 창의적 기회는 기존에 없었던 새로움에 도전하는 것이다. 창의적 기회를 강조하는 변화는 조직 내 역량, 자원, 기술, 프로세스를 진취적으로 탐구함으로써 참신한 가능성을 발굴하려는 실험, 시도, 시행착오로 표출된다. 만약 이러한 역동성을 조직에서 찾을 수 없다면 기회 중심의 변화가 진정으로 정착된 것이 아니다.
이상의 문제 해결과 기회 도모는 합리성에 의존한다. 그러나 누가 봐도 옳고 정당한 변화와 전략이라도 실패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조직을 지배하는 암묵적 관행이나 기존의 문화와 상충되기 때문이다. 착근성이 뛰어난 관행과 문화는 부당함과 오류가 증명되더라도 조직에서 쉽게 제거되지 않는다. ‘모르는 악마보다 아는 악마가 낫다(Better the devil you know than the devil you don’t)‘는 영국 격언은 이를 잘 표현하고 있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정당하고 이상적이라고 판단되어도 변화를 두려워하고 새로움을 거부하여 기존에 안주하려는 경향은 인지상정이다. 이와 같은 비합리적 변화 거부는 갈등(conflict)과 저항(resistance)으로 요약된다. 갈등과 저항은 다르지 않고 동전의 양면일 뿐이다. 갈등은 저항의 원인이며 저항은 다시 갈등을 야기한다.

갈등과 저항은 표면적으로는 기존 관행과 문화가 조직변화에 역행하는 주체로 보이지만 실체는 인간이다. 조직, 집단, 개인 간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욕구에서 돌출되는 이해관계의 이슈이다. 조직 또는 집단 간의 갈등과 저항으로 드러날지라도 궁극적으로 개인의 손익과 결부된 이슈이다. 따라서 조직 변화에서 이해관계자를 분석하고 파악하는 일은 필수불가결하다. 갈등과 저항의 수위를 낮추는 전략은 이해관계자로부터 나오며 변화의 정당성과 사실만을 강조하는 기술(技術, technology)로는 부족하다. 갈등과 저항의 해결에는 설득, 타협과 같은 정치적 기술(奇術, art)도 요구된다. 갈등과 저항은 새로움에 대한 불안, 학습된 무기력, 지위나 권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불안감 등의 심리적 측면에서부터 성역, 터부, 관료적 인습, 반대를 위한 반대 등의 구조적 측면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멸종된 공룡과 함께 살았던 잠자리, 바퀴벌레, 악어 등이 공룡보다 강력하고 덩치가 커서 지금도 ‘살아있는 화석’으로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환경 변화에 적응하여 적자로서 자연 선택된 결과다.이미지 확대보기
멸종된 공룡과 함께 살았던 잠자리, 바퀴벌레, 악어 등이 공룡보다 강력하고 덩치가 커서 지금도 ‘살아있는 화석’으로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환경 변화에 적응하여 적자로서 자연 선택된 결과다.
마지막 조직 변화의 본질은 진화(evolution)이다. 다윈(Charles Darwin)이나 스펜서(Herbert Spencer)가 주장한 진화론을 조직변화에 적용한 개념이다.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이란 환경에 적응한 생명체는 생존하여 번성하지만 그렇지 못한 생명체는 도태된다는 의미이다. 멸종된 공룡과 함께 살았던 잠자리, 바퀴벌레, 악어 등이 공룡보다 강력하고 덩치가 커서 지금도 ‘살아있는 화석’으로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환경 변화에 적응하여 적자로서 자연 선택된 결과다. 진화의 관점은 존망을 예측하기 힘든 기업이 직면한 생존경쟁을 적절하게 설명한다는 장점이 있다. 조직 변화도 생명체와 같이 변이-선택-보존(variation-selection-retention)으로 이어지는 진화 및 자연 선택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무엇보다 진화의 관점이 미래 환경에서 선택될 수 있는 변이를 추구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체로 일상적인 업무활동은 단순화, 표준화, 안정화 등에 초점을 맞추고 변이를 제거하는 ‘현재의 효율’을 지향한다. 반면에 진화는 환경과 시장의 변화 및 추세를 주시하여 적자가 될 수 있는 변이를 양성하여 ‘미래의 효과’를 지향한다.

적자생존이라는 표현은 스펜서가 처음 사용한 용어이다. 그는 다윈의 진화론을 토대로 사회진화론(social darwinism)을 주창했는데 다윈이 실제로 주장했던 자연선택론의 일부 논리만을 과대 해석하여 적자생존과 양육강식만을 강조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공룡의 사례처럼 양육강식의 승자가 반드시 자연 선택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상으로 위기, 문제, 기회, 갈등, 저항, 진화라는 6가지 조직 변화의 본질을 살펴보았다. ‘큰일 났다! 이대로면 다 망할 거야!’식의 위기감 조성은 맹목적 낙관, 자만, 무사안일에 경종을 울리거나 구성원들의 연대감을 강화하는 데는 효과적이다. 정치적 기반이 부실한 정권에서 전쟁과 같은 외부 위기를 만들어 내는 이유이다. 게다가 무엇보다 위기는 쉽다. 업무와 프로세스, 경쟁환경을 분석할 필요도 없으며 조직구성원의 욕구를 듣는다고 인내하지 않아도 된다. 수십억에 달하는 불량품을 재활용하지 않고 조직구성원들이 보는 앞에서 태워버리는 이벤트를 어지간한 기업이 모두 좇아 했던 이유는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다는 것은 경쟁적 효과가 지속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개인이나 조직이나 근거도 미약하고 실체도 모호한 위기를 되풀이하다 보면 그 효과는 반감하게 마련이다. 더더구나 만성화된 불안과 공포로 인해 불신, 무기력, 피로감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게 된다. 이런 부작용을 해소하지 않은 상태에서 위기를 또다시 주입하는 방법으로 조직 변화를 도모한다면 위기에 대한 내성만 강해질 뿐이다.

내성이 없는 위기도 만들어 내는 경영진이 인정받던 시절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어지간한 위협적 위기에도 조직이 꿈쩍하지 않는다면 위기에 대한 내성을 의심해야 한다. 어설픈 위기감 조성으로 쉽게 따먹을 수 있던 열매는 고갈되었다,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이 두어 번만 성공했듯이. 손쉬운 위기가 아니라 문제, 기회, 갈등, 저항, 진화에서 좀 더 고도화된 조직 변화의 이유를 찾아야 한다. 위기로 잘못 끼워진 조직변화의 첫 단추를 바로 잡아야 할 시기이다. 심도 있는 고민과 분석으로 도출된 조직변화의 본질만이 참여와 몰입을 견인할 수 있다. 말로만 보면 틀린 말이 없는데 실행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언행으로 위기를 조장하는 지도자를 경계해야 한다. 이제 위기는 쉬운 조직변화만 추구하려다 변화의 내성만 키운 무능한 경영진 스스로의 몫으로 남아야 한다. 약효 떨어진 마약, 위기로써 조직변화를 추동하려는 경영진이 아직 있다면 이제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우형록 한양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