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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박태희 예술감독, 장운규 연출, 전효정 재안무의 '지젤'…소도시를 행복도시로 만든 낭만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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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박태희 예술감독, 장운규 연출, 전효정 재안무의 '지젤'…소도시를 행복도시로 만든 낭만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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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희 예술감독, 장운규 연출, 전효정 재안무의 '지젤'
10월 21일(금) 일곱 시 반, 22일(토) 세 시·일곱 시 반, 충주시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 인천시티발레단(단장·예술감독 박태희)은 2022 ‘문예회관과 함께하는 방방곡곡 문화공감’ 공연 콘텐츠 공동제작 배급 프로그램으로 장운규 연출, 전효정 재안무의 낭만발레 <지젤>을 공연했다. 깊어가는 가을에 충주시문화회관에서의 <지젤> 공연은 1985년 개관 이래 처음이었다. 21일(금)은 일곱 시 반(김나연, 박제현, Storozhuk Aleksandr, 황지원·Christopher Rodin Andreason), 22일(토)은 세 시(최지호, Christopher Rodin Andreason, Storozhuk Aleksandr, 장은영·윤태웅), 일곱 시 반(김나연, 박제현, Storozhuk Aleksandr, 장은영·윤태웅)으로 역이 분배되었다.

낭만 발레는 당대의 발레리나 마리 탈리오니(Marie Taglioni)가 〈라 실피드〉(1827)의 주인공 역을 맡은 파리 데뷔 시점을 시작으로 보고, 〈코펠리아〉(1870) 주역 이후로 쇠퇴한 것으로 본다. 중세 독일 전설에 춤을 좋아하는 아가씨가 혼전에 죽으면 빌리(영어식 표현으로는 윌리)라는 춤의 요정(처녀 귀신)이 된다고 한다. 그들은 밤마다 무덤에서 빠져나와 젊은이를 유혹하여 죽을 때까지 미친 듯이 춤추게 만든다고 한다. 솔로와 앙상블로 가득 찬 <지젤>은 이 전설을 바탕으로 한다. 〈지젤〉은 초자연적 이야기로 영혼을 빌리로 만들고 배신한 남자를 현실 세계에서 불행하게 만든 다음 죽음을 택하도록 구성된다. 빌리가 된 지젤은 이것을 거부하고 애인을 구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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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젤>은 라인강가의 마을을 배경으로 한 생 조르주·테오필 고티에 대본으로 1841년 6월 18일, 발레감독 장 코랄리 안무(발레리나 그리시의 독무는 쥘 페로가 안무)로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충주공연에서 지젤 역은 김나연과 최지호, 알브레히트 역은 박제현과 Christopher Rodin Andreason, 힐라리온 역은 Storozhuk Aleksandr, ‘페전트 파드되’는 황지원·Christopher Rodin Andreason 듀엣과 장은영·윤태웅 듀엣이 맡았다. <지젤>(‘지젤 또는 빌리들’로도 불림)은 하인리히 하이네가 독일 전설을 시작(詩作)한 「독일 이야기」에 등장하는 처녀 귀신 빌리(Wili)와 빅토르 후고의 「동방시집」(Les Orientales)의 시 ‘팬터마임’을 바탕으로 한다.

<지젤>은 2막 구성이며, <춘향전>과 흡사한 드라마 터그를 갖고 있다. <춘향전>의 이몽룡은 조선 중기의 문신 성이성(成以性, 1595~1664)으로 추정되고, <춘향전>(광해군 시절)이 <지젤>(헌종 시절)의 먼 나라 프리미어가 된다. 19세기의 낭만을 가득 담은 동화 같은 무대, 호기심이 가득한 관객, 일상을 고풍스럽게 만든 진지한 발레 무용수들이 집중한 <지젤>은 아돌프 아당의 원작 음악을 고스란히 껴안고 있었다. <지젤>은 중국에서 사라진 종묘제례악을 한국이 보존해왔듯, 러시아의 황실 발레단이 그 원형을 잘 보존한 덕에 파리를 비롯한 서유럽에 1910년에 역수입되었다. 지젤 역은 모든 발레리나의 꿈이 되었고, 통과의례로서 필수 관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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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희 예술감독, 장운규 연출, 전효정 재안무의 '지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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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운명은 한국이나 19세기의 유럽(독일, 프랑스)에서도 비슷하다. 조선조의 양반과 노비의 러브스토리처럼, 독일에서의 귀족과 평민의 러브스토리도 비극적 결말로 끝난다. <지젤>의 기본 축은 지젤, 알브레히트, 힐라리온, 미르타 이다. 프랑스의 공동 작가는 굳이 라인강가의 포도 농사가 주를 이루는 평화로운 마을을 배경으로 기젤라(Gisella)가 아닌 연약하고 순박한 시골 처녀 ‘지젤’(Giselle)로 주인공을 작명하고, 신분을 숨긴 공작 신분의 알브레히트를 짝으로 설정하고, 사냥꾼 힐라리온과 삼각구도를 만들어낸다. 2막은 복수심에 불타는 빌리들의 여왕 미르타가 주도한다. 신분상의 차이로 이루지 못한 사랑과 죽어서도 잊지 못하는 사랑으로 이어진다.

두 번째 막은 강한 충격을 준다. 밤마다 춤추며 세상을 떠도는 지젤의 슬픈 운명을 그린 〈지젤〉의 서주(序奏)는 작품을 대변한다. 서주의 도입부는 속도감으로 서주에 적합하다. 이어지는 아름답고 슬픈 선율은 숨 막히는 아름다운 지젤을 묘사한다. 이야기의 진행에 따라 변화되는 바그너가 악극 중에 사용하고 있는 수법을 크게 활용하고 전체에 통합된 음악을 이 발레를 위해 작곡했다. 아당은 근대 발레 음악을 개척하였고 차이콥스키 등에 의해서 더욱 높은 경지로까지 고양되었다. 연기는 화려하고 어려운 기교를 요구하지 않지만, 1막과 2막에서 대조적인 인물인 지젤 연기는 기교 이상의 다양한 감성을 표현할 줄 아는 배우가 지녀야 할 능력을 평가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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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 라인강 변의 숲 곡 마을, 공작인 알베르트는 신분을 숨기고 살아간다. 그는 춤추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는 명랑한 마을 처녀 지젤과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에 지젤을 짝사랑해왔던 청년 힐라리온은 알베르트의 정체를 마을 사람들에게 퍼트린다. 사냥을 나온 귀족 일행이 마을에 도착하고, 그 가운데 알베르트의 약혼녀인 바틸드 공주도 있었다. 신분의 차이는 물론 알베르트의 거짓말을 깨달은 지젤은 충격을 받아 제정신이 아닌 지경에 이르고 알베르트의 칼로 자결을 시도하지만, 힐라리온이 만류한다. 심장이 약했던 지젤은 너무 큰 충격으로 타계한다. 알베르트와 마을 사람들이 비탄에 잠긴 가운데 막이 내린다.

2막: 숲속의 밤, 지젤은 빌리가 된다. 빌리들의 여왕 미르타가 빌리들을 소집, 빌리가 된 ‘지젤 맞이’ 의식을 치른다. 이때 힐라리온이 지젤의 무덤을 찾아왔다가 빌리들에게 잡혀 호수에 빠져 죽임을 당한다. 알베르트도 사죄하러 찾아오나 빌리들에게 발각된다. 미르타는 지젤에게 알베르트를 유혹하여 그가 지쳐 죽을 때까지 춤추라고 명령한다. 지젤과 달리 알베르트에 대한 미르타와 다른 빌리들의 태도는 냉정하다. 알베르트는 기진맥진할 정도로 지젤과 춤을 춘다. 새벽, 네 시의 종소리가 들려온다. 빌리들이 사라질 시간, 지젤도 무덤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알베르트에게 영원한 이별을 고한다. 목숨을 건진 알베르트는 한없이 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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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희 예술감독, 장운규 연출, 전효정 재안무의 '지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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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젤〉은 다양한 버전이 있다. 러시아 제국발레단 용(用)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의 수정본, 1막의 파드되가 추가된다. 아서 미첼 안무의 〈크레올 지젤〉(1984, ‘댄스 시어터 오브 할렘’단)은 1840년대의 미국 루이지애나 배경에 크레올과 미국 흑인들 이야기를 <지젤>에 대입한 것으로 발레 무용수는 모두 흑인이었다. 스웨덴의 안무가 마츠 에크의 <지젤>(1982)은 열대 섬의 정신 박약아인 지젤로 만들고 동네 사람들의 놀림과 알베르트의 농간으로 정신병자로 표현한다. 지젤은 정신병원에 갇히고, 흰 환자복의 정신병자들이 빌리의 역할을 하고, 미르타 역은 냉정한 수간호사로 설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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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희 예술감독, 장운규 연출, 전효정 재안무의 '지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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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희 예술감독, 장운규 연출, 전효정 재안무의 '지젤'


충주의 〈지젤〉은 박태희 예술감독, 장운규 연출, 전효정 재안무(원안무 마리우스 프티마 & 쥘 페로)로 공주와 평택을 투어하는 무대의 기대감을 한 층 드높였다. <지젤>은 ‘발레 블랑’을 인지시키는 부드럽고 둥근 모양을 만드는 팔, 앞으로 약간 기운 상체, 하얀 보디스와 스커트로 기존 <지젤>의 품격을 갖추고 있었으며, 익숙하게 바람에 흩날리는 꽃 모양을 하고 있었다. 〈지젤〉의 2막의 이러한 전형적인 발레리나들의 외형, 이들의 신체가 곧 정신적인 영역을 상징하고 있음을 알렸다. 발레 <지젤>은 세상의 모든 순리를 벗어남은 죗값을 받는다는 동서고금의 진리를 밝히는 고전임을 다시금 보여주었다. 인천시티발레단은 활기찬 가능성의 발레를 잘 수행하여 주변을 아름답고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